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1-13

무대가 한번 더 회전한다.

1,2 작은 두루마리를 요한에게 주었던 천사는 요한에게 갈대지팡이를 준다. 지팡이 같은 갈대는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는 ‘잣대’다. 성전을 측량하는데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신다. 성전 바깥 마당은 이방인에게 주어졌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을 것이라고 하신다. // 성전을 갑자기? 거룩한 성이라고 한다. 갈대 지팡이로 측량해 보니, 더이상 작은 규모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활하셔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신 (다스리시는) 우리 주님이 성전이요, 성도들이 성전의 구성원들임을 생각할 때 성전을 거룩한 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3 작은 두루마리를 준 힘센 천사 (주님)은 주님의 증인 두명에게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는 권세를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천이백육십일은 마흔두 달이다. 이방인들이 거룩한 성을 짓밟을 때 이 두 증인은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을 할 것이다. 3년 반정도의 기간인데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주님의 시간으로는 얼마동안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정해진 기간이 있다는 의미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4 두 증인을 이땅에서 주 앞에 서있는 두 감람나무 두 촛대라고 부연하신다. // 다윗은 시편에서 감람나무를 주님의 백성으로, 특별히 스가랴 4:14에서는 기름부음을 받은 지도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촛대는 일곱촛대를 일곱교회라고 했듯이 교회를 뜻한다.

5 만일 누구든지 이 두 증인을 해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삼켜버릴 것이라고 하신다. 해하고자 하는 자들은 두 증인의 입에서 나오는 불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신다. // 입에서 나오는 불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할 것이다. 말씀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6 두 증인이 받은 권능, 즉 권세는 예언을 하는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며, 또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가지 재앙으로 땅을 칠 수 있다고 하신다. // 무슨 권능을 행하든, 예언을 하는 권능(곧 말씀을 전하는 권세) 보다 큰 권능이 있을까? 마태복음 28:18 예수님이 받은 권세고 임마누엘의 성도들이 부려야할 권세다.

7 두 증인이 증언를 마칠 때 (곧 마흔 두달이 차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두 증인과 더불어 싸워 두 증인을 이기고 두 증인을 죽일 것이라고 하신다. // 두 증인의 이땅에서의 삶의 끝이 승리가 아니라 패전이라고 하시는 것을 명심하자. 세상에서의 성공은 결코 증인의 삶을 살아 내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패전같은 순교는 증인의 삶을 살아 내었다는 증거다. 하나님나라에서는 성공이다.

8 두 증인의 시체가 큰 성의 길에 놓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 큰 성은 영적으로 소돔이나 애굽에 비유될 수 있다고 하신다. 그리고 두 증인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곳이라고 하신다. // 두 증인의 죽음은 타락한 세상 속에서 구별되이 살며 예언하다가, 결국 순교한다는 뜻이리라. 지상교회의 끝이다. 교회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 열방이 두 순교자의 죽음을 헛되게 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인듯. 삼일째가 되었어도 썪어가기만 하는 시체를 보고 세상은 그럼 그렇지 하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쇄락을 보면서 세상도 지금 쾌재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

10 두 증인을 두 선지자라고 부른다. 선지자로 이 땅에 사는 것,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삶을, 이 땅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따라서 땅에 사는 사람들은 두 증인의 죽음을 오히려 즐거워하고 기뻐하기를 선물을 주고 받기까지 한다. // 증인이 곧 선지자다. 그러나 세상은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다만 쾌락만 추구한다.

11,12 (그러나)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죽임을 당한 두 증인 속으로 들어가서 두 증인이 스스로 일어서게 되고 구경하는 자들은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두 증인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원수들은 그저 구경만 할뿐이다. // 에녹처럼, 예수님처럼. 삼일째가 되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어 세상은 역시나 하면서 즐거워하고 기뻐했지만, 그 즐거움과 기쁨이 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두 증인에게는 새생명을, 구경하는 자들에게는 죽음의 공포를 주신다. 이보다 더 큰 반전이 있을까?

13 그 때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질 것이라고 하신다. 죽은 사람이 칠천이요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린다고 말씀하신다. // 성은 거룩한 성을 뜻하는 지, 아니면 온 땅을 뜻하는 지 분명하지 않다. 만약 거룩한 성의 십분의 일이라면 감람나무요 촛대인 성도와 교회의 십분의 일도 무너진다는 뜻일 것이다. 십일조를 떠올린다면 십분의 일은 전부를 상징한다. 다시말해 이땅의 가시적 교회는 무너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신 하늘 성전이 우뚝설 것이다. 남았다는 말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은 수를 의미를 한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두려워하여)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늘 성전, 우주적 성전, 거룩한 성의 일원이 될 것이다. 의인의 회중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 교회는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하는 권세를 받았다. 화려하게 아름답게 치장하고 예언하는 권세를 받은 것이 아니다. 굵은 베옷을 입어야 한다. 굵은 베옷을 입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성도가 할 수 있는 것은 순종외에는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받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성도들로 하여금 열방에  나아가 제자삼고 세례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순종하게 하는 것에 집중한다. 다른 것이 없다. 주님은 이런 성도와 항상 함께 있다고 하신다. 굵은 베옷이 흰 옷이 될 때까지, 곧 온전히 그리스도로 옷입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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