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8-29

남아 있어

18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요한은 이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눈이 불꽃 같다는 것은 두아디라 교회의 사정도 꿰뚫어 보시는 전지전능함을,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은 불순물이라곤 하나도 없는, 죄 없으신  주님의 행하심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19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도 잘 아신다.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신다고 말씀하신다. 네 나중 행위가 (앞에 사용한 사업과 같은 단어다) 처음 것보다 많다고 하시는 것을 보아 사랑/믿음/섬김/인내가 질적 양적으로 성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3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는 곳에 사탄의 꾐은 항상 있다.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가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이세벨을 용납한다고 책망하신다. 이세벨은 성도들을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다고 증언하신다. 이세벨은 회개할 기회를 얻었음에도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님은 회개하지 않은 이세벨을 침상에 던질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만일 그들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실 것이라고 하신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환난에서 구원하지 않으시고 오리려 그들의 자녀들까지 사망에 내버려 두실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의 눈이 불꽃 같다고 묘사했듯이, 주님은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펴 사람을 속속들이 다 아신다. 주님을 속일 순 없다. 각 사람은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24,25 두아디라는 아직 회개할 기회가 있다. 따라서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지 않고, 즉 사탄의 숨은 계략에 빠지지 않은 두아디라 교회에 또 다른 교훈으로 가르치지 않으실 것이라고 하신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주님의 말씀을) 주님 다시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명하신다. //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라는 24절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지 않는 자들의 수식어에 눈이 간다. 굳이 적용한다면 교회에 남아 있는 다는 것이 그나마 이세벨의 교훈을 피하는 길이요, 사탄의 숨은 계략에 빠지지 않는 길이라는 것이다.

26,27 이기는 자, 곧 끋까지 주님의 일을 지키는 사람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사람이) 주님과 함께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게 될 것이다. 이기는 자가 주님과 함께 심판자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받은 권세다. // 경쟁에서 살아 남는 자가 아니라 함께 경주를 완주하는 자가 이기는 자다.

28,29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새벽별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계시록22장에 보면 주님 자신이 새벽별이라고 하신다. 결국 이기는 자는 주님과 함께 한다. 온전한 임마누엘이다. 당연히 이번 편지도 모든 교회들에게 주어진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다.

요한계시록 2:8-17

8-11 서머나 교회에 편지하신다. 이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소개한다. / 주님은 서머나 교회도 잘 아신다. 서머나 교회가 환난과 궁핍을 당하고 있으나 실상은 부요하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산위에서 이렇게 가르치셨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서머나 교회가 실상은 부요한 이유가 바로 천국을 소유한 복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서머나 교회는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의 비방도 유대인들의 비방이라가 보다는 사탄의 꾐에 빠진 유대인들의 비방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그러나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주님은 장차 받을 고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감옥에 투옥되는 시험이 닥칠 것이라고 하신다. 열흘 동안 환난을 받을 것이라고 하시는데 열흘은 아마도 꽤 오랜 기간을 의미할 것이다. 그래도 충성하고 하신다.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신다. 생명의 열매나 생명의 관이나 영생을 의미한다. / 마찬가지로 이 말씀은 서머나 교회에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오늘 날에도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을 받지 않는다고 하신다. 영생이다. 둘째 사망은 심판의 사망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는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심판 때 사형선고를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12-17 버가모 교회에 편지하신다. 예수님을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 곧 ‘말씀’이신 분이라고 소개하신다. (요한복음 1:1을 기억하게 하신다.) / 주님은 버가모 교회도 잘 아신다. 어디에 사는 지 아신다고 하신다. 버가모가 사는 곳이바로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고 하신다. 장소적 개념보다 박해를 당하는 영적 상황을 염두에 두신 표현이 아닐까? 주님은 사탄이 판을 치는 버가모에서 안디바가 순교할 때도 버가모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굳게 잡아서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칭찬하신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가모 교회에도 책망할 것이 있다고 하신다. 첫째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것이었다. 발람의 교훈은 이스라엘이 이방여인과 통혼함으로 우상제물을 먹고 행음하는 범죄를 가리킨다. (실상 이둘은 같은 잘못이다.) / 주님은 회개하라고 명하신다.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말씀으로 싸우시겠다고 (벌하시겠다고) 하신다. / 이 말씀 역시 모든 교회들이 들어야 한다.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이겨내야 한다. 이겨야 생명 양식을 (만나를, 곧 말씀을 가리킨다.) 먹고  하나님나라 입장권을 (이름 적흰 흰돌을,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곧 영생이다. 이기지 못하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 이기지 못하면 의인의 회중에 누가 있는 지 그 이름을 알 수 없다고 하신다.

