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7:13-48:35

주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새 이스라엘 땅을 분배하신다. 땅을 나누는 방법은 제비뽑기다. 제비뽑기에 참가자에 그 땅에 머물러 사는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머물러사는 타국인을 포함시킨다. 타국인은 머물러 사는 그 지파들 가운데서 기업을 받는다. // 제비뽑기는 공평함을 뜻한다. 제비뽑기는 다름을 뜻한다. 제비뽑기로 하나님께서는 각 성도들에게 믿음의  분량도 은사도 공평하게, 각각 다르게 주셨다. 성도들은 거룩한 성의 지체들이나 그 지체들이 모두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비교하지 말아야 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로, 교회로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 당연히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야 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

단/아셀/납달리/므낫세/에브라임/르우벤/유다/베냐민/시므온/잇사갈/ 스블론/갓 지파가 경계를 나눠 기업을 분배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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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출처 http://www.templemount.org/ezektmp.html

유다와 베냐민 사이에 45장에서 주하나님께 예물로 구별한 땅과 모든 족속을 위해 구별된 땅, 왕을 위해 구별된 땅이 분배되었다. 주하나님께 예물로 구별된 구역에 있는 성읍은 사방 사천오백척으로 북동남서쪽에 각각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딴 문이 세개씩 있었다. 이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 곧 ‘주께서 거기 계심’이라고 한다. // 열두개 현관에는 각각 열두 지파의 문패가 걸려 있는데 정작 그 성읍의 주인은 주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은 성소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성읍에도 계신다. 우리 주님은 예배당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도 주님은 거기 (그들 중에)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 제가 있는 곳도 주님이 거하시는 곳이 되기를 원합니다.

에스겔 47:1-12

1-5 측량자가 에스겔을 데리고 성문으로 갔다. 성전의 앞면은 동향이었다. 에스겔은 성전 동향문 문지방 밑에서 물이 스며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곧 남쪽으로 흘러 내리는 것을 본다. 에스겔을 북문쪽으로 데리고 가자 동향 바깥문쪽에서 북문쪽으로도 물이 스며나왔다. 측량자가 동쪽으로 천 척을 걸어가자 물의 깊이는 발목까지 찼다. 다시 천 척을 걸어가자 물이 무릎까지 찼다. 다시 천 척을 걸어가자 물이 허리까지, 다시 천 척을 측량하자 에스겔이 건널 수 없을 정도의 깊은 강이 되었다. 물이 가득하여 헤엄은 치되 걸어서는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다.

//성전에서 나오는 물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까? 43장 2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많은 물소리 같고 하지 않았던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적용하고 싶다. 성전으로부터 천 척씩 걸어가면서 물이 깊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르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비록 세상사람들이 알아 듣지 못하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하여도 세상에 충만하다. 시편 19편 기자는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준다. 낮는 낮에게 말씀을 전해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준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가지 번져간다…”(1-4a) 라고 노래한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은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 강은 샘에서 흘러나온 가는 물줄기에서 시작한다. 상류 계곡의 물은 깊지 않아도 맑다. 그러나 하류에 다다르면 물은 깊어지고 혼탁해 진다. 그래도 물은 생명줄이다. 말씀의 강줄기도 마찬가지다. 말씀의 강도 하나님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에 오염되어 바다로 흐른다. 혼탁해진 말씀의 바다에 사는 성도들은 보혜사 성령의 인도를 받아 모든 이론과 하나님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무너뜨려야 한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주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세상 가득하게 해야 한다. 예수가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6-12 측량자와 에스겔은 강가로 돌아왔다.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았다. 측량자는 물이 동쪽으로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 바다에 이른다고 말한다. 이 물로 인하여 바다의 물이 되살아 난다고 하신다.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 물이 흐르는 강 가에 어부가 그물을 쳐서 각종 고기,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은 고기를 잡을 것이라고 하시나 (강이 흐르지 않는)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 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강 좌우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않으며 열매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다. 성소를 통해 나온 이 강물을 빨아들이는 나무의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고 하신다.

// 말씀의 강가에는 나무가 심히 많다는 것은 시편 1편 2,3절을 연상시킨다.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의 시냇가에 심은 나무다.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 하며 묵상하는 사람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않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성소를 통해 나온 강가에 뿌리를 박고 말씀을 뿌리로 빨아들이는 나무무의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로 된다는 에스겔이 본 환상과 다르지 않다. 가락이 정말 잘 맞는다.

