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 1:1-9

오바댜의 묵시. 오바댜에게 주님께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말씀이다. 오바댜는 주하나님께서 천사들 (주의 사자들에게) 에돔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듣고(보고) 전한다.

에돔으로 쳐들어가자. 에돔을 가장 보잘 것 없는 나라로 만들어 세상 멸시를 받게 하겠다. 에돔은 바벨탑을 쌓던 자들처럼 교만했다. 설령 에돔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독수리처럼 높이 오른다 하여도 주님은 거기서 에돔을 끌어내신다고 말씀하신다.

에돔은 남김없이 아주 망할 것이다. 에돔이 깊이 숨겨둔 보물까지도 다 빼앗길 것이다. 에돔의 동맹국들에게 배반을 당할 것이다. 오히려 동맹국들에게 정복당할 것이다. 에돔은 열국중에 어리석은 나라가 될 것이다. 바보취급을 받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에돔에는 지도자들이 다 없어지고 말것이다. 에돔의 용사들도 놀라자빠질 것이요 에서의 산에 있는 사람, 곧 산으로 도망친 에돔사람도 다 죽임을 당할 것이다.

// 8월에 에스겔을 묵상할 때도 (23장) 에돔의 멸망에 대한 예언 몇줄이 있었다. 에돔이 복수심으로 유다를 괴롭혔기 때문에 주님이 이스라엘의 손으로 원수 갚겠다고 하셨다. 에돔이 혈육 유다를 괴롭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에 대적하여 교만하였음을 의미한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면 형제를 괴롭힐 수 없다. 이웃을 괴롭힐 수 없다. 주님이 사자들에게 에돔으로 쳐들어 가자라고 말씀하심으로 에돔에 대한 심판의 주체가 주님이심을 분명히 한다. 주님이 이스라엘의 손으로 에돔 원수를 갚으시고 에돔이 동맹국들에게 배신을 당하게 하신다. 이렇게 교만한 에돔이 열국중에 어리석은 나라가 되듯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교만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겸손하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는 뜻이리라.

시편 144 (1-15)

1-7 다윗의 노래다. 반석이신 주님이 전쟁도 전투도 가르쳐 주셨다고 찬송한다. 그리고 사람이 무엇이기에 인생이 무엇이기에 반석이시요, 요새, 산성, 구원자, 방패, 피난처 되신 주님의 사랑을 받습니까? 라고 노래한다. 이런 다윗이 왜 갑자기 인생을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고 지나가는 그림자라고 노래할까? 헛것, 그림자에 불과한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주시길 간구한다. 산들이 주님의 임재의 상징인 연기를 뿜어낼 것이라고 노래한다.비록 전쟁에 능한 손으로 가르침을 받고, 전투에 필요한 무기를 잡는 손가락으로 훈련을 받았어도 결국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다윗이다. 주님께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자신을 대신해서 싸워달라고 노래한다.

8-11다윗의 적들은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고 허세로 오른손을 들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질대로 교만하지만 시인은 새노래로 (주의말씀이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듯, 나의 찬양도 늘 새롭다) 주님을 찬양하겠다고 고백한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로 찬양하겠다고 노래한다. 주님만이 왕들에게 (왜 복수를 사용했을까?)  승리를 안겨주시는 분이시라고 노래하며 자신을 무서운 칼에서 건져주신 주님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반복해서 주님을 망령되이 부르고 하나님을 대적해서 높아질대로 높아진 대적들을 고발한다.

12-15시인은 분위기를 확 바꿔 하나님나라를 노래한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자녀들이 건강하게 아름답게 자라는 나라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먹을 것이 풍성하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나라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예배로 충만한 나라요 전쟁의 슬픔이 없는 나라다. 이런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 사는 백성이 복이 있다. 혼자가 아니라 백성이다. 외롭지 않다.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복이 있다.

