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8 // 제 육시가 되매 (정오)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 태양이 가장 높이 떠있는 시간이다. 이 어둠이 제 구시 (오후 세시) 곧 태양의 열기가 가장 뜨거워야 할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이 어둠을 깨고) 제 구시에 예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힘을 내어 크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셨건만 곁에 있는 사람들 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다. 예수께서 엘리야를 부른다고 생각한 이도 있고 예수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신 포도주를 마시게 하려던 자도 있었다. 이들은 과연 엘리야가 와서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주는 지 지켜보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신 후 숨지셨다. 예수께서 숨지셨을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 (당시 성전에 있던 제사장들이 추후에 보고했을 것이다.)
>>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이 아버지의 뜻이었을 때 심히 놀라고 슬퍼하며 고뇌하시며 기도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때와 이 잔이 지나가기를 바라셨지만 아버지께 순종하셨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 마지막 순간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실 때 처럼 하나님께서 다른 제물을 준비하시고 자신은 살려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셨던 것일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버림받기까지 순종하셨다.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것과 다름 없었던 이삭을 살리시듯 아들 예수를 살리시지 않으셨다. 죽게 하셨다. 온 인류의 죄를 감당하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버리심을 받으시면까지 자신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막힌 담을 허셨다. 죽음 너머의 부활을 소망하게 하신다.
39-47 // 예수의 십자가 형을 주도 했을 백부장이 (가까이서) 예수께서 숨지심을 보고 예수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고백했다. 여자들, 곧 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이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많은 여자들은 멀리서 바라보았다. 예수께서는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에 숨지셨다. 날이 저물고 있어지만 아직 안식일이 시작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용감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 요셉은 존경받은 공회원이요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소개된다. 빌라도는 요셉의 요구에 십자가 형으로 예수가 벌써 죽었을까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다 예수의 죽음을 확인한 후 요셉에게 예수의 시체를 내어주었다. 요셉은 세마포를 사서 예수의 시체를 그 세마포에 싸서 바위 속을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을 막았다. (이쯤이면 완전히 저녁이 되어 안식일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둔 곳을 보았다.
>> 백부장은 무슨 근거로 예수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었을까? 오늘 가장 많이 생각한 질문이다. 마가는 빌라도의 법정에서부터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기까지 (새벽 6시에서 오후 세시까지) 백부장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예수의 십자가의 길을 지켜보았을 것이라는 암시외에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 (소문에 들은 가장 크신 분이) 가장 작은 자가 되어 가장 낮은 자리, 곧 죽음의 자리까지 순종하시는 것에서 세상권세와 같지 않은 하늘의 권세를 보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요셉 처럼 존경 받은 공회원도 아니요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는 자도 아닌 이름 없는 백부장의 증언으로도 예수께서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다. 증인의 자격과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증언의 내용이 무엇이지 중요하다. 내가 살아내야 할 삶이다. 내가 이땅에서 높아져야 질 좋은 증언을 할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의 시체를 그 세마포에 싸서 돌무덤에 모셨다. 세마포를 사는 매매행위를 했다는 것은 아직 안식일이 시작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안식일 준비일이 유월절과 무교절 첫날에 지키는 아무일도 하지 말고 먹을 것만 챙기라고 하신 특별 안식일의 준비일인지, 매주 돌아오는 정기 안식일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 준비일 곧 특별 안식일 (유월절 첫날) 전날이라면, 무교절 첫날(14:12) 구절을 다시 설명해야 한다. 하여간 교회는 이 안식일을 정기 안식일로 지켜 금요일을 수난일로 한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여정에 대하여 왜 교회는 통일된 해석을 못하는 것일까? 물론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가르쳤다. 이 구절에 충실하여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일까?
>> 백부장이 가까이서 예수의 죽음을 지켜봤다면 여자들은 멀리서 예수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이들은 믿음으로 예수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백부장은 물리적으로 예수의 죽음으로 볼 수 있는 거리에 있었지만 여자들은 알 수 없었다. 며칠전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장례를 준비한 여인처럼 이 여자들은 제자들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가르침을 잘 이해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지위와 성별의 차이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가까이 할 수 없었지만 이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었다. 이들의 눈은 끝까지 예수를 떠나지 않는다. 예수 둔 곳을 본다. 여인들이 아직 보지 못한 예수의 부활을 미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