// 이기는 자만이 영생을 누린다.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라고 하신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연단은 잘못을 돌이키는 끊임없는 회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을 이루는 회개를 하게 한다.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근심과 다르다.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라고 하신다.

요한계시록 2:1-7

1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 별 중 에베소 교회 사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 즉 에베소 교회에 계시한 말씀이다.

2,3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아신다고 말씀하신다. 특별히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고 또 자칭 사도들의 거짓된 것을 폭로한 것,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박해를 참고 견뎌내고 게으르지 않았다고 칭찬하신다. // 주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은 감사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게 한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에 나를 맡기는 수밖에 없다.

4,5 그러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신다. 처음 사랑을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신다. 만약 처음행위를 가지도록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직접가셔서 에베소의 촛대를 옮기실 것이라고 하신다. // 처음 사랑을 처음 행위라고 하신다. 사랑은 말과 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함이 행함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회개하는 것이 곧 처음 행위를 가지는 것이고 처음 행위를 가지는 것이 곧 회개의 증거가 될 것이다. 촛대를 옮기신다는 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6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듯, 주님도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신다. // 니골라 당이 주장한 것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구원받은 자가 육체로 짓는 죄는 더이상 정죄받지 않는다. 영혼의 구원은 육체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음~ 그래서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버렸다고 책망하시는구나. 에베소 교회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면서도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고 지적하시는 듯.

7 수신자가 에베소 교회에서 교회들로 바뀐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이기는 그에게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에게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를 주어 먹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 에베소 교회뿐 아니라 2000년 가까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값없는 은혜’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라는 ‘값싼 은혜’로 둔갑시키는 가르침이 얼마나 많은가? 이기는 성도에게 생명나무 열매를 주신다고 하신다. 이긴다는 것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기보다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탄의 꾐(유혹)에 대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1:9-20

계시자 예수 그리스도

9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하는 발신자는 요한이다. 요한은 자신을 첫번째 수신자들의 형제라고 소개한다. 형제(자매) 라는 소개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장유유서가 있을지언정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자녀로 성도들은 형제들이다. 두번째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한다. 그냥 떠오르는 연관어는 환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다스림, 참음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림이다. 과거 현재 미래에도 예수와 함께 하는 자라고 소개한다. 임마누엘이다. 영생이다. 세번째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는 자라고 소개한다. 사도됨을 선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직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다고 (귀양살이 중이라고) 적는다. // 요한이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유는 아마도 수신자들 역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기 때문일 것이요, 그래서 형제라고 언급했을 것이다. 가족에게 편지하는 심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한다.

10 주의 날에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고) 듣는다. 그것도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으로 등뒤에서 들렸다. // 주의 날은 주일을 뜻할 것이다. 음성이 앞에서 들려온 것이 아니라는 뒤에서 들렸다는 것은 어쩌면 엉뚱한 데 귀를 기울이는 성도의 연약함을, 한편으로는 그래도 뒤에서 큰 소리로 불러 주시는 부모님같은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한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요한으로 하여금 보고 (듣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하신다. // 일곱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듯, 이들 일곱교회는 각양각색의 모든 교회라고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 오늘 우리 교회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12 요한은 누구 음성인지 알아보려고 뒤를 돌아본다. 뒤를 보니 일곱 금 촛대가 있었다. // 일곱 금 촛대는 일곱교회라고 20절에서 계시자,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명해 주신다.

