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권위에 대한 즉답을 피하셨다. 그리고 다음의 비유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신다.
1-12 한 사람이 울타리도 있고 포도주 틀도 있고 망대도 있는 포도원을 세우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으로 갔다. 때가 이르러 포도원을 세 주고 타국으로 간 한 사람이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냈다. 세입자 농부들은 세를 받으러 온 종을 심히 때린후 세를 주지 않고 돌려 보냈다. 포도원 주인은 다른 종을 보냈지만 세입자 농부들은 그 종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다. 포도원 주인이 다른 종들을 보냈지만 농부들은 더러는 때렸고 더러는 죽였다. 포도원 주인은 최후로 자기 아들을 보내기로 한다. 아들은 존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입자 농부들은 상속자인 아들이 죽으면 그 유산이 자신들 것이 된다고 생각하며 아들도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 던졌다. 결국 포도원 주인이 직접 와서 세입자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준다고 비유를 마치신다. 예수께서 시편의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라는 말씀을 비유에 첨부하신다. 대세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의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잡으려고 해도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자리를 떠났다.
// 이 비유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에 대한 답변이라고 봐야 한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의 권위를 언급하며, 자신의 권위도 하늘로부터 임을 간접적으로 밝히셨다. 그리고 이 비유를 통해 예수께서는 하늘로부터 권위를 받은 세례 요한과 달리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오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을 정도로 굳이 따로 해석할 필요조차 없었다. 물론 저들이 온전히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다.
>> 건축주와 건축가. 하나님나라를 집이라고 생각하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뿌리가 뽑힌 것도 모르고 자신들의 전통과 관습으로 메시야를 기다려 왔을 것이다. 자신들은 이땅에서 건축가로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통이 돌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해마다 세우면 무너지고 세우면 무너지는 제사밖에 드릴 수 없었다. 그런데 건축주되시는 하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버린 예수를 모퉁이 돌, 곧 성전의 주춧돌로 삼으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된 이유다. 건축주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이 ‘주’되신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13-17 (권위 논쟁으로 예수를 책잡으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실패했다.) 두번째로 바리새인들이 헤롯당과 손을 잡아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했다. 이들은 먼저 예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는 분이라고 추켜 세웠다. 그리고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는지 예수께 물었다. 예수게서는 데나리온를 가져오라 하시고 데나리온에 새겨진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셨다. 그들이 가이사의 것이라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랄 수 밖에 없었다.
// 예수님 당시 로마돈 데나리온에 가이사의 형상과 가이사의 이름과 가이사를 신으로 칭송하는 문구가 새겨진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들이다. 더 좁히면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십계명을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 바쳐져야 한다.
>>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선민이라면 하나님께 소출의 일부를 드리는 것은 마땅한 의무다. 자연스럽게 포도원 주인과 악한 소작농 비유와 연결된다. 소출의 일부를 드리는 것이 곧 언약(계약)관계 안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도원을 맡은 악한 소작 농부들은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인이 어떤 분인지 몰랐다. (예수께서는 영생을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만 아니라 바리새인들도 백성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내지 못했으니 하물며 헤롯당이랴. 특별히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의 지음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옷자락에 적어가지고 다니는 자신들이 뿌리채 말라버린 무화과 나무 같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가르침에 놀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달러와 리엘. 캄보디아는 캄보디아 돈 리엘과 함께 미국 달러를 공용화폐로 사용한다. 1달러는 약 4000 리엘의 가치가 있다. 동네 시장에서는 보통 리엘을 사용하고 마트에서는 달러를 사용한다. 미국 달러에는 IN GOD WE TRUST 라고 적혀있다. 리엘에는 뭐라고 적혀있는지 모른다. 겨우 숫자만 읽는다. 예수께서 굳이 유대 돈 드라크마나 세겔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으시고 로마 돈 데나리온을 가져오라고 하신 이유가 있었다. 어떤 선교사는 미쿡이 잘 사는 이유를 달러를 꺼내 미쿡 사람들이 IN GOD WE TRUST 하기 때문이라고 현지인들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완전히 틀린 말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넌센스다. 돈에 뭐라고 쓰여져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우리 마음에 무엇이 적혀 있느냐가 중요하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썼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성경구절이 적혀있는 수련회 티셔츠을 받아 입기만 하면 뭐하랴?
>>> 이웃을 사랑하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께 드려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