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

아담의 족보다. 아담의 족보는 아담의 시조가 창조주 주하나님이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대로 남자와 여자로 지음을 받았다고 분명히 한다.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 (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주시고 사람이라고 불러주셨다. 앞에서 복을 주시고를 ‘행복’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묵상했다. 기사가 왕에게 기사작위를 받듯, 남자와 여자는 주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하나님께 ‘사람작위’를 수여받은 것이다. (사람은 다른 모든 피조물과 달리 생령으로 지음을 받았으니 작위를 받았다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을 뜻으로 ‘사람작위’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다. 기사가 왕에게 충복하듯, 사람은 주하나님께 충복하는 존재로 지음 받은 것이다. 이렇게 아담의 족보는 시작한다.

아담 족보는 가인의 족보와 다르게 건축가든 예술가든 장인이든 새로운 문명의 조상이 되었다는 언급이 없다. 대신 에녹 때에 와서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한다. 930에 죽은 아담의 경우 하나님께서 에녹을 데려가시는 것을 보지는 못하였어도 에녹과도 함께 살았을 것이다. 노아는 에녹과 겹치지 않지만 노아 이전의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다 하나님이 에녹을 데려가시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다 하나님이 데려가셨다는 것 외에 아담의 족보는 후손들에 대해 누가 무엇을 했는지 토를 달지 않는다. 다만 노아 이름이 안위라고만  주석을 단다. 다시말해 아담의 족보는 세상에서 무엇을 했느냐를 자랑하는 족보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교훈하는 족보라고 할 수 있다. 아담의 족보는 일단 노아가 셈과 함과 야벳을 낳은 것에서 멈춘다.

// 아담의 족보는 죽음의 족보처럼 보인다. 아담은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다. 셋도 죽었다. 천년가까이 살아도 불순종의 결과는 정녕 죽는 것이었다. 단 한명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에게는 죽었다라는 문구 대신 하나님 데려가셔서 세상에 있지 않았다라고 한다. 영생은 하나님과 동행함이라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교훈하는 방법이다. 하나님과 동행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고) 하나님이 응답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임마누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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