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10-20

주하나님이 가라는 곳이 꼭 좋은 곳만은 아니다. 주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브람이 이주한 가나안에도 기근이 든다. 그것도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다고 한다. 아브람이 점점 남방으로 내려간 이유가 바로 기근일 것이다. 아브람은 결국 나일 평야가 있는 애굽까지 내려갔을 것이다.

아브람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아내 사라에게 말한다. 예순이 넘은 아내에게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얼마나 로맨틱한 표현인가. 그러나 아브람이 이렇게 말한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해야 자신이 안전하고 자신의 목숨을 보존할 수 있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심보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브람 일행이 애굽에 이르자 정말로 애굽사람들이 사래의 아리따움을 보고 반했다. (화장발인가? 아니면 이국적인 외모나 얼굴색이 달라서… 아브람이 75세에 하란을 떠났다면 사래는 적어도 65세였을 것이다.) 바로의 고관들에게 그소식이 퍼졌고 고관들이 바로 앞에서 공공연히 이국에서 온 아리따운 여인 이야기를 하자 바로는 사래을 바로의 궁으로 데려가고, 아브람에게는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댓가로 주었다. 한마디로 사래가 바로에게 팔린 것이다.

그러나 주하나님은 큰 민족을 이루어야 할 아브람을 위해 바로와 바로의 집안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 (무슨 재앙일까?) 바로는 아브람을 불러서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어찌하여 사래가 너의 아내라고 말하지 않고 누이라고 말하고 나에게 아내로 주었느냐고 호통?을 치며 아브람에게 네 아내를 도로 데려가라고 하였다. 바로는 수하사람들에게 아브람이 아내 사래와 모든 소유를 가지고 안전히 돌아갈 수 있도록 명하였다.

아브람도 영락없는 아담의 후손이다. 아내를 핑계거리로 삼는다. 그러나 불순종의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혀주시고 주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득남하게 하셨듯이, 주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래의 부부관계를 지켜주셨다.

//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한 (하나님께 기도하는) 아브람이 어쩌다 하나님이 아닌 아내 사래로 말미암아 안전을 담보하고 목숨을 보존하고자 했을까? 주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온 가나안 땅의 심한 기근이 불신으로 이끌었을까? 이 사건에서 우리는 아브람의 믿음이 완전했다기 보다는 여전히 믿음의 걸음마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브람도 처음부터 믿음이 완전했던 것이 아니었다. 불순종의 경험과 말씀에 대한 순종이 쌓여가면서 믿음이 온전해져 갔다. 하물며 우리랴. 불순종은 회개하고 말씀에 대한 순종을 쌓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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