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3 (1:26-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3)

1장의 창조는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끝맺는다. 심히 좋았더라. 심히 좋았다는 것은 그냥 좋았던 하루 하루의 부분적인 창조가 전체적으로 완성되었다는 뜻이다. 굳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여섯째 날을 화룡점정이라고, ‘더 좋았다’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신들’, 곧 하나님이 ‘신들’의 형상을 따라 ‘신들’의 모양대로, ‘신들’이 사람을 만들고 ‘신들’이 사람에게 복을 주사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신들’이 만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신 것이 창조의 절정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복은 축복이지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축복에 순종하는 자가 누리는 것이다. 여기서 복이란 왕에게 기사작위를 받듯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명령을 받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2장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3절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라고 창조를 거룩함과 안식으로 마무리한다. 작년말 요한계시록 읽기를 통해 요한이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새하늘과 새땅에 펼쳐질 거룩한 성에서의 성도들의 거룩함과 안식으로 성서를 마무리하는 것을 보았다. 창세기를 기록한 기자와 (아마도 모세) 서로 짜고 써내려간 것이 아닐 것인데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거룩함과 안식의 일곱째 날을 완성된 ‘하나님나라’라고 상상해 본다. 바울은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고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한다. 따라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사람들이 핑계댈 수 없다. 이렇듯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졌다. 요한계시록 21장 6절, 요한이 하늘 보좌로부터 들은 ‘다 이루었도라’라는 음성을  이 땅에서도 속히 듣게하소서. 아멘

사족: 중딩 때 용돈벌이로 천자문을 외운적이 있다. 초딩 육학년 때 조실부모한 나를 한 동네에 사셨던 둘째 백부께서 돌봐주셨다. 백부께 가면 천자문 외운만큼 용돈을 주셨는데… 이젠 다 잊어버렸지만 적어도 앞부분  천지현황 우주홍황 일월영측 진숙열장 까지는 입에 남아 있다. 언재호야로 끝났는데 40년전에 천원받았으니 한자당 1원씩 받은 셈이다. 하여간 천지현황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우주홍황 (우주는 넓고 황량하다) 일월영측 (해와 달은 차고지고) 진숙열장 (별은 밤하늘에 펼쳐있다)… 창조기사 첫째날에서 세쨋날을 읽을 때 천자문이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대학에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나에게 창조기사는 그렇게 거부감이 없이 다가왔었다. 감사의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