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1-26

1-9 칠병이어 기적. 예수님이 큰 무리를 먹이시는 것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오병이어와 다르게 무리를이 예수님과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 지났다고 한다. 예수님은 이들을 굶겨 집으로 보낼 수 없었다. 제자들은 무리들을 먹일 수 없었다. 이번에는 돈을 핑계삼는 것이 아니라 환경, 곧 광야에서는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다고 예수님께 대답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떡 일곱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게 하셨다. 약 4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다. 예수님께서는 배부른 그들을 흩어보내셨다. // 오병이어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이번에도 무리들이 배불리 먹자 무리들을 바로 흩어 보내셨다. 예수님의 사역이 ‘밥퍼’ 사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루 이틀 지나도 예수님이 밥퍼 사역을 하지 않자, 어쩌면 일정수의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에게서 떠나 갔을 것이다. 그래서 무리의 수가 오천에서 모자란 사천이라고 상징적으로 기록했을 수도 있겠다. 따라서 이사건은 단순히 배고픔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라는 천국복음을 소개한다. 오병이어 때도 그렇고 무리를 먹이시는 사건은 거두는 사건이다. 분명히 먹였으면 없어져야 하는데 남은 조각을 거둔다. 무엇을 거두었다는 말일까? 예수님은 떡을 축사하시고, 물고기를 축복하시고 나누어 주셨다. 그러니 축사와 축복이 남은 것이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복은 나누어 줄 수록 남는다고 교훈하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가는 이 사건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가복음 독자들을  위로한다.

10-13 칠병이어로 약 사천명을 먹이신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달마누다 지방으로 갔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헐뜯으며, 표적을 보이라고 유혹했다. 예수님은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셨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는 표적을 주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며 배를 타고 다시 건너편으로 출발셨다. // 다시한번 자기 의로 가득한 바리새인들을 의에 주리고 목말랐던 이방 사람들과 대비시킨다. 굶주린 자들을 먹이시는 것보다 더 큰 표적이 어디 있으랴. 믿음이 없이는 바리새인들 처럼 눈앞의 표적도 볼 수 없다.

14-21 급해서였을까? 제자들은 먹을 것을 배에 싣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했다. 배에는 떡이 하나밖에 안남았다. 제자들이 먹을 것에 대해 염려하자 예수님은 경고하여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먹을 떡을 챙기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오해했다. 예수님은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고 제자들의 마음이 돌밭이 된 것, 둔해진것을 책망하신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또 기억도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오병이어로 열두바구니 칠병이어로 일곱 광주리를 남긴 사건을 기억하게 하신다. //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신다. 의와 평강과 희락을 거두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바리새파와 헤롯당은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나라를 대적하는 자들이라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래도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다.

22-26 벳새다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와 예수께 만져주시길 구했다. 예수님은 이 맹인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안수해 주시고 고쳐주셨다. 첫 안수에 이 맹인은 사람들이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은 다시 안수했다. 그는 완전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마을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 // 예수님은 배에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라고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함을 책망하셨는데, 벳새다에 도착하셔서 한 맹인을 고쳐주셨다. 두번이나 안수 하신 것은 하나님나라를 희미하게 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되고 밝히 봐야 함을 교훈하시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혹은 육적인 눈을 뜨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도 뜨게 하셨다는 것일까? t세상 만물을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는 것, 예수님을 아는 것이 완전히 낫는 것이라는 교훈일까?

>> 예수님은 맹인을 고쳐주시고 그 사람에게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 마을 사람들은 맹인이 육적인 눈을 뜬 것만을 보고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지 못해서 오히려 예수님을 힐난하게 될 것임을 아셨기 때문이 아닐까? 마가는 이미 예수님의 이름은 드러났고 예수님의 얼굴도 알려졌다고 선언했었다. 예수님의 사역이 대중적인 축귀와 치유에서, 더이상 대중 앞에서가 아니라 개인적이고 은밀한 축귀와 치유로 바뀐 이유라고 생각된다. 복음은 표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요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여전히 복음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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