// 말씀의 강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할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바닷물이 증발되어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땅에 내리고 강으로 흘러 다시 바다로 흘러들어가게 하신다. 이런 순환을 통하여 혼탁의 바다에도 생명이 넘치게 하신다. 다만 이런 순환이 없는 진펄과 개펄은 소금 땅이 되고 만다. 사두개인들(진펄?) 처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을 죽은 자의 하나님으로 생각하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오해하고 만다. 바리새인들(개펄?) 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옛 조상에게 주어진 말씀으로만 받아들이고 자신들은 전통과 관습에 사로잡혀도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오해하고 만다. 마음에 말씀의 강이 흐르지 못하고 소금땅이 되고 만다. 소금은 좋은 것이지만 소금 땅은 옥토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강처럼 흘러야 하고 바다로 흘러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다시 증발하여 비가되어 내리는 순환을 해야 한다. 같은 말씀(물)이지만 다르게 적용되는 이유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성도들이 다양한 열매를 맺고 이웃에게 약재료가 될 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이유다.

>> 말씀의 홍수 속에 산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뿌리채 뽑을 기세다. 이럴 때일수록 오염되지 않은 말씀의 강 근원을 향해 올라가야 한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은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름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라고 편지한다.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살아나는 방법이다.

에스겔 45:18-46:24

(45:18-25) 주하나님께서 첫째 달 초하룻날에 (속죄제로) 성소를 정결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첫째 달 칠일에도 모든 과실범과 부지중에 범죄한 자를 위하여 속죄하라고 하신다. 일주일 후에는 (첫째 달 열나흗 날부터) 유월절을 칠일 동안 (무교절) 명절로 지키라고 하신다. 유월절 명절(첫날)에도 속죄제를 드리라고 하신다. 유월절 명절 칠일 동안 매일 번제로 속죄제를 드리라고 하신다. (가축을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제로 드리라고 하신다. 반년 후, 곧 일곱째 달 열다섯째 날에 칠일 동안 명절을 지켜 마찬가지로 속죄제와 전제와 소제를 드리라고 하신다. // 땅을 분배하다 말고 갑자기 웬 제사? 이스라엘 왕(군주)에게 제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말씀을 이어가나 보다. 그렇다면 어제 본문에 포함시키지. 하여간 육개월에 한번씩 속죄제를 드리는 명절이 반복된다. 그만큼 새로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땅, 곧 어디서 사느냐가 아니라 , 속죄함을 받는 것, 곧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신다.

 (46:1-15) 주하나님께서는 안뜰 동향의 문을 주중 엿새 동안에는 닫아두고 안식일과 초하루에 열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군주(왕)은 동향문이 아니라 바깥문 현관을 통하여 성전을 출입하며, 제사장은 군주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며 (아마도 왕이 하나님과 식탁의 교제를 나누는 것을 상징) 군주는 문통로에서 예배한 후 다시 밖으로 나가고 왕이 출입한 문을 저녁까지 닫지 말라고 하신다. 백성도 안식일과 초하루에 왕이 출입한 문 입구에서 주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하신다. 이스라엘 왕은 안식일에 주하나님께 번제와 소제를 드려야 한다. 초하루에도 번제와 소제를 드려야 한다.군주는 백성들과 달리 문을 통하여 출입할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러나 백성이 주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는 북문으로 들어왔으면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왔으면 북문으로 나가라고 하신다. 몸을 돌이켜 들어온 곳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신다. 왕은 백성 무리 가운데 있어서 무리가 들어오고 나갈 때 동행하라고 하신다. 명절과 성회 때에도 정한대로 제사라하라고 하신다. 명절과 성회로 모이는 때가 아닐 때 왕이 자원하여 번제나 감사제를 드릴 때에는 동향문을 열고 안식일에 번제나 감사제를 드릴 때와 같이 드리고 밖으로 나간 후에는 그 문을 닫아두라고 하신다. 아침마다 정한대로 번제, 소제를 드리라고 하신다. // 왕은 백성과 다르게 아침마다, 곧 매일 (자원하여) 하나님을 만나라고 하신다. 성도도 왕 같은 제사장이니 아침마다 자원하여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셔야 한다.

(16-18 ) 주하나님께서는 왕이 아들에게 준 선물은  기업이 되어 자자손손 대대로 이어진다고 말씀하셨다. 왕이 종에게 준 선물은 희년까지 종에게 속하고 그 후에는 다시 왕에게 돌아가서 왕의 아들이 기업으로 이어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왕은 백성의 기업을 빼앗을 수 없다고 하신다. 왕은 자신의 기업만 자기 아들에게 물려 줄 수 있다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백성이 기업을 빼앗기거나 흩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실 것이다. // 자녀에게 상속해야 할 것은 오직 신앙밖에 없다. 재물을 상속하려고 하는 것은 이웃의 것을 빼앗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라고 하신다. 성도라면 자녀에게 먹는 것과  마시는 것 대신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 곧 하나님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신다.

