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1)
방주로 초대받은 유일무이한 노아가족. 초대받은 이유는 노아가 자기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주하나님과 동행한 노아에게서 주하나님은 의로움을 보셨다고 한다. 다른 이유를 토달지 않는다. ‘의’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따라서 주하나님이 노아에게서 의로움을 보셨다는 것은 노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지으신대로 정직했다는 뜻이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닮아갔을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창세기 기자는 다시한번 노아가 주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다고 기록한다. 노아가 육백세 때 홍수가 일어났다. 노아 나이 육백세에서 갑자기 스치는 생각은
5장 아담족보에 의하면 노아는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 육백세에 홍수가 났으니 홍수나기 120년 전에 노아는 480세 정도 였을 것이다. 증조부 에녹을 좇아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는 어쩌면 자신도 하나님께 데려감을 입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때까지 독신으로 산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하나님의 뜻이 노아를 하나님께 데려감이 아니라 방주를 지어 생명을 보존하는 것임을 깨닫고 결혼하고 세 아들을 낳았을 것 같다.
방주에 들어간 칠 일 후에 홍수가 시작되어 사십주야 비가 땅에 쏟아졌다. 방주의 문은 주하나님께서 직접 닫으셨다고 한다.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다.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은 다 살아 남았다. 물은 백오십 일 동안 땅에 넘쳤다.
//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과 노아의 삶은 다르게 진행된다. 똑같지 않다. 한명은 데려가시고 한명은 생명보존을 위해서 땅에 두신다. 내가 걷는 믿음의 길도 믿음의 선진들과 똑같이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데려감을 입든, 방주에서 보호를 받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사는 삶도 같은 듯 하지만 다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다양함 가운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임마누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