// 주님께 훈련 받았다고 만사가 형통한 것은 아니다. 시인이, 곧 다윗의 노래는 만사의 형통은 주님의 임재에 있다고 노래한다. 주님의 다스림에 있다고 노래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이 복이 있다고 노래한다. 임마누엘이다. 늘 새로운 노래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 나는 늘 말하였다.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은 나의 희망!” 주님께서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애3:21-25 새번역)

시편 143 (1-12)

나는 주의 종입니다.

1 (다윗의 시로 알려져 있다.) 다윗은 주께 진실과 의로 응답해 달라고 기도한다. 진실과 의. 요한일서 1:9에서 요한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끗하게 하신다고 가르친다. 다윗은 자신이 죄인임을 안다.

2 다윗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곧 자신도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라고 주께 자비를 구한다.

3-6 다윗은 원수가 자신의 영혼을 핍박한다고 탄원한다. 육체적인 힘듦보다 영혼이 주님의 응답을 듣지 못하는 암흑을 더 힘들어 한다. 심령이 상할 수 밖에 없다. 지난 날에는 분명이 주님의 돕는 손이 자신과 함께 했었는데 라고 읊조리며 주님의 능하신 손을 떠올리며 주님을 향하여 손을 펴고 도움을 구한다. 단비를 기다리는 마른 땅같이 주만 바라본다.

7,8 다윗은 주님의 응답만 바라본다. 영혼이 피곤할 정도로 영이신 주님의 얼굴을 바란다. 아니 무덤에 내려가는 두려움에 빠진다. 그러나 다윗은 어둔 밤을 지나 아침에 들려 올 주의 인자한 말씀을 기대한다. 말씀에 신실한 주를 의뢰한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지, 갈 길을 보이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지친 영혼을 주께 드린다.

9 주님 나를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난왔습니다.

10-12 (다윗의 탄원에 대한 응답으로 읽는다.) 의인들이 아니라 원수들에게 둘러싸여서도 주님의 뜻을 배워 주님의 뜻을 행해야 함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주님만이 선하시기 때문이다. 곧 고난도 주님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 끝에 공평한 땅이 있음도 발견한다. 그래서 그곳까지 주님의 인도로 인내의 경주를 하길 원한다.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것이 다윗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고도 고백한다. 다윗은 의로우신 주님이 다윗의 영혼을 환난에서 구해주실 것을 확신하며 기도한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원수들의 결박을 끊어주시듯, 다윗의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실 것도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확신에차 고백한다. “나는 주의 종입니다.”

// 원수에 둘러싸여 있는 다윗. 영혼이 피곤하고 무덤에 내려가는 두려움에 빠진 다윗. 다윗은 환난의 길 끝에 공평한 땅이 있음을 본다. 더 이상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원수를 보지 않고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인자하신 주님을 본다. 자신도 주님의 종이라고 고백한다.

푯대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걷는 성도들의 길도 마찬가지다. 복음과 함께 받는 고난의 길이지만 그 끝은 온전한 하나님나라다.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 다스리심이 있는 의와 희락과 화평의 나라다. ‘나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다. 임마누엘의 나라다.

왕하6:15-17

하나님의 사람의 시종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보니, 강한 군대가 말과 병거로 성읍을 포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시종이 엘리사에게 와서 이 사실을 알리면서 걱정하였다. “큰일이 났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엘리사가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의 편에 있는 사람보다는 우리의 편에 있는 사람이 더 많다.” 그렇게 말한 다음에 엘리사는 기도를 드렸다. “주님, 간구하오니, 저 시종의 눈을 열어 주셔서, 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 그 시종의 눈을 열어 주셨다. 그가 바라보니, 온 언덕에는 불 말과 불 수레가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루 에워싸고 있었다.

