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헬이 요셉을 낳았다. 첫 칠년 후 야곱이 레아 사이에서 르우벤을 낳고 연년생으로 유다까지 낳았다면 4년, 라헬의 종 빌하가 연년생으로 둘을 낳았다면 적어도 2년, 레아의 종 실바가 둘을 낳는 동안 또2년 그리고 레아가 아들 둘과 디나를 낳기 위해서도 적어도 3년의 세월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라헬이 요셉을 낳았으니 또 적어도 1년정도의 세월이 지났다. 충첩되는 기간이 있어도 두번째 칠년이 지난지 꽤 되었을 것이다.
야곱은 자녀가 동서남북으로 많아질 것이라는 언약의 절반을 성취했다. 이제 평안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남았다. 그래서 외삼촌 라반에게 처자를 데리고 나의 땅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라반에게 야곱은 복의 통로였다. 라반은 야곱을 잡았다. 그래서 다시 품삯을 놓고 거래를 했다. 빈털털이로 고향을 도망치듯 나와야 했던 야곱은 이 계약을 자신의 집을 세우는 기회로 삼았다. 그래서 양떼 중 아롱진 것과 점있는 것과 검은 것만 자신이 품삯으로 취하고 나머지는 라반 외삼촌 몫이라고 계약한다. 라반은 옳다구나 하면서 계약을 받아들인다. 라반이 먼저 술수를 쓴다. 아롱지고 점있고 검은 것들을 미리 가려 자기 아들들에게 맡기고 나머지 양들만 야곱에게 맡기고 두 양떼가 섞이지 않도록 사흘길이나 떨어지게 하였다. 그러나 야곱에게는 건강한 양들이 얼룩지고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게 하는 비책이 있었다. 야곱은 매우 번창하게되었다. 야곱은 이렇게 많은 노비와 낙타와 나귀를 거느리는 자기 집을 세웠다.
// 야곱이 축산 전문가였나? 야곱이 라반의 양떼를 치면서부터 라반의 적은 소유는 번성해졌다. 라반은 이런 야곱을 놓치기 싫어 새로운 계약서를 내밀었고, 축산 전문가 야곱은 라반이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내 걸었다. 그러나 야곱이 축산 전문가라서 이런 조건을 내 건 것이 아니라, 아들 열 하나와 딸 하나를 낳으면서 출산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고, 벧엘 언약을 기억했기 때문일 것이다.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 가지가 효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야곱 자신이 이들 나무가지들을 보면서 벧엘 언약을 기억하는 방편으로 이용했을 것이다. (벧엘의 원래 이름 루스와 살구나무 히브리어 단어 루즈는 같은 단어로 보인다.)
개인적인 야곱의 비책은 나무가지들은 야곱의 축산경험에서 나온 노하우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으로 인해 벧엘 언약을 잊어버리고 자꾸 밧단 아람에 눌어 앉게 되는 자신을 경계하고 벧엘 언약을 기억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평안히 가고자 하는 야곱의 열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야곱은 이제까지 자신을 지탱해왔던 거짓과 술수를 내려놓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자기 집을 세우고자 했다.
시편 127편의 시인은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라고 노래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고 노래한다. 자식이 화살 통에 가득한 용사는 복이 있다고 노래한다. (에서를 만났을 때) 부끄러움을 당치 않도록 하시는 주님. 이렇게 읽으면 완전 야곱의 노래다.
사람들은 자꾸 야곱의 번창에만 관심이 있다. 늙어서도 언약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믿음으로 새로 시작한 야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