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반이 드라빔을 찾지 못하자 전세는 역전되었다. 이제는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했다. 야곱은 레아와 라헬을 불러 나눴던 얘기를 라반에게도 한다. 지난 이십 년을 레아와 라헬을 위하여 14년, 양떼를 위하여 6년을 섬기는 동안 라반이 품삯을 열번이나 바꿨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야곱은 지난 육년동안의 섬김은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야곱의 고난과 손의 수고를 돌아보신 결과라고 답한다. 그 하나님이 어젯밤 라반을 책망하신 것이라고 분명히 한다.
라반은 끝까지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라고 말했지만 어쩔 수 없이 야곱과 언약을 맺는다. 돌기둥과 돌무더기를 쌓았다. 두사람이 언약을 맺은 곳을 갈르엣, 곧 증거의 돌무더기라고 불렀다. 또 이곳을 주하나님께서 살피시는 곳이라고 하여 미스바라고 불렀다. 라반은 야곱에게 자기 딸을 박대하거나 다른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돌무더기와 기둥을 사이에 두고 서로 침법해서 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라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나홀의 조상의 하나님께,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했다. 야곱은 그곳 길르앗 산에서 (갈르엣, 미스바)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고 밤을 지냈다. 라반은 다음날 아침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을 축복하고 다시 밧단 아람으로 돌아갔다.
// 라반이 아는 하나님은 조부 나홀과 백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을 통해 만난 이삭의 하나님이 전부다. 밤에 나타나 친히 말씀해 주셨음에도 그는 결국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지 못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야곱도 여전히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야곱도 하나님을 알아가려면 멀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만나 주실 때 그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 각자의 드라빔을 버려야 한다. 라반 처럼 하나님이 드라빔을 잃어버리게 해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드라빔에 집착하는 것은 두주인을 섬기는 것이요, 두마음을 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결코 의인의 회중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께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라반을 보라. 야곱에게 끝까지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고를 돌아보신 결과가 아닌가? 나의 소유권을 내려놓고 내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
사족: 증거의 돌무더기는 언젠가는 무너져야 할 것이다. 세상과 교회 사이에도 둘무더기가 쌓여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분명히 무너뜨리신 것 같은데 다시 더 높은 담을 쌓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평하기 위해서 막힌 담을 허물어야 한다. 당연히 교회가 손해를 감수하면서. 선교지에 선교사를 파송할 때의 마음과 다르게 왜 파송하는 교회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교적으로 대하지 못할까? 교회가 먼저 담을 낮춰야 한다. 허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