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인까지 뗀 결론은 진노의 큰 날에 과연 누가 능히 설 수 있겠느냐? 라는 질문만 남는다. 물론 다섯째 인을 떼었을 때 보았던 천상의 순교자들 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들이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땅에 있는 성도들은…
1 우주적인 재앙이 있은 후, , 요한는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것을 본다. 네 천사는 땅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땅과 바다에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한다. 바람이 없다.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성령께서 더 이상 역사하시지 않는 상황이다. 물론 성령이 천사보다 약해서는 아닐 것이다.)
2-8 또 다른 천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뜨는 데로부터 올라와 땅과 바다에 바람을 붙잡아 맨 네 천사를 향해 큰 소리로 꾸짖는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다시 말하면 성령의 인치심이 계속된다고 하신다.) 요한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듣는다. 이스라엘 자손 각 지파 중에서 일만 이천씩 총 십사만 사천이나 되었다. 출애굽한 60여만의 이스라엘 자손에 비하면 훨씬 적은 무리라고 생각되지만 상징성을 볼 때 12의 제곱과 10의 세제곱을 곱한 값이다. 다시말하면 충만한 수라는 것이다. // 우주적인 재앙으로 성령의 역사마저 중단되는 듯 보이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까지 구원사역을 중단하지 않으신다. 그럼 네 천사는 타락한 천사를 가리키는 모양이다.
9-10 환상 화면이 다시 바뀐다. 요한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온 것을 본다. 셀 수 없는 큰 무리. 이스라엘의 십사만 사천은 온 열방에서 인침을 받은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포함될 것이다. 이들은 이긴 자들이다.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떼창을 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습니다.” 천상 예배찬양의 핵심이다.
11,12 모든 천사가 보좌의 장로들과 네 생물 주위에 서 있다가 구원받은 성도들의 떼창에 동참한다. 이들도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한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 5장에서 네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시작한 경배와 찬양이 모든 천사들로 그리고 온피조물의 떼창으로 퍼져나갔다면 이번 7장에서는 구원받은 모든 자들의 떼창에서부터 모든 천사의 찬송으로 다시 모아진다.
13-17 장로 중 한명이 요한에게 이 흰옷입은 자들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묻는다. 요한은 자신은 모르지만 주님은 아신다고 대답하자, 주님이 요한에게 그들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알려준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된 자들이다.” 주님은 이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보좌에 앉으신 삼위 하나님께서 이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고 하신다. (장막을 치신다는 것은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어주신다는 뜻이리라) 성전에,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는 이들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하신다. (‘다시’ 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신 것을 보아 주리고 목마르고 상함의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필수과정처럼 들린다.)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면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보좌 우편이 아니라는 점에서 삼위 하나님이 함께 하나로 계심을 유추할 수 있다) 이들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신다. 생명수 샘으로 인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환난과 인내와 연단을 거쳐 소망을 이룬 이들의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 이스라엘의 십사만 사천을 12의 제곱과 10의 세제곱을 곱한 충만한 수라고 했다. 그러나 모든 열방으로부터의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비교하면 확실히 적은 무리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 31,21절에서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덧붙이셨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그 나라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예수님 말씀따라 이스라엘에서 참이스라엘, 곧 의인의 회중에 들어갈 자들은 충만하지만 확실히 적은 무리일 것이나 (물론 십사만 사천은 상징적인 숫자다), 열방에서 의인의 회중에 들어갈 자는 셀 수 없는 큰 무리라는 요한이 듣고 본 환상이 위로가 되는 주일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