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자들만 데리고 특별 제자도 수련회를 마치시고) 예수께서는 유대지경으로 들어가셨다.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 지역에서 예수님은 다시 무리들에게 전례대로 (하나님나라 전파와 축귀와 치유를) 가르치셨다. // 예수의 사역은 가르침이다. 축귀와 치유도 결국은 하나님나라를 가르치는 도구이자 열매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님을 알 수 있다.
2-12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시험한다.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모세의 가르침은 어떠냐고 물으셨다. 바리새인들은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어 이혼하기를 허락했다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는 것을 허락하는 명령을 기록했지만,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때,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한몸이 되었으니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대답하셨다. (예수님과 제자들만 있을 때) 집에서 제자들이 이혼문제에 대해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라고 하셨다.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는 것도 간음을 행함이라고 하셨다. // 바리새인들에 대한 대답에서 예수님은 모세 율법이전인 창조때 주어진 하나님의 법을 답으로 주셨다. 다른 말씀을 덧붙이지 않으셨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남자나 여자나 이혼의 목적은 간음을 행하기 위함이 아니냐고 콕 찝어 지적하신다. 하나님은 혼외성애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라고 허락한 것은 불법적으로 이혼당하는 사회적 약자인 여자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지 이혼을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님을 천명하신다.
13-16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려왔다. 제자들은 No Kids 라고 푯말을 내걸었다. 그래도 예수께 나아오려고 하자 역정까지 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히려 제자들에게 노하셨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께서는 하나님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만져주시고 축복하셨다. // 예수께서는 하나님나라를 영접하는 어린 아이들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어린 아이도 사회적 약자다. 결국 어린 아이는 작은 자다. 낮은 자다. 심하게 말하면 불가촉천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은 만져 주셨다. 안수하셨다. 아예 허그하셨다. (안아주셨다.) 버리시지 않으셨다. 율법은 부정한 것을 만진 예수를 부정해졌다고 판단할 것이나 사랑으로 완성된 율법은 거룩하신 예수께서 만진 부정한 어린 아이들이 거룩해졌다고 할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부정한 것을 멀리하는 나라가 아니라 부정한 것을 깨끗케 하는 나라다.
>> 예수님은 율법적 적용에 저항하신다. 율법을 문자가 아니라 사랑으로 적용하신다. 죄를 깨닫게 해 주는 율법을 주시기 전부터 있던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가르치신다. 사람들은 남녀노소 지위고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어린 아이같이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 낮은 자, 작은 자 들을 주님처럼 영접하는 자,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창조질서를 아는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는 사람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간다고 가르치신다.
>> 성도라면 적어도 한번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세례 서약을 한다. 성도가 결혼한다면 또 한번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결혼 서약을 한다. 이 서약은 지키라고 하는 것이다. 순서에 있으니 그냥 하는 것이 아니요 형식적으로 따라 하는 것도 아니다. 세례를 받을 때나 혼인서약을 할 때나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불신자와 멍에를 함께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물론 우리는 불신자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일터에서나 지역 사회 공동체에서 불신자라고 차별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는 것은 다르다. 부부생활부터 자녀양육까지 한 몸, 한 마음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몸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각 다른 은사로 (역할과 능력으로) 직장이나 사회 공동체에 지체로 참여하는 일과 결혼은 다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고 한다. 물론 하나님을 모르는 가정에도 무작정 적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서약했다면 배우자를 볼 때마다 서약한 내용을 되씹어야 한다.
>> 믿음이 강한 자들이 믿음이 약한 자들을 섬겨야 한다. 먼저된 자, 첫째가, 큰 자가 나중된 자를, 마지막을, 작은 자를 섬겨야 한다. 그럴 때 강한 자들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들이 강해진다. 더러워질까봐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더러움을 씻어주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바울은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성도라면, 아니 모든 성도들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고 선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하라고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