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1-20

1-2 (배경/무대)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는 반대편 거라사인 지방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시는데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난다. // 예수님이 건너가고자 한 곳이 돼지치는 이방인들이 많은 곳이었다면 제자들이 싫어했을 법도 했겠다. 게다가 갈릴리 바다를 가로지르는 동안 광풍까지 일어나고 더군다나 처음 맞아주는 사람이 귀신들린 사람이니. 그것도 귀신 이천명이 달라붙은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하나님나라 복음이 침노할 수 있는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어보이는 그런 곳으로 예수님은 오셨던 것이다.

3-13 (사건) 무덤이 이 사람이 사는 거처로 사람들은 이 귀신 들린 사람을 쇠사슬로도 제어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셌다. 이 귀신들린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는 무덤 사이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돌로 자해하는 것 뿐이었다. 이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께 달려온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 정작 말을 한 것은 이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이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를 괴롭히지 마소서라고 예수님께 간청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더러운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그 더러운 귀신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귀신은 내 이름은 군대(무더기)라고 대답했다. 더러운 귀신은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말라고 예수님께 간청하다가 차라리 근처 산 곁에 있는 돼지 무리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더러운 귀신들이 돼지에게로 들어갔고 귀신들린 돼지 떼 거의2천마리는 바다를 향하여 내리 달려 바다에서 몰사했다. // 귀신들린 자의 행색을 보면 귀신이란 다른 사람에게도 해가 되고 자신에게도 해가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귀신 자체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볼 정도로 높은? 영적 수준을 갖추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영적이라고 해서 다 선한 (좋은, 하나님의 형상) 것은 아니다. 악한 영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시니 예수님 앞에 달려나왔다. 군대 귀신은 여전히 무리지어 그 지역을 좌지우지 하고자 했다. 그러나 바람과 바다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과 달리 한 군단이나 되는 귀신무리라고 해도 돼지무리조차 맘대로 할 수 없는 미약한 존재였다. 결국 그들의 바람과 달리 귀신들은 돼지들과 함께 바다에 몰사하고 만다.

14-20 (반응) 돼지를 치던 자들이 도망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고하자 마을 사람들이 확인하러 보러왔다. 마을 사람들은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도) 여전히 두려워했다. 귀신 들렸던 자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과 돼지에게 일어난 일들을 마을 사람에게 알리자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 지방에서 떠나가 달라고 간구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실 때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대신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가족에게 알리라 하셨다. 귀신 들렸던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 지역에 전파했다.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겼다. // 예수님과 군대귀신의 만남을 지켜보던 사람은 어땠을까? 이들의 눈에는 예수님과 귀신 들렸던 사람 밖에는 안보였을 것이다. 영적인 존재인 귀신이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하여간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수많은 영적 존재들에 사로잡혀 지나가던 사람들을 해치고 자기 자신을 해하던 그 사람은 옷을 입고 정상적이 되었고,  대신 주변에서 치던 2천마리에 가까운 돼지들이  몰살된 현장을 지켜봐야 했다. 돼지치기들에게 이소식을 듣고 놀란 주변 마을 사람들이 뛰어 나와 이 사실을 확인했다. 거라사 사람들은 변화된 한 사람을 보았지만 이천마리에 가까운 몰살한 돼지 값만 생각했을 것이다. 귀신들렸던 사람이 아무리 해가 되었어도 돼지 이천마리 값보다 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귀신보다 더 강력한 맘몬신의 영향으로 예수님을 배척한다. 귀신들렸던 자는 예수님과 동행하기를 바라나 예수님은 주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신 것을 가족들에게 알리라고 하셨고 그는 순종했다. 그의 전파에 데가볼리 사람들까지도 놀랍게 여겼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귀신들린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았다. 하나님나라를 받은 것이라고 이해해도 된다. 다시한번 물리적 임마누엘이 아니라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누리는 자가 곧 임마누엘을 누리는 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 갈릴리 반대편 어둠(묘지) 가운데 거하던 무더기 귀신들린 자는 갈릴리를 휩쓸고 있는 하나님나라의 복음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의 가장 강력한 증거 중의 하나가 축귀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어느날 밤 갈릴리 바다에 광풍이 일었다 잔잔해 졌을 때 무더기 귀신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을 알고는 무더기들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대로 개편해 맞서기로 한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과 대적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재빨리 예수님께 서 본토 상륙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화친을 맺자고 달려갔다. 제발 이동네만은 제가 활동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군대 귀신이 들린 사람을 긍휼히 여기셨다. 그래서 군대 귀신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군대 귀신은 하는 수 없이 돼지 떼에라도 들어가서 그 지방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했다. 예수님은 허락하셨다. 군대 귀신은 어리석게도 돼지 떼는 자신의 영향아래 가둘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몰랐다. 제 꾀에 빠져 돼지와 함께 바다에 빠져 몰살되고 만다. 그런데 그 지역 군대 귀신보다 더 쎈 우상이 있었다. (돼지가 몰살되자 군대귀신이 돈귀신이 되었을 수도 ㅎㅎ) 돈신이었다. 그 지방 여러 마을 사람들은 한 영혼을 긍휼히 여긴 예수님을 배척했다. 오늘날 같으면 집단 소송을 했을 것이나, 당시에는 집단 소송을 부추길 변호사들이 없었다. 물론 현대법으로 집단 소송을 했다고 해도 예수님께 승소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적은 손해라도 다시 그같은  피해를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떠나 보낸다. 예수님은 아마 신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 버리고 배를 다시 타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멀어져 가는 긍휼히 여김을 받은 한 그 사람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셨을 것이다.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그 땅에도 좋은 땅이 있었다. 씨가 뿌려졌다.

^^ 오늘 이야기는 이렇게 생각해도 저렇게 생각해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