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떠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하신다. 벧엘로 가서 거하라고 하신다. 벧엘로 가서 에서를 피해 도망갈 때 만났던 하나님께 제단을 다시 쌓으라고 하신다. 다시말해 벧엘의 서원을 기억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야곱은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라고 말했다. 세겜에 머무는 동안 야곱 집안 사람들은 이방신상을 따르고 이방 의복을 입었다. (이방문화에 젖어버렸다.) 세겜에게서 노략한 폐물로 귀고리를 만들 찼었다. 이들은 이 모든 것을 야곱에게 주었고 야곱은 이방신상과 그것들을 세겜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벧엘로 떠났다.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임이 야곱이 가는 길을 보호했다. 따라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들이 없었다. 야곱과 가솔들은 모두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도착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 곧 ‘하나님의 집에 (계시는) 하나님’ 이라고 불렀다.
창세기 기자는 잠시 장면을 바꾼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자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했다. 리브가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 (통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창세기 기자는 야곱이 벧엘로 돌아와서야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라고 기록한다. 하나님은 야곱을 얍복강가에서 씨름하면서 주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셨다. 그리고 아브라함때부터 맺으신 언약을 확인시켜 주시고서야 이스라엘을 떠나 올라가셨다. 야곱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던 곳에 돌기둥을 세우고 돌기둥을 제단삼아 제사를 드리고 다시한번 그곳을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다.
야곱은 벧엘에서 다시 길을 떠났다. 왜? 하나님은 벧엘에 거주하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아마도 8절 리브가의 유모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리브가와 이삭이 사는 곳을 향해 떠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가는 길에 라헬이 해산하게 되었다. 난산으로 베냐민을 낳고 라헬은 죽었다. 야곱은 라헬을 베들레헴 길에 장사했다. 이스라엘은 다시 길을 떠났다. 이스라엘이 에델 망대를 지난 후 장막을 쳤을 때 장자 르우벤이 야곱의 첩 빌하와 동침했다. 이스라엘이 이 사실을 들었지만 본문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야곱에게는 이제 베냐민까지 열두 아들이 있었다.
// 오늘 본문은 한번의 묻어버림과 두번의 장사가 나온다. 첫번째,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야곱은 영적으로 각성했을까? 세겜을 떠나면서 가솔들에게 이방 신상을 버리고 이방 옷을 벗어버리라고 명했다. 가솔들은 이방신상과 이방 악세서리를 야곱에게 주었고 야곱은 이것들을 세겜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어버렸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 (서원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의 집을 회복했다. 두번째 리브가가 유모 드보라를 묻는다. 리브가의 속임수는 어쩌면 유모 드보라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른다. 야곱에 대한 편애와 속임수. 이 모든 것이 통곡할 정도로 의지했던 드보라의 영향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세번째 야곱이 라헬을 묻는다. 라헬은 아직까지 드라빔을 가지고 있었을까? 라헬로 세겜을 떠날 때 드라빔을 묻었을까? 아마도 여전히 작은 우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이런 라헬이 죽는다.
벧엘로 올라가면서 야곱은 이방신상들을 묻었고, 한편으로 리브가를 통해 야곱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드보라도 묻혔다. 그리고 그토록 사랑했던, 그렇지만 하란의 드라빔을 숨겨왔던 라헬도 묻었다. 벧엘로 올라가기전 세겜에서 이방신상들을 버리라는 것은 본문에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하나님의 명령일 수 있다. 야곱은 이에 순종했다. 그러나 하란의 영향을 고스란히 전해 준 유모와 (어쩌면 드보라는 야곱의 유모였을 수도 있다.) 라헬은 야곱이 직접 묻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드보라는 햇수를 채워 데려가시고 라헬은 난산 통해 장사되게 하셨다.
성도들도 자기의 의지로 묻을 수 있은 옛습관이 있겠지만, 우리의 죄와 허물은 우리 스스로 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을 자를 따르는 불순종을 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 밖에 없다.(엡2)
벧엘로 올라가기 위해서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지극히 작은 부분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사는 것은 전적으로 은혜다. 내가 버릴 수 없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친히 데려가시도록 맡겨야 한다.
뭔가 다 묻은 것 같은데도 야곱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묻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임마누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