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아들들의 말을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좋게여겼다. 세겜은 할례 받기를 지체하지 않았다. 그만큼 세겜이 야곱의 딸을 사랑하였고 세겜은 이미 추장으로 아버지 하몰의 전적인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몰과 세겜은 세겜성읍 문에 성읍 사람들을 모아놓고 야곱가문과 친목하고 서로 통혼하자고 제안한다. 단 야곱 가문과 같이 할례를 받아야 야곱과 한 민족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몰과 세겜은 성읍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서로 통혼해서 한 민족처럼 되면 야곱 가문의 가축과 재산과 모든 짐승이 세겜의 소유가 될것이라며 할례의 조건을 들어주자고 말했다. 성읍사람들도 하몰과 세겜의 말을 듣고 할례를 받았다.
제삼일에, 아직 할례의 통증이 남아 있을 때에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가지고 몰래 세겜 성읍을 기습하여 모든 남자를 죽였다. 하몰과 세겜도 죽였다. 그리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왔다. 야곱의 다른 아들들도 뒤늦게 세겜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다. 노략의 핑계는 세겜 사람들이 누이 디나를 더럽힌 까닭이지만… 그들은 세겜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를 사로잡았다.
(침묵하던)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에게 화를 자초했다고 책망한다. 가나안 땅의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했다고 말한다. 아직 야곱의 가문은 수가 적은데 이 일로 가나안 족속들이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 우리 야곱 집안이 멸망당하지 않겠느냐고 나무란다. 야곱의 아들들은 (시므온과 레위) 세겜이 디나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냐고 아버지 야곱에게 따졌다.
// 사람들의 비즈네스는 사랑과 화평을 말하나 이면은 탐욕과 전쟁이다. 야곱이 아들들이 세겜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으라는 것도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하몰과 세겜이 할례를 받아들인 것도 순수한 마음일 수 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 중 시므온과 레위는 할례를 이용해 보복을 시도하고 세겜을 노략할 계획을 가졌으며, 하몰과 세겜도 성읍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야곱의 모든 소유가 세겜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탐욕을 감추지 않았다. 순수함이 사라지고 탐욕의 지배를 받을 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 일어난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고 나만 (우리편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건이 터지자 그동안 침묵하던 야곱도 시므온과 레위에게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라고 온통 자기 입장에서만 호통을 친다. 이 짧은 한절에 ‘나’와 ‘내’가 여덟번이나 사용되었다.
코로나 19를 대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편가르기를 한다. 정치권과 다르지 않다. 화해와 상생 대신 편가르기를 한다면 순수하고 의로운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하여도 그 결과는 불의한 보복에 불과할 것이다.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빼지 않았으면 후에 세겜족속이 야곱집안을 삼켰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군대가 있지 않았던가. 야곱은 라반의 위협과 에서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마하나님을 또 다시 잊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면 악으로 악을 갚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을 더럽히지 않는 것보다, 내 집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일에 선을 도모하는 것이다.(롬 12:17) 바울만 아니라 베드로도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벧전3:9) 편지한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권면한다. 악인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의인이 행할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