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0 (1-15)

1-3 요한은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본다. 그 천사는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고 불리는 용을 잡았다. 용을 잡아서 쇠사슬로 결박하고 무저갱에 가둔 후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도록 열쇠로 잠그고 인봉까지 하였다. 천년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인다고 하시는데…

4 요한의 눈은 하늘의 보좌들을 향한다. 보좌에 앉은 자들은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 이들은 예수를 증언하고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이라고 한다. 이들은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들로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 한다고 한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을 지칭할 것이다. 짐승의 표를 받았다는 것이 곧 죽었다는 것이리라)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도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순교하고 하늘 보좌들에 앉은 자들을 첫째 부활이라고 한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복되고 거룩하다고 한다. 첫째 부활에 속한 자들은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수 없다고 한다. 이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할 것이다.

7-10 천년이 차면 사탄이 그 옥, 곧 무저갱에서 잠깐 놓일 것이다. 무저갱에서 나와서 땅의 사방의 백성을 거짓으로 속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여 연합하도록 할 것이다. 연합군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이 많다고 한다. 이들이 세상 방방곡곡으로 다니며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포위하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린다고 하신다. 그들을 미혹하는 지도자 마귀가 짐승과 거짓선지자에게 집행되었던 것과 같이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진다. // 결국 무저갱의 천년은 사형수의 복역기간이요, 무저갱에서 잠깐 놓인 이유는 끝내 회개 하지 않는 사형수를  유황불못에 던지는 사형집행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11 요한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본다. 땅과 하늘 곧 피조세계는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의 영광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12-15요한은 사망책과 생명책을 본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살고 사망책에 기록된 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진다. 이것이 곧 둘째 사망이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천년이란 시공을 초월한 천상의 하나님나라의 시간으로 이해된다. 예수님께서 제자 칠십인을 따로 세우사 추수꾼을 보내어 하나님나라가 가까운 줄 알게 하신 후 칠십인이 돌아왔을 때, 예수님은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셨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에는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하셨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늘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다스리신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요, 이미 이땅에서도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자들, 곧 영생을 누리는 자들이다. 따라서 사탄의 둘째 사망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다. 사탄은 끊임없이 땅의 백성들을 미혹하여 사람들이 하나님나라의 백성, 곧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고 하나, 곧 사망의 권세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천상으로 쿠데타를 일으켜보려고 하나 (마치 땅의 나라가 하늘에 임하게 하려는 것 처럼, 이보다 어불성설이 있으랴마는) 처음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 싸움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천상의 하나님나라가 이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요한이 하늘 문이 열린 것을 보듯이, 이땅에 사는 모든 성도들이 사닥다리로 (기도로) 하늘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하나님나라를 맛만 보는,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천상의 하나님나라가 이땅까지 확장되는 것이리라. 주님이 말씀으로 지으신 땅과 하늘이 천상의 하나님나라에 포함되어 구분이 없어진다. 그래서 요한은 땅과 하늘이 피하여 간데 없다고 한다. 곧 새하늘과 새땅이다. 어렵다.

요한계시록 19:11-21

땅에서는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고 하늘에서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벌어졌다.

11 요한은 하늘이 열린 것을 본다. 백마와 백마를 탄자, 충신과 진실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를 본다. 이분이 공의로 심판하시고 공의를 위해 싸우신다고 한다. // 하늘에서 싸운다기 보다는 땅에서 공의로 심판하시고 공의로 싸우시고  승리하셔서 개선하시는 모습이 아닐까?

12,13 요한은 백마 타신 분을 좀 더 자세히 묘사한다. 그 눈은 불꽃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명찰을 하나 달고 있었는데 그분 자신만 아는 이름이라고 한다. 백마타신 분은 피묻은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 12절에서는 피 얼룩에 이름이 안보였을 수 있고 13절에서는 천사가 친히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름을 가르쳐주셨을 것이다. 옷에 피묻었다는 것은 십자가의 보혈로 이기셨다는 뜻일 것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이땅에 계실 때 이미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그렇다면 십자가의 죽으심이 승리의 피뿌림의 시작일 것이다.