주님 간구하오니 제 눈을 열어서 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시편 142 (1-7)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1 다윗은 (이 시편에는 ‘다윗이 굴에 있을 때 드린 기도’ 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소리내어 주께 부르짖으며 간구한다. 대적들을 피해 굴에 숨어 있지만 주 앞에는 큰 소리로 간구한다. 주님께 발견됨이 대적들에게 발각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알기때문이다.

2 다윗은 자신의 원통함을 주님 앞에 시시콜콜하게 아뢴다.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미주알고주알 말한다. (주님께서 어찌 다윗의 원통함과 어려움을 모르실까? 자신의 사정을 들어줄 사람이 있는 사람이야 말로 행복하다고 한다. 아내들이 남편에게 조잘대는 이유도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속마음을 쏟아 버려야 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된다.)

3 다윗도 주님께서 자기가 얼마나 속상한지 아시겠지만, 곧 다윗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심을 알지만, 대적들이 자신을 잡으려고 올무를 쳐놓았다고 구체적으로 고발한다.

4 좌우사방을 살펴보아도 도움을 청할 아는 사람도 없고 피난할 곳도 없다고 탄원한다. 더군다나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다고 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5 인생으로부터는 다윗의 처지를 알고 도와줄 사람이 없기에 결국 다윗은 영이신 주님께 부르짖는다. 주님만이 나의 피난처시요, 주님만 있으면 다른 것들은 다 필요없다고 노래한다.

6 대적들로부터 쫓겨 굴에 숨어있는 다윗은 제발 대적에게서 자신을 건져달라고 탄원한다. 대적들이 자신 보다 강하고 다윗 자신은 비천하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주께 부르짖으니 들어달라고 탄원한다.

7 (마지막 절은 다윗의 타원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다.) 빈궁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신 주님의 이름을 감사한다. 당연히 다윗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서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 않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복있는 사람처럼 의인의 회중에 들어가 의인들에게 둘러싸인 자신 본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면서 인내로 믿음의 경주를 하게 하소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의인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달리게 하소서. 나에게도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렇다.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주님께서 보살피신다.)

시편 141 (1-10)

기도가 곧 예배가 되게 하소서

1-3 다윗은 주님을 부른다. 빨리 와서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탄원한다. 하루를 마치고 (혹은 하루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기도가 주님 앞에 향기로운 저녁 제사로 드려지길 원한다. 그래서 자신의 입을 지켜달라고 간구한다. 주님께 호소하는 말조차도 (기도도) 함부로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해석하면 안될까? 탄원이 제사, 곧 예배가 되길 바란다.

4-7  다윗은 자신의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악한 자들과 어울려 악한 일을 하지 않을뿐더러 악한자들과 함께 진수성찬을 (뇌물밥상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악한 자들과 함께 밥상을 하지 않겠다는 뜻은 결국 악한 이권을 챙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악인들의 대접을 받기보다는 의인의 매를 맞겠다고 노래한다. 악인들에게 대접을 받고 악인들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라 악인들의 악행을 고발하겠다고 노래한다. 시인의 증언이 법정에서 사람들에게 옳다고 채택되면, 뇌물을 받고 악행을 눈감아 준 재판관들은 재판석에서 끌려 내려질 것이다. 저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바람에 흩어질 것이다.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고 망할 것이다.

8-10 다윗은 주님흘 향한다. 주께 피한다. 악한 자들이 연합 공격을 받는 다윗은  영혼의 빈궁함을 느껴 주님께 자신을 버려두지 말아달라고 기도한다. 다윗을 잡으려고 악인들이 놓은 올무와 함정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오히려 악인들이 자기가 쳐놓은 그물에 걸리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그리고 다윗 자신은 온전하게 우나 좌로 치우치지 않고 주님의 길을 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 시인(다윗)은 자신의 탄원(간구)도 빈궁한 영혼을 채우는 제사(예배)가 되게 해달라고 노래한다. 육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악한 일에 기울지 않게 하시고 탐욕의 기도를 버리고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감사와 찬양의 기도가 넘치는 하루를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