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예배는 천상과 땅위, 땅아래, 바다위와 바다 가운데 모든 피조물의 찬양으로 확장된다. 단순히 천상의 예배가 아니라 우주적인 예배다. 드디어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셨던 예수님이 어린양의 형상으로 말씀 두루마리 일곱 인 중 하나를 떼신다. 그때 네 생물중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요한을 말씀잔치에 초대한다. // 천상의 예배, 아니 우주적인 예배도 경배와 말씀이 핵심이다.
2 요한은 말씀 두루마리에서 흰말과 흰말을 탄자를 본다. 그는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아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했다. // 이제부터 상징에 상징이 이어지나보다. 흰말과 흰말을 탄자. 활과 면류관. 미래에 있을 일이지만 현재를 돌아본다면 흰 말을 탄자는 흰 옷을 입은 천상의 장로들 처럼, 혹은 사데교회의 남은 자 처럼 그 옷을 더럽히지 않고 주님과 동행한 믿음에 합당한 자들이요, 활과 면류관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말씀처럼 주님의 말씀 (칼 대신 활로)을 굳게 잡아 이기는 자에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곧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기 위해 싸우는 믿음에 합당한 성도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이해된다.
3,4 둘째 인을 뗀다. 이번에는 둘째 생물이 오라고 한다. (‘오라’는 명령은 일종의 화면전환 효과같은 명령어가 아닐까? 곧 ‘보라’, ‘액션/큐’라는 의미가 강하다고 생각된다.) 이번에는 붉은 말과 붉은 말을 탄자가 등장한다. 붉은 말을 탄자가 허락을 받아 (누구의)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는 큰 칼을 받았다. // 전도와 선교는 어디가고 오히려 사탄의 꾐에 빠진 두아디라 교회가 연상된다. 그러나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자들은 주님과 함께 심판자가 되어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할 것이다.
5,6 세번째 인을 뗀다. 셋째 생물이 오라고 말한다. 이번에는 검은 말과 검은 말을 탄자가 나온다. 검은 말을 탄자는 손에 저울을 가졌다. 네 생물 사이에서 밀 한되에 한데나리온, 보리 석되에 한 데나리온이요,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는 음성이 들렸다. // 음 서머나 교회처럼 환난과 궁핍을 당하는 교회가 미래에도 있음을 말씀하신다. 저울을 우리의 믿음을 재면 과연 육적으로는 궁핍해도 영적으로는 부요한 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물가가 폭등하여 육적으로는 빈공에 처하겠지만 영적으로는 부족함을 보이지 말라는 뜻이라고 개인적으로이해한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도 떠오른다.
7,8 넷째 인을 떼신다. 넷째 생물이 ‘오라’라 명한다. 이번에는 청황색 말이 나온다. 이번에는 청황색 말을 탄 자의 이름을 사망이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신다. (음 그럼 첫번째 흰말을 탄 자는 ‘전도/선교’ -둘째 붉은 말을 탄 자는 ‘시험/환난’ – 세째 검은 말을 탄 자는 ‘가난’ 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청황색 말을 탄 ‘사망’에 의해 땅 사분의 일이 검(전쟁)과 흉년(자연재해)과 사망(질병)과 땅의 짐승들(조류바이러스?)로 죽게된다고 하신다. // 사망이 땅의 사분의 일을 죽이는 권세를 누구에 얻었을까? 당연히 하늘 보좌의 하나님이시다. 욥을 괴롭힌 사탄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리라. 주님은 성도의 생명까지도 (물론 1/4이지만) 빼앗을 수 있도록 허락하시며 성도들의 믿음을 연단하신다.
9-11 다섯째 인을 떼신다. 이제는 ‘오라’는 명령어가 필요없는 모양이다. 요한은 순교자들의 영혼을 본다. 요한은 순교자를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자라고 정의 한다. 이들의 영혼이 하늘성전 제단아래 있다고 한다. 순교자들이 희생제물로 드려진 것이다. //몸은 순교했으나 순교자들의 영은 하나님과 교제한다. 순교자들의 영이 거룩하시고 참되신 대주재 하나님께 탄원한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니까?”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에게 흰두루마기를 주시며 좀더 기다리라고 하신다. 믿음의 형제자매들 중에서 순교의 피를 흘릴 자가 채워질 때까지 잠시 쉬라고 하신다. 시험을 통과한 자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생의 삶이 곧 우리의 소망이다.
12 여섯째 인을 떼신다. 더 이상 ‘오라’라는 명령어가 없다.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큰 바람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진다. (단순히 지상에서만이 아니라 전우주적 재앙이 닥친다.) 14절은 하늘과 땅이 (산과 섬이) 분리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늘과 (참 하나님과) 산과 섬이 (세상 신들) 확연히 구분된다. 땅의 임금들, 왕족들, 장군들, 부자들, 강한 자들,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는다. 굴과 산들의 바위 틈은 우상이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피난처를 뜻할 것이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에게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진노에서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우상들에게 빌어보았자 호흡없는 우상들이 뭘 어쩔꼬. 주님의 날, 진노날에는 이와같이 주님 앞에 능히 설자가 없다고 하신다.
// 길다. 토욜 아침이라 그래도 여유가 있다. 확실히 상징을 많이 사용하다보니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일곱교회에 하신 말씀이 연상되어 거기에 맞춰 이해하려고 했다. 인을 뗄 때마다 성도들의 상황은 악화된다. 믿음을 보기 힘들다. 결국은 심판을 향해 치닫는다.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순교자들 처럼 천상의 제단에 드려지는 존재로,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진노를 향해 달려가는 임금, 왕족, 장군, 부자, 강한 자로 사는 것보다 훨 낫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가 기다린다. 의인의 회중에 들어간다. 반면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종이든 자유자든 진노의 날에 호흡이 없는 우상에게 피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확실히 상징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길 간구한다. 이해한 것만이라도 순종하며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도록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