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어머니 리브가를 닮아 촉이 좋은 모양이다.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라반의 양떼를 치면서 치부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라반도 자기의 술수가 먹히지 않자 야곱을 보는 안색이 바뀌었다.
때가 된 모양이다. 주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야곱과 함께 있겠다고 하신다.
야곱은 도청할 수 없는 들에 레아와 라헬을 불러 하나님께서 벧엘의 서원대로 이곳을 떠나 야곱의 출생지로 돌아가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라헬과 레아도 아버지 라반에게 상속받을 것이 없다는 것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취하게 하신 재물이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기 때문에 야곱에게 하나님이 야곱에게 하신 말씀에 순종하라고 대답했다. 라헬과 레아도 야곱의 순종에 동참하겠다는 뜻이다.
// 오늘 되씹게 되는 말씀은 9절이다.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여기서 빼앗았다는 것은 훔쳤다는 뜻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니라 취해서 옮겼다라는 뜻이 강하다. 심지어 구원하다(건져내다)는 뜻으로 많이 쓰였다. 하여간 하나님의 성품에 훔쳤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어색하지만 포인트는 한사람의 치부는 다른 사람을 가난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의 복을 간구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았어도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아 달라는 기도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라반의 가축을 빼앗아 야곱에게 주셨어도, 라반이 가난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야곱이 자기 집을 세울 정도로 부자가 되자 라반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오늘날 가진 자들이 힘들어 하는 이유다.
하나님께서 라반의 재물을 야곱과 공평하게 나누셨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성도들도 이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내가 좀 더 가졌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좀 더 나누라고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강제로라도 내것을 나누게 하실 때 라반의 입장만 되어 안색을 바꿀 이유가 없다. 야곱이 되어 나의 모든 재물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에 감사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눠야 한다. 앞에서 사용한 공평은 ‘똑같이’가 아니라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다.
// 공동체의 화목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할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나에게 주신 말씀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신 말씀을 야곱처럼 가족들에게,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잘 설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할 수 있도록 … 하나님 아는 것 대신 다른 것들로 갈라진 한국교회에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