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라나선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가버나움으로 갔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다. 뭇 사람이 예수님의 교훈에 놀랐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다르게 권위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회당에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다. 귀신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정확이 알았다.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나오게 하셨다. 예수님의 축귀에도 권위가 있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교훈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의 소문이 온 갈릴리 사방에 퍼졌다. 예수님은 그새 시몬(베드로)도 제자로 삼으셨다. 어느날 예수님은 야고보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다. 열병으로 누워있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셨다. 저물어 해질 때에 사람들이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왔고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고 많은 귀신들을 내쫓으셨다. 예수님은 귀신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 예수님은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말씀을 가르치시고 귀신을 내쫓으시고 병고치심으로 소개하신다. 마가는 주저함 없이 이 세 사역이 기존과 달랐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마가는 예수님 사역의 특징을 권위라고 한다. 당시에 무슨 라이센스가 있었겠냐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심과 축귀와 치유가 야매로 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권위있는 가르치심과 권위있는 축귀에 사람들은 놀라고 놀랐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전통과 관습이 더이상 권위의 근거가 되지 않는 나라다. 율법교육을 따로 받지 않으셨던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다. 남녀의 구별의 확실했던 유대사회에서 여자의 손을 잡고 치유하셨다. 갈릴리가 단순히 유대 변방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또 새로운 헬라문화의 통로였기 때문에 전통과 관습을 뛰어 넘으셨던 것이 아니라 마가의 첫 일성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그것이 전통과 관습이라고 할지라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나라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따라서 불순종의 마귀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어도 결코 하나님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 아는 것과 순종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순종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