13-16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가 보였다. 인자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단어다. 인자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상 되심을 상징하지 않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하얗게 빛나는 모습으로 (변화산상의 예수님을 상상하는), 그리고 그의 눈은 불꽃 같다고 묘사한다. 그리고 발은 빛난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다고 (예수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다) 한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하나님의 음성)와 같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다고 묘사산다. 일곱 별은 20절에서 일곱교회의 사자라고 자체 주석을 단다. 다시말해 일곱교회에 말씀을 하시는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자들을 통해 말씀하실 것이다. 당연히 좌우에 날선 검은 주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의 권위는 세상과 같지 않다.

17-19 요한은 똑바로 볼 수 없었다.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죽은자 같이 되었다. 그러나 그분은 오른손을 요한에게 얹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자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하신다. 예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살아있는 성부 하나님과 동등됨을 선언하신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영원토록 살아계셔 심판자로 다스리신다고 말씀하신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 요한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대신 요한에게 지금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명하신다.

20 자체 주석으로 오른손의 일곱별은 일곱교회의 사자, 곧 모든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주님의 권세로) 전할 자들을 의미한다. 일곱 촛대는 일곱교회, 곧 각양각색의 모든 교회라고 하신다.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예수의 ‘계시’보다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요한은 계시에 앞서 계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한다. 예수 그리스도. 계시를 밝히느라 계시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신다.

요한계시록 1:1-8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 첫부분부터가 구약의 선지서와 차이난다. 앞서 묵상한  말라기는 ‘여호화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신 말씀 (An oracle)’, 오바댜는 ‘오바댜의 묵시라(The vision of Obadiah)’  라고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확실히 무게감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계시다.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천사를 예수그리스도의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하신 계시다. 곧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2 요한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에게 하신 (주신)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의 증거 (해설)를 예수그리스도의 천사를 통해 (듣고) 본 것을 그대로 (가감없이) 증언하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곧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다. 때가 가깝다. 지키는 지 안 지키는 지 판결할 때가 가깝다는 뜻이리라.

4-6 요한은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를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편지형식으로 적어 보낸다. 우선 삼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문안한다. 삼위 하나님이 성부, 성령, 성자 순으로 소개된다. 따라서 4절의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특징도 되겠지만 8절에서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는 말씀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성부 하나님을 지칭한다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다. 하나님의 보좌 앞의 일곱 영은 아마도 온전하고 완전하신 성령하나님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의 첫 열매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소개된다. 이 삼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일차적 관심은 성자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한다.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좀더 세밀하게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성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이라고 덧붙인다. 이어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분, 땅에 있는 모든 족속에게 심판자로 다시 오실 분이라고 소개한다. 당연히 심판받을 자들은 애곡하게 될 것이다.

8 삼위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기록한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아시아 일곱교회에 편지형태로 전달한다. 요한은 편지의 문안에서 삼위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은혜와 평강을 전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적고 있으니 당연히 삼위 하나님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자세히 소개한다. 특별히 시공을 초월하시는 삼위 하나님 가운데 구름 타고 다시 오실, 육체로 오실 (가시적으로 오실) 예수님이 계시의 주체가 되신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되다고 하신다. 읽고 듣고 지키는 것도 삼위일체다. 성자의 계시를 읽고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듣고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하여 읽고 들은 것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나라가 되고, 즉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이요, 제사장,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의 마땅한 바다.

편지라는 친밀한 양식을 통해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암호문서가 아니라 당시 독자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나라 백성의 언어로 편지한다. 물론 2천년 가까이 떨어진 우리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실하다. 얼마만큼 이해하고 순종할 수 있을지 기대반 두려움 반으로 또 요한계시록을 편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