14-16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랐다.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와, 그 검 (곧 말씀)으로 만국을 치시고 그들을 철장에 가두시며, 포도틀에 던져 밟으실 것이라고 하신다. 백마타신 분의 옷과 다리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는 이름이 적혀있다고 한다. // 예수님이 대장되시는 하늘 군대다. 당연히 성도들은 의의 병기가 되어야 한다. 어린 양의 신부 예복처럼, 화려한 옷이 아닌 깨끗한 옷을 입고 대장되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결국 정결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

17,18 요한은 또 다른 환상을 본다. 한 천사가 태양 안에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치신다.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열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난 큰 자나 모든 자의 사르이 먹으라” // 다분이 상징적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이 누리던 것들이 공중에 나는 모든 새, 곧 성도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라고 하셨다.

19-21 요한은 분명히 보았다.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백마 탄 자와 백마를 탄 자를 따르는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지만 짐승이 잡히고 짐승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거짓 선지자도 잡히는 것을. 이들은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도록  사람들을 미혹하던 자였다. 이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산채로 유황불 붙은 연못에 던져진다. 짐승에게 미혹되어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의 우상에 경배하던 모든 자들도 백마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 곧 말씀에 죽는다. 공중의 모든 새, 곧 성도들이 그들의 몫을 차지하고 배부르게 된다. // (예수님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 끊임없이 반복되는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과 성도들의 승리요,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의 패망이다.

요한계시록 18:21-19:10

21 한 힘 센 천사가 다시 등장한다. 이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큰 성 바벨론이 이꼴이다.

22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는 큰 성 바벨론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상이나 사치품을 만드는) 세공업자도 큰 성 바벨론 안에서는 더 이상 일거리가 없어 떠날 것이고, 맷돌 소리도  큰 성 바벨론 안에서는 들리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 큰 성 바벨론에 거주하는 자들은 모두 다 결국 맷돌이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질 운명이라는 뜻이리라.

23,24 큰 성 바벨론 안에는 등불 빛이 다시 비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된다고 하신다. 당연히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은 팔고 사고하는 장사치들이 돈으로 득세하여 권력을 쥐고 흔들며 백성들을 거짓으로 속였기 때문이고 선지자들과 성도들을 핍박하고 순교자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 돈이 신이 된 세상의 결국은 암흑이다.

19:1,2 큰 성 바벨론은 무너졌다. (요한의 시선은 다시 하늘을 향한다.) 요한은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곧 경배와 찬양 소리를 듣는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다.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셔서 하나님의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다.”

3 두번째로 할렐루야가 울리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갔다고 한다. // 하나님의 임재가 영원함을 뜻한다.

4,5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한다. 이들도 “아멘 할렐루야”로 경배한다. 이들의 경배에 보좌에서 한 음성이 나온다. “하나님의 종들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너희들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 어린 양 예수님의 음성이 아닐까? 우리의 경배와 찬양의 대상은 우리 하나님이시다.

6-8 요한은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할렐루야’ 찬양을 듣는다.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어린양의 신부가 자신을 준비를 마쳤다. 신부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다.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 우리 하나님이 혼주가 되신다. 우리의 즐거움은 어린양의 신부(아내)가 되는 것이다. 화려한 예복이 아니라 깨끗한 예복을 입는다. 세상은 화려한, 사치스러움을 자랑하지만 우리는 깨끗함을 자랑해야 한다.

9,10 천사가 또 요한에게 말씀하신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라고 기록하라고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고 하신다. 요한은 이 천사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 이 천사는 요한도 예수께서 인정하신 형제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니 천사에게 엎드려 경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한다.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다”는 말씀은 “예수께서 인정하셨다는 것은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다” 라는 뜻일 것이다. // 다시한번 우리의 경배 대상이 오직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곧 의인의 회중에 초대받은 자들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복있는 자다.

요한계시록 18:9-20

9,10 큰 성 바벨론은 무너졌다. 여왕임을 자처한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지자 큰 성 바벨론과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바벨론이 불타는 연기를 보고 울고 가슴을 친다. 그러나 차마 가까이 하지 못하고 멀리 서서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 순식간에 심판을 받는구나”라고 애통해 한다. // 회개가 아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의 심정이 아닐까? 음행하고 사치하는 것이 사형에 해당 한다는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무시하고 행하고 다른 사람들까지 괜찮다고 부추기던 결과다.

