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6

15장에서 주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아브람의 몸에서 날 자가 아브람의 상속자가 되리라 라고 하셨고 아브람은 주하나님을 믿었다. 주하나님은 이 믿음을 아브람의 의로 여기셨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예순이 넘도록 출산하지 못한 여자였다. 아브람과 사래는 주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분명했기 때문에 또 나름대로 적용한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자기의 여종 하갈과 동침하여 아브람의 몸에서 자녀를 낳자고 제안했고 아브람은 그렇게 했다. 이때가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십년 후라고 한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가 75세였으니 지금은 85세가 넘었다.

문제는 하갈이 임신하면서 하갈이 여주인 사래를 멸시하면서 불거진다. 당연히 사래는 조선 사대부 부인들처럼 아브람과 하갈의 첫동침부터 하갈을 씨받이로 철저히 통제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브람은 자기 몸에서 상속자가 태어날 것이라는 기쁨에 하갈을 씨받이로만 대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브람의 총애로 하갈은 교만해졌다. 결국 사래는 하갈의 임신으로 불임의 원인이 사래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되자, 여종 하갈을 씨받이를 쓰자고 자신이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질투하게 되고 바가지를 긁을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아브람은 사래에게 하갈을 원래대로 종취급하라고 발뺌을 하고 만다. 결국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고 배부른 하갈은 사래로부터 도망친다.

주하나님의 사자는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치는 하갈에게 한 샘물가에서 나타나신다. 주하나님의 사자는 하갈에게 여주인 사래에게로 돌아가 복종하라고 명한다. 주하나님의 사자는 하갈에게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라고 약속하며 그 증표로 득남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 곧 ‘주하나님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다’라고 지으라고 하셨다. 이렇게 주하나님께서는 하갈을 살피셨다. 주하나님께서 하갈을 보살피신 샘물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갈은 주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브람의 아들을 낳는다. 아브람은 하갈이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불렀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세라고 한다.

// 아브람과 사래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잘못된 적용은 화목이 아니라 서로 대항(불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하갈과 사래와의 질투 – 아브람과 사래와의 불협 – 하갈에 대한 사래의 학대는 결국 하갈에게서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사는 이스마엘이 태어나게 된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하갈과 사라를 신약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하갈이 온전히 씨받이 역할을 하고 주인 사래에게 순종했다면  주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지켜가셨을 것 같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치유하시지만, 잘못된 적용은 화목이 아니라  불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아브람은 자신의 종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혹 상속자입니까? 라고 주하나님께 물었듯이 사래의 제안에 대해서도 주하나님께 물었어야 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도, 반복되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방법은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 묻고 인내해야 한다. 바르게 순종해야 한다. 나의 신앙적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 치유는 댓가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