8-11 서머나 교회에 편지하신다. 이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소개한다. / 주님은 서머나 교회도 잘 아신다. 서머나 교회가 환난과 궁핍을 당하고 있으나 실상은 부요하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산위에서 이렇게 가르치셨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서머나 교회가 실상은 부요한 이유가 바로 천국을 소유한 복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서머나 교회는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의 비방도 유대인들의 비방이라가 보다는 사탄의 꾐에 빠진 유대인들의 비방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그러나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주님은 장차 받을 고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감옥에 투옥되는 시험이 닥칠 것이라고 하신다. 열흘 동안 환난을 받을 것이라고 하시는데 열흘은 아마도 꽤 오랜 기간을 의미할 것이다. 그래도 충성하고 하신다.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신다. 생명의 열매나 생명의 관이나 영생을 의미한다. / 마찬가지로 이 말씀은 서머나 교회에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오늘 날에도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을 받지 않는다고 하신다. 영생이다. 둘째 사망은 심판의 사망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는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심판 때 사형선고를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12-17 버가모 교회에 편지하신다. 예수님을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 곧 ‘말씀’이신 분이라고 소개하신다. (요한복음 1:1을 기억하게 하신다.) / 주님은 버가모 교회도 잘 아신다. 어디에 사는 지 아신다고 하신다. 버가모가 사는 곳이바로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고 하신다. 장소적 개념보다 박해를 당하는 영적 상황을 염두에 두신 표현이 아닐까? 주님은 사탄이 판을 치는 버가모에서 안디바가 순교할 때도 버가모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굳게 잡아서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칭찬하신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가모 교회에도 책망할 것이 있다고 하신다. 첫째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것이었다. 발람의 교훈은 이스라엘이 이방여인과 통혼함으로 우상제물을 먹고 행음하는 범죄를 가리킨다. (실상 이둘은 같은 잘못이다.) / 주님은 회개하라고 명하신다.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말씀으로 싸우시겠다고 (벌하시겠다고) 하신다. / 이 말씀 역시 모든 교회들이 들어야 한다.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이겨내야 한다. 이겨야 생명 양식을 (만나를, 곧 말씀을 가리킨다.) 먹고 하나님나라 입장권을 (이름 적흰 흰돌을,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곧 영생이다. 이기지 못하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 이기지 못하면 의인의 회중에 누가 있는 지 그 이름을 알 수 없다고 하신다.
// 이기는 자만이 영생을 누린다.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라고 하신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연단은 잘못을 돌이키는 끊임없는 회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을 이루는 회개를 하게 한다.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근심과 다르다.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