(19-24 ) 에스겔 곁에 섰던 자가 에스겔을 문 곁 통행구를 통해 북쪽을 향한 제사장의 거룩한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방 뒤 서쪽에는 제사장들의 속건제, 속죄제, 소제 제물을 준비하는 곳이라고 하신다. 이 성물을 가지고 바깥뜰에 나가 백성을 거룩하게 하지 말라고 하신다. 에스겔을 바깥뜰로 인도하신다. 그곳에는 백성의 제물을 준비하는 기구가 따로 설비 되어있었다고 한다. // 제사장들에게 제사를 준비하는 거룩한 방이 따로 있다는 것은 예수께서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가르치실 때 은밀한 중에 하라고 하시는 교훈을 떠올리게 한다. 제사 행위만이 아니라 제사는 보이지 않는 준비과정부터 거룩하게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사는 백성들에게 보이는 행위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께만 드리는 순종이기 때문이다.

에스겔 45:1-17

(새 이스라엘 땅에서도) 제비 뽑아 땅을 나눈다. 먼저 길이 이만오천 척, 너비 만 척의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주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라고 한다.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다고 하신다. 그 곳에 오백 척 정방형의 성소를 성소 주변 사방 오십 척을 정원으로 조성하라고 하신다. 이 구역 안에 둔 성소는 지극한 거룩한 곳이라고 하신다. 성소가 있는 이 거룩한 구역안에, 성소에서 수종드는 제사장들이 집을 지어 성소를 거룩하게 하라고 하신다. 이 구역안에 성전에서 수종드는 레위 사람들의 거주지, 마을 스물을 세우라고 하신다. 이 거룩한 구역 옆에 너비 오천 척, 길이 이만 오천 척을 측량하여 예비공간으로 (중앙정부의 땅으로) 지정하고 온 이스라엘 족속 몫으로 정하라고 하신다.

거룩한 구역과 이스라엘 온 족속의 몫으로 구별된 땅의 좌우편 땅을 동서쪽 국경까지 왕의 몫으로 분배하라고 하신다. (이 왕은 중앙정부의 지도자일까?)  자손대대로 왕들에게는 자신들의 몫으로 받은 땅에 만족하고 다시는 백성을 압제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렇게 거룩한 구역과 왕의 몫을 나눈후 그 나머지 땅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지파대로 주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에게 주어진 땅에 만족하고 포악과 겁탈을 버리고 정의와 공의로 백성에게 행라하고 하신다. 백성에게 속여 빼앗는 것을 그치라고 주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공정한 저울과 공정한 에바와 공정한 밧을 쓰라고 하신다. 저울추의 무게나 되나 말의 용량을 속이지 말라고 하신다. 예물을 드릴 때도 정확한 저울에 달아서, 정확한 용기에 담아 드리라고 하신다. 소제와 번제와 감사제물로 드릴 어린 양도 가축 떼 이백마리에서 한마리를 드리라고 하신다. 이 예물들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드리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의 군주는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명절과 초하루와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명절에 이스라엘 족속의 속죄와 그에 따른 감사로 드리도록 책임을 져야 한다.

>> 회복된 이스라엘에서 제비 뽑아 땅을 나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성도들에게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일차독자들에 대한 의미도 오늘날에 대한 적용도 감감하다. 그러나 제비 뽑아 땅을 나누는 원리 몇은 분명하다. 거룩한 곳을 먼저 구별하는 것이다. 거룩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주할 곳을 먼저 분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온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위한 곳을 구별한다. (지도자를 위해  넉넉히 분배함으로 지도자들이 백성을 압제하지 않고 정의와 공의로 행할 수 있도록 하신다. 지도자를 위해 땅만 넉넉히 분배하지 않으시고 백성으로부터 예물도 받아 만족하게 하셨다.) 그 나머지 땅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지파대로 주라고 하셨다.

>> 땅의 분배는 상속을 의미한다. 성도가 받은 은사도 상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이스라엘에서 땅을 분배할 때 거룩한 곳을 먼저 구별하였듯이, 모든 성도들은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예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지도자를 위한 땅을 구별하였듯이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왕되신 주님의 다스림에) 순종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에 (각 지파로 분배된 땅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도 각 지체가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위해서다.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각각 성도들에게 은혜로 나눠주신 은사는 다르다. 믿음의 분량도 다르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고 적용한다.

>> 하나님의 다스림은 정의와 공의의 사랑이다. 포악과 겁탈의 압제가 아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에서도 왕이 되신다.

에스겔 44 (1-31)

에스겔 곁에 섰던 그 사람이 에스델을 데리고 성소의 동향 바깥문으로 왔는데 그 문이 닫혔다고 한다. 주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주하나님께서 들어오신 동향문은 닫아 주어서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게 닫아두라고 하신다. // 동향문이 닫혔다는 것은 이 문을 출입할 수 있는 하나님보다 권세있는 자가 없다는 뜻이며, 또 하나님께서 나가시지 않으시고 영원히 계시겠다는 의미도 있겠다.

