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에게 칠년은 며칠과 같았다. 기한이 차자 야곱은 라반에게 라헬을 달라고 요구한다. 라반은 마을 사람을 다 모아 혼인잔치를 베풀고 그날 밤 라헬 대신 레아를 야곱에게 주었다. 잔치에 취했던 야곱이 아침에 보니 자신이 취한 사람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다. 야곱은 라반에게 왜 자기를 속였냐고 물었다. 라반은 마을잔치를 들먹이며 그 지방에서는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주지 않는다고 해명한다. 대신 일주일 있다가 라헬도 아내로 야곱에게 주겠으니 칠년동안 더 일해달라고 요구한다. 야곱은 라반에게 동의하고 일주일 후에 라헬로 아내로 맞았다. 혈혈단신으로 밧단 아람에 온 야곱에게 두 아내와 두 아내의 여종 두명이 생겼다.
주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레아의 태를 여셨고 라헬에게는 자녀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레아가 아들 르루벤을 낳았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라헬을 사랑했다. 레아가 둘째 시므온을 낳았지만 마찬가지 였다. 레아는 세째 레위를 낳은 후에는 야곱과 연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야곱의 라헬 사랑은 여전했다. 네째 유다를 낳은 후에, 레아는 더 이상 야곱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주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자 레아의 출산이 멈췄다.
// 외삼촌 라반의 속임수는 야곱보다 한수 위였다. 야곱의 속임수는 어쩌면 브두엘의 집안내력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라헬도 아버지 라반을 속인다.) 야곱은 평안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서원을 라헬을 위해 또다시 칠년동안 묻어두고 만다. 하여간 태생적 장자권을 지킨다는 라반의 꼼수에 야곱은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언약을 잊어버리고 살면 속이고 속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고 교훈한다.
하나님은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레아를 통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언약을 지켜가신다. 꿈에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레아를 통해 언약을 이뤄가신다. 그러나 야곱은 라헬에 취해 언약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하다. 셋도 아니고 넷이면 동서남북이 꽉 차는데도 말이다. 야곱의 사랑을 얻지 못하였지만 네째 유다를 낳은 레아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어쩌면 레아는 야곱이 처음 밧단 아람에 도착해서 라반에게 자기의 모든 일을 말하는 것을 귀담아 듣고 마음에 담아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네째를 낳은 후에 내가 이제는 주하나님을 찬양한다고 유다라 이름 지었다. 더이상 야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이뤄가시는 주님을 바라본다고나 할까? 야곱의 사랑은 못받아도 다산으로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획은 사람이 세우나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레아의 태를 닫으셨다. 놀랍지 않은가?
야곱처럼 자기 욕심에 취해 서원을 묻어두는 것도, 레아처럼 자녀을 많이 낳아 (자기 방법으로) 언약을 이루겠다는 생각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보다 하나님 안에 거하라고 하신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