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4:28-49

리브가는 집으로 달려가 우물가에서 일어난 일을 알렸다. 리브가의 말을 들은 오빠 라반이 가장 먼저 우물가로 달려나갔다. 라반은 아브라함의 종에게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라고 부르면서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아브라함의 종은 손님 대접을 받기 보다 아브라함의 종으로서의 의무를 다한다.

아브라함의 종은 먼저 아브라함의 안부를 간략히 전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에 자기에게 명한 일이 무엇인지, 우물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라반에게 설명한다.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람함의 안부에서도 주하나님이, 우물가에서도 아브라함의 주인 주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셨는지 답을 한다.

아브라함의 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설명한다. 아브라함의 종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 머리를 숙여 경배하고 찬송할 수 밖에 없었다고 간증을 한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의 종은 대접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임을 분명히 한다. 자신은 아브라함의 종으로 주인이 명하는대로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는 자라고 한다.

// 아브라함의 종에게서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실 때 하인을 고쳐달라고 나온 한 백부장의 믿음을 본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호가호위라고 했던가?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의 이름으로 자신이 대접받는 것을 마다하고 아브라함의 종으로서의 해야할 일에 충실한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떠벌이며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오늘날의 종교 지도자들과 얼마나 다른가?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이라고는 감히 부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평생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오다가 아브라함을 떠나 메소보다미아 땅까지 혼자 오게된 아브라함의 종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한다. 그러면서도 아브라함의 종으로서의 직무에 흔들림이 없다.

대학에 입학해서 예수 믿은 사람들을 알게 된 후, 나도 한동안은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의 하나님만을 섬겼을 것이다. 나의 아이들도 어려서는 내가 믿는 하나님만을 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들의 하나님을 만났을 것이다. 첫째는 신앙적으로 이미 독립을 한 것 같아 감사하고 둘째와 세째도 온전히 독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믿음의 교제를 통해 친구, 선배, 후배들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었고, 언제부턴가 우리들의 하나님이 되시니 감사하다.

각자의 하나님이 우리들의 하나님이 되는 곳이 교회다.

창세기 24:1-27

아브라함도 늙는다. 헷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은 아브라함. 창세기 저자는 주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다고 인정한다. 이삭을 통하여 열방의 아비가 되리라는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 아브라함이  일백삼십칠 세에 아내 사라를 잃었으니 이삭도 이제 삼십대 중반을 넘어 사십대를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미혼이다. 아브라함은 죽기전에 이삭이 결혼해서 손주를 낳는 것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이 조금이라도 더 성취되는 것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을 불러 가나안 땅에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지 말고 고향 친척에게로 가서 아들 이삭의 아내를 택하라고 부탁한다.

가나안 땅에 그랄 왕 아비멜렉처럼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행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사람들을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했었다. 그렇다고 이삭을 데리고 고향 땅으로 돌아가서도 안된다고 당부한다. 하늘의 하나님 주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버지의 집과 고향을 떠나 이곳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의 언약을 분명하게 언급한다. 아브라함은 범사에 복을 주신 주하나님의 사자가 종보다 앞서가서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실 것이라고 종에게 믿음으로 당부한다. 종은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한다.

아브라함의 종은 낙타 열마리에 모든 좋은 혼례물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에 있는 나홀이 거주하는 성에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는 저녁 때에 도착했다.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 아브라함의 주하나님께 이삭의 배필을 순조롭게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삭의 배필을 순조롭게 만나는 것도 주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범사에 복을 주시는, 곧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라고 기도한다. 종은 물길러 나오는 처녀에게 마실 물을 부탁할 때, 자신에게 물도 주고 낙타들에게도 물을 주겠다고 대답하는 소녀가 주께서 이삭의 배필로 정하신 자라는 것을 알겠다고 기도한다. (기도했다기 보다 주하나님께서 종의 마음에 기도응답을 주셨다.)

마침 리브가가 물동이를 메고 우물가로 왔다. 종은 달려가서 물을 달라고 부탁했다. 리브가는 종에게 물을 마시게 할뿐 아니라 낙타를 위해서도 물을 길러 마시게 하겠다고 말했다. 종은 기도대로 되는 것이 신기했지만 들뜨지 않고 묵묵히 리브가를 주목하며 주하나님의 응답이 맞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아마도 아브라함의 친척인지 알고자 했을 것이다. 종은 리브가에게 물에 대한 답례로 폐물을 주면서 누구의 딸인지 묻는다. 리브가는 자신은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라고 대답한다. 종은 그제서여 머리를 숙이고 주하나님께 경배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주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주하나님께서는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주하나님께서 나의 여정도 인도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식을 결혼시킬 순 없었다. 그랄 왕 아비멜렉, 헷 족속의 족장, 동맹을 맺었던 아모리 족속 마므레 형제들을 생각해 보면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다스리고 있는 유력자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4대후 후손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고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언약을 염두에 둔 것일까? 이삭의 결혼에 가나안을 떠나서도 안되고 가나안 사람과 혼인해서도 안된다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조건을 단다.

