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3 // 사도들이, 곧 둘씩 파송받은 자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보고에 관심 없으셨다. 오히려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에 가사 잠깐이라도 쉬라고 하셨다. 제자들의 사역도 예수님처럼 쉴새없고 밥먹을 겨를도 없을 만큼 바빠졌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갔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르는 모든 고을에서 온 무리들도 예수님 일행을 놓치지 않고 해안을 따라서라도 예수님 일행이 가는 곳으로 달려갔다. 심지어 예수님 일행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다시말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위에서라도 쉼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4-44 // 제자들과 한적한 곳을 찾으셨던 예수님은 큰 무리에게 나오셨다. 큰 무리는 목자 없는 양 같았다. 예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사 여러가지로 가르치셨다. (무리들이 예수님께 나왔다 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나오셨다고 시작한다.) 때가 저물어가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곳은 빈들이고 날도 저물어 가니 가르치시기를 그치시고 무리들을 보내어 근처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무리를 다 먹이려면 이백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나 가서 보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알아본 결과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가 있다고 보고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리들을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히라고 하셨다. 무리가 백명씩 오십 떼 혹은 오십명씩 백 떼로 나눠 앉았다.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들에게 나눠주게 하셨다. 물고기 두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셨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바구니에 차게 거두었다.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명이었다.
>> 요한의 죽음과 장사를 언급한 후 첫번째 표적이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오늘 사건이다. 회개에서 하나님나라의 선포로 패러다임이 넘어왔다고 선언했었다. 오병이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문구는 42절 “다 배불리 먹고” 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하나님나라가 선포되었지만 모두가 복음에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더러운 귀신 들리자들은 축귀를 병에 결린 자들은 치유를 맛보았지만 더러는 길가요, 더러는 돌밭이요 더러는 가시떨기요 적은 무리만 좋은 땅이었다. 그런데 오늘 하루만은 모두 다 배불리 먹었다고 한다. 다 배불리 먹었다. 이전까지 오병이어 기적을 읽으면 꼭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을까를 상상해보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다. 다 배불리 먹었구나, 모두 만족했구나에 관심이 쏠린다. 바울은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다. 일부가 아니라 다 배불리 먹었다는 것은 더이상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의와 평강과 희락을 뜻한다고 생각된다.
>> 과정은 모르지만, 어떻게 가능했지라는 질문을 뒤로하고 ‘다 배불리 먹었다’ 라는 이 짧은 한구절에서 하나님나라의 특징을 발견한다. 다 앉아서 먹었다. 배불리 먹기 위해 동분서주하지 않았다. 수고한 댓가에 따라 많이 먹거나 적게 먹지 않았다. 밥을 먹을 겨를 도 없었던 제자들이 남자만 오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식탁을 오가면서 수종을 들었다. 예수님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제자들이 먼저 먹는 나라가 아니라, 여전히 밥먹을 겨를이 없어도 배고픈 자들을 먼저 섬겨야 하는 나라다. 이 들까지 오는 배에서 예수님은 쉬지도 못하고 먹을 겨를도 없었던 제자들을 쉬게 하시며 먹이셨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그대로 제자들은 더 큰 무리를 대상으로 섬김의 제자도를 실습한다.
>> 제자들이 예수님께 무리를 보내어 저들로 각자 끼니를 해결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을때 속 마음에는 배를 타고 오면서 경험한 예수님과의 한적한 곳에서의 식사 시간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무리들을 피해 배 위에서 예수님과의 은밀한 시간을 통해 쉬고 먹고하지 않았을까? 물론 배부르게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목자 없이 유리하는 양 같은 무리를 위해 제자들에게 이 한적한 시간까지도 희생하게 하셨다. 성도들 중에 코로나 19 최전방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이런 희생을 경험하실 것이다. 주일 예배의 기쁨을 희생하며 주님이 주신 사명으로 영적예베를 드리는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하게 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