11-13 땅의 왕들뿐이 아니라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한다. 왜냐하면 상인들의 상품을 사면서 사치할 구매자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한은 상인들의 물품이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 그리고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 값지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황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고 한다. // 품목들을 자세히 보면 일상용품이 아니라 사치품임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상대적으로 귀한 것부터 나열했다. 마지막으로 종들과 사람의 영혼, 곧 사람들의 목숨도 팔고 사고 했다. 그러니 노예들의 가치를 짐승보다도 못하게 취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15 (그러나) 바벨론이 탐하던 과일, 바벨론이 탐하던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다시는 이것들을 다시 (맛)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물론 바벨론에게 이것들을 팔아 치부한 상인들도 장사가 망하는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서서 울고 애통할 것이라고 하신다.

16-19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바벨론은 화려하게 꾸몄지만 순식간에 망한다. 음녀와 마찬가지로 겉은 화려하나 속빈강정이다. 큰 성 바벨론의 부요함이 한시간에 망한다고 한다. 대양을 항해하던 큰 배가 불타 가라앉은 것처럼 묘사한다. (타이타닉 같이 큰 배가 어찌 침몰할까 라고 다들 생각했듯이). 큰 성 바벨론과 무역을 하던 선장, 선객, 선원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일을 하던 모든 사람들도 큰 성 바벨론이 망하자 자신들도 망했다는 것을 안다. 이들도 절망감에 울며 애통해 한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대형 우량주를 산 모든 사람들이  주가가 폭등해 치부하였더니 주가가 폭락해 바닥을 치자 순식간에 망하고 만다.

20 (그러나)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즐거워한다. 하나님이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위하여 큰 성 바벨론에게 심판을 행하셨다고 하신다.

// 오늘도 심판의 결정적 이유를 사치라고 하신다. 사치를 위해 사람의 목숨마져도 짐승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큰 성 바벨론의 가치를 따르는 사람들. 음행과 사치는 사형에 해당한다는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행하고 권장하던 사람들. 의와 희락과 평화의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따르지 않는 나라와 사람들이 걷는 길의 결국은 ‘화’다. 회복할 수 없는 ‘화’다. 찰라의 시간이라도 남아 있을 때 돌이켜야 한다.

요한계시록 18:1-8

큰 음녀, 곧 큰 성 바벨론은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것이 정해졌다.

1 요한은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본다. 온 땅을 환하게 비출 큰 권세를 가진 천사라고 묘사한다. // 예수님이 아닐까?

2,3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 하늘의 합창소리도 들렸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나 큰 성 바벨론이여”. 큰 성 바벨론이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고 바벨론의 패망을 노래한다. 음행을 상징하는 진노의 포도주에 취해 큰 성 바벨론을 따르던 만국도 무너졌다고 노래한다. 땅의 왕들이 큰 성 바벨론과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의 장사치들도 (뇌물로) 치부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 섹스와 돈을 신봉하는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울리는 경종이다.

4-6 하늘에서 다른 음성이 하늘 백성에게 명령한다. “큰 성 바벨론에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아라.” 섹스와 돈을 섬기는 큰 성 바벨론의 음행과 치부를 따르지 말고 거기서 나와야 바벨론이 받을 재앙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명령하신다. 큰 성 바벨론의 죄는 하늘까지 닿아서 하나님께 그들의 불의한 일이 기억하신다고 분명히 밝힌다. 큰 성 바벨론은 자기의 행위 그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아니 바벨론이 행한  행위의 갑절로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성 바벨론 멸망을 따르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그 만큼 섹스와 돈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7,8 큰 성 바벨론의 범죄를 언급하신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며, 사치하였다고 하신다. 자신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가난한 자, 약자들에게 준 고통과 애통함을 그대로 갚으신다고 하신다. 큰 성 바벨론이 나는 여왕이지 과부가 아니라고 마음에 말하면서 자신은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만하나 하나님께서 갚으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더이상 뜸들이지 않으신다. 큰 성 바벨론에게 하루동안 재앙들이 이를 것이라고 하신다.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 닥칠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불살라질 것이라고 하신다. 강하신 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고 하신다. // 거듭 거듭 반복해서 사치를 패망의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언급하신다. 그만큼 물질에 대한 바른 사용을 강조한다. 다시한번 소환하는 잠언 29장 7절과 2절.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7)”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 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한다.(2)” 하나님 나라는 의와 희락과 평화의 나라다.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는 의인이 많아지는 나라다. 사치는 결국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줄 지식이 없는 자들이 하는 짓거리다.

^ 나는 사치하는 부분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