왕은 왕이기 때문에 성소 안에 들어와 주하나님 앞에서 음식을 먹고 다시 나갈 수 있다고 하신다. // 왕은 동향문이 아닌 다른 문으로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성도들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라고 베드로는 편지한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삶은 왕이 되어 하나님과 먹고 마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상에 다시 나아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에스겔은 북문을 통하여 성전 앞으로 인도된다. 성전에는 주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고 에스겔은 주하님의 영광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주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주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성전의 입구와 출구를 마음을 다해 주목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 족속을 반역하는 자라고 부르시며,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증한 일이 족하다고 하신다. 왜? 이스라엘 족속이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들로 하여금 성소안에 있게 하여 성전을 더렵혔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성소를 거룩하게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자격없는 자들을 성소에 두었다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중에 있는 이방인들이라 하여도,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성소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고 하신다. // 이스라엘 족속과 함께 지내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몸의 할례만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내세우시는 것을 보아 이미 이스라엘 족속에게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방인들이라 하여도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성소에 들어 올 자격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반대로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성소에 들어왔어도 성전을 더럽힌 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 실례로

주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주하나님을 떠날 때, 성전의 일을 담당하던 레위 사람들도 그릇행하여 우상을 따라 주하나님을 떠나 범죄했다고 지적하신다.  죄에 대한 댓가로 이들은 성전 문지기, 제물을 잡는 일 등 제삿 일의 도우미로 전락할 것이라고 하신다. 백성들에게 우상을 섬기게 했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형벌이다. 그들은 제사장 직을 담당하러 주하나님께 가까이 나와 섬기지 못한다고 하신다. 그들은 거룩한 것, 지극히 거룩한 것에는 손을 댈 자격이 없다고 하신다. 그러니 자기들이 행한 더러운 일에 대하여 부끄러워하라고 하신다. 그래도 주하나님은 그들을 성전을 지키고 성전의 일을 수종들게 할 것이라고 하신다. // 혈통으로 제사장 직이 상속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그래도 자신들이 행한 더러운 일에 대하여 부꾸러워 한다면 제사장의 직무에 도우미로 참여할 수 있다고, 즉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을 수 있는 은혜를 누릴 수는 있다고 하신다.

레위지파 사람들 중에서 사독의 자손들은 성소의 직분을 지켰다고 하신다. 이들에게 주하나님께 가까이 나와서 수종들라고 하신다. 이들이 주하나님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드릴 자격, 곧 제사드릴 자격이 있다고 주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들에게 성소에 들어와서 주님의 상에서 주님을 모시고 주하나님께서 맡긴 직분에 순종하게 하신다. 이들에게는 수종들 때 양털 옷 대신 가는 베 옷을 입으라고 하신다. 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고 가는 베 바지를 입으라고 하신다. 땀이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나 이들이 바깥뜰  백성에게로 나갈 때에는 웨이터 유니폼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으라고 하신다. 옷으로 거룩하다고 평가받지 말라고 하신다. // 사독자손들이 제사장 직을 상속받은 것은 혈통을 따라서가 아니라 성소의 직분을 지킨 순종을 따라서라고 하신다. 혈통뿐만 아니라 제자장 직분으로, 제사장 유니폼으로 거룩함을 사지 말라고 하신다. 제사장 직분으로 백성들을 거룩하게 할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백성들 속에서 백성들과 같은 옷을 입고 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직을 맡은 사독 자손들에게 두발규정도 정해주신다. 한마디로 튀지 말라고 하신다. 제사장 직을 맡은 자들에게 음주규정도 정해주신다. 결혼 규정도 정해주신다.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고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가르치라고 하신다. 재판할 때는 주하나님의 규례대로 하라고 하신다. 절기와 법도와 율례를 지키라고 하신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고 하신다. 직계 가족이 아니면 시체를 가까이 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고 하신다. 가족으로 말미암아 더렵혔다면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칠일을 더 지내라고 하신다. 성소에서 수종들기 위해서 속죄제를 드려 스스로를 정결케 하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의 말씀이다. // 제사장은 성소에서 제사를 수종들 때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본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결국 제사장의 권위와 존엄은 직위나, 유니폼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의 삶으로 밖에 달리 얻을 수 없다고 하신다. 그래서 정결하게 살도록 구체적인 삶의 규칙까지 알려주신다.

제사장 직분을 섬기는 자들에게는 기업이 있다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라고하신다. 이스라엘 가운데서 산업을 얻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산업이 되신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상속자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을  제물을 먹을 수 있는 권리로 알라고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각종 예물을 제사장에게 돌리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흠있고 부정한 제물은 먹지 말라고 하신다. //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을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통해 매일 매일 경험해야 한다.  성도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구해야 한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