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났지만 득남을 주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고백한다. 주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세월은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아니라 악화로 치닫는다.
창세기 기자는 가인은 농부였고 아벨은 양치기라고 소개한다. 가인과 아벨도 자라면서 주하나님을 알았나 보다. 가인은 땅의 소산을 제물로 주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을 주하나님께 드렸다. 주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제 삼자는 주하나님이 제물을 받으셨는지 알 수 없을지 몰라도, 가인은 자신과 자신이 드린 제물을 주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 것을 알고 분해서 안색이 변했다.
주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왜 분해하고 안색이 변했느냐고 물으신다. 주하나님은 가인이 선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셨다. 선이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다. 반면 악은 하나님이 없는 것이라고 적용했다. 따라서 가인이 선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 행했다는 뜻이다. 하나님 없이 뭔가 행했다는 것이 곧 죄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없이 행하도록 속삭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사탄이 속이더라도 가인은 죄를 다스려야 했다. 그러나 가인은 죄를 다스리는 일에 결국 실패하고 만다. 주하나님과 함께 하시 않으면 죄를 다스릴 수 없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들에서 쳐죽이고 만다.
주하나님은 가인에게서 아벨을 찾으신다. 가인은 모른다고 대답한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반문한다. 가인은 이렇게 하나님께 회개할 기회를 잃고 만다. 창조의 족보와 첫사람 아담의 족보는 불순종한 가인의 족보로 이어진다. 가인과 후손들은 성을 쌓고 장막을 짓고 가축을 치며 수금과 퉁소를 잡는 예술인이 되며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장인의 조상이 된다. 문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나보다. 문명은 그 방향이 하나님 아는 것 대신, 하나님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지는 방향으로 발전했나보다.
주하나님은 아담과 하와 사이에 새로운 아들을 주셨다. 아담과 하와는 그의 이름을 셋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셋의 아들 에노스를 통해 멀어져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가신다. 에노스 때부터 사람들이 주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800년 이상씩 장수하던 때라 셋은 가인과 가인의 후예들과 상당기간 같은 시대를 살았을 것이다. 세상 문명이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지는 방향으로 흐르자 주하나님을 아는 셋과 에노스는 하나님을 부르짖을 (기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주하님께 기도했다는 뜻일 것이다.
// 주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주하나님을 부르는 수 밖에 없다. 기도하지 않고서야 언제 또 주하나님을 부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