성도들도 세상에 산다. 세상을 떠나 살아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세상과 결탁해서 살아서도 안된다. 이렇게 세상에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한다.

나도 친구, 선배, 후배의 하나님을 찬양하던 때가 있었다.

창세기 23

아브라함은 저 멀리 갈대아 우르에 있는 형제 나홀이 열두 아들을 낳았고 조카 브두엘이 리브가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상처의 아픔도 피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백이십 칠세에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다. 아브라함은 그땅을 차지 하고 있던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서 사라를 매장할 막벨라 굴을 은 사백 세겔에 사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삼고 아내 사라를 그곳에 장사하였다. 그땅을 차지하고 있던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부르며, 그 땅을 무상으로 취하라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시세대로 댓가를 지불하고 에브론의 밭과 굴을 샀다. 창세기 저자는 가나안 땅 마므레 (헤브론) 앞 막벨라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에게로 소유지 이전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 헷사람들이 왜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불렀을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그랄 왕 아비멜렉의 태를 열어 주었기 때문일까? 소돔을 엘람 왕의 손으로부터 구해 주었다는 역사도 헷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기 때문일까? 100세데 아들을 낳았기 때문일까? 모르는 것은 일단 지나간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장례를 위해 아주 적은 부분이지만 가나안 땅을 산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이지만 값을 주고 샀다. 세상 땅도 댓가를 지불하고 산다면 하나님나라를 차지하기위해서 값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어제에도 언급했듯이 하나님나라는 ‘자기 소유 전부’를 팔아야 살 수 있는 나라다. 나나 빌게이츠나 가난한 사람에게 동일하다. 공평하다. ‘자기 소유의 전부’! 아브라함은 자기 소유의 전부인 상속자 이삭을 하나님께 아끼지 않음으로 하나님나라를 샀다. (성부하나님께서는 상속자이신 성자 예수님을 아끼지 않으시고 성도들을 사셨다. 아멘) 이런 아브라함이어서일까  사라의 매장을 위해 아브라함은  후손에게 주어질 땅임에도 값을 치르고 샀다. 성도들도 세상에서 값을 치르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며 공짜 좋아하면 안된다. 손해보는 것 같지만 실상 정당한 댓가를 치르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혹여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대접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보다 더 솔선수범하고 겸손해야 한다.

창세기 22

아비멜렉과 평화협정을 맺은 아브라함은 블레셋 사람의 땅에 거하게 된다. 이일 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다시 찾으신다. 아브하람을 시험하시려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다고 창세기 저자는 토를 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내가 여기 있나니다 라고 응답한다. 주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라는 황당한 명령을 하신다. 명령을 받을 때 아브라함이 어땠는지 창세기 저자는 기록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아브라함은 일찍 일어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아들 이삭을 데리고 출발했다.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곳가지는 삼일길이었다. 돌이킬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묵묵히 갔다. 멀리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곳이 보이자 아브라함은 동행한 두 종은 나귀와 함께 그곳에 머물라고 명하고 번제에 쓸 장작을 이삭에게 지우고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손에 들고 하나님이 일러주신 곳으로 출발했다. 두사람만 동행할 때,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아브라함은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이 일러주신 곳에 이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벌여놓고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위에 놓고 칼로 아들 이삭을 잡으려고 했다. 그때 주하나님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불렀다. 아브라함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응답하자, 주하나님의 사자가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고 명했다. 아브라함이 아들, 곧 독자까지도 주하나님께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셨다고 하신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한 숫양이 불이 수풀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아브라함은 숫양을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다. 아브라함은 그땅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불렀다.

주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아브라함을 불렀다. 주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고 아브라함의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되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대적의 성읍을 차지하고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고 언약을 확인해 주셨다. 아브라함이  주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시험에 통과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다시 브엘세바로 돌아왔다. 이일 후에 아브라함은 밀가가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홀은 아내 밀가에게서 우스, 부스, 그므엘, 게셋, 하소, 빌다스, 이들랍, 브두엘 여덟 아들과 첩 르우마에게서 데바, 가함, 다하스 마아가를 낳았다. 나홀에게도 열두 아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브두엘을 통해 리브가가 태어났다.

//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주하나님은 이삭이 아브라함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소유임을 강조하신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주하나님께 아끼지 않았다. 이보다 더 큰 믿음이 있을까? 태양이 기브온 골짜기에 달이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게 해달라는 여호수아의 기도응답보다, 히스기야 때 태양이 십도 뒤로 움직인 것보다 더 놀라운 믿음이다. 주님께 아낄 것이 무엇이랴.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의 화평을 위해 댓가를 지불했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화평을 위해 아브라함의 아들, 곧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않는다. 아브라함이 암양 새끼 일곱으로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어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 집을 계약한 것이라면, 주하나님께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않은 것은 영원히 살아갈 하나님나라를 산 것이다. 예수님은 천국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보화가 묻힌 땅과 값비싼 진주를 사는 것이라고 비유하셨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유일한 상속자, 곧 ‘자기 소유의 전부’였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천국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