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숲에 여전히 거하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을 떠나셨던 주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다. 아브라함은 장막 문에 앉아 서 한 낮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세사람이 맞은 편에 있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냥) 달려나가 영접하며 그들에게 엎드려 인사했다. 그리고 그들을 주라고 부르며 발을 씻겨드리고 떡으로 대접하겠다고 했다. 세사람은 아브라함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융숭한 대접을 받은 세사람은 느닷없이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아브라함이 사라는 장막에 있다고 대답하자 세사람은 내년 이맘때 다시 왔을 때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었다. 마침 장막 안에서 이 소식을 들은 사라는 속으로 웃었다.
주하나님은 (세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왜 좋은 소식을 웃으면서 불신하느냐라고 책망하신다. 주하나님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하시면서 기한이 이를 때에 다시 방문할 것이고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확언해 주신다. 장막에서 나온 사라는 자신의 속막음이 읽히자 두려움에 내가 웃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지만 주하나님은 사라가 웃었다고 하신다.
// 손대접하는 일은 잘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는 것이 부족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부부. 아브라함부부는 자신들의 머리로 이해되는 부분에서 순종하는 것은 잘하지만, (예를 들면 할례를 행하고 손님을 대접하고)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아직까지도 믿지 못한다. 믿음의 조상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17장에서 아브라함이 웃었듯이 18장에서는 사라가 웃는다. 부창부수다. 주하나님께서 손님으로 찾아주시고 말씀으로 친히 약속을 상기시켜 주시지만 아브라함/사라 부부는 여전히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라는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몰랐다. 하나님께서 웃었다고 하시는데 내가 웃지 아니하였다고 답하는 사라의 무지함을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전 믿음을 기억하시고 약속에 따라 아브라함 부부에게 긍휼을 내리신다. 적어도 저들의 불신은 하나님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순종적인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이뤄가신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잠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