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1-20

Happy Easter!

1-8 // 안식일이 지났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두었다. 이 안식일이 유월첫 첫날 지키는 특별 안식일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야 2절 안식 후 (이 안식일은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정기 안식일일 것이다)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여인들이 그 무덤으로 갔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1절의 안식일이 정기 안식일이라면 안식일이 지난 후 여자들이 예수께 바를 향품을 산 것이 안식일 저녁이 지난 후여야  하는데 그때 향품을 사두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지 않다. 하여간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 여자들은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을 누가 굴려줄까 의논하며 예수의 시체를 둔 무덤으로 갔다. 그런데 그 큰 돌이 벌써 굴려져 있었다. 무덤에 들어가니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무덤 우편에 앉아있었다. 흰 옷을 입을 청년이 놀라는 여자들에게 “놀라지 말라 너희가 찾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는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않는다’”고 하면서 예수의 시체를 두었던 빈 곳을 보여주었다. 흰 옷을 입은 청년은 여자들에게 가서 예수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죽기 전에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에게 갈릴리에 가서 예수를 만나라고 전하라고 말했다. 여자들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몹시 놀라 떨며 무덤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 15장에서 예수께서는 안식일 준비일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리마대 요셉은 안식일이 되기 전에 세마포를 사서 예수의 시체를 그 세마포에 싸서 돌무덤에 모셨다.  세마포를 사는 매매행위를 했다는 것은 아직 안식일이 시작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 안식일이 과연 정기 안식일이냐 아니면 유월절과 무교절 첫날에 지키는 특별 안식일이냐가 문제다. 마가복음의 이전 문맥으로는 14장 12절 무교절 첫날에 최후의 만찬을 하신 것으로 되어있다. 무교절 첫날을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이라고 했으니 해가 지기 전이라면 아직 첫날이 시작 안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그날 밤에 잡히셨다면 유월절 준비일에 잡히셨고 유월절/무교절 첫날에 처형되셨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15장에서는 안식일 준비일에 처형되신 것으로 기록한다. ㅠㅠ 16장 1,2절에 연속된 두번의 안식일이 나온다. 두 안식일이 같은 안식일이라면 사건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첫번째 안식일을 유월절 안식일이요 두번째 안식일을 정기 안식일로 읽기도 한다. 그래서 수난일을 수요일로 (목요일일 수도 있지만, 밤낮 3일 후 부활을 맞추기 위해)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복음서에 기록된 ‘안식후 첫날’은 오직 예수의 부활과 관련한 구절에만 사용된 표현이라고 한다. 하여간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15장의 안식일을 정기 안식일로  해석해서 금요일을 수난일로 한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여정에 대하여 교회는 통일된 해석을 못한다. 전통과 관습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물론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가르쳤다. 이 구절에 충실하여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날짜를 따지기 보다 그 의미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에 더 충실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사건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읽어내는 일을 기피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 여자들은 부활을 목격하지 못했다. 여자들은 빈 무덤을 봤을뿐이다. 이들에게는 예수 부활의 감격이 아니라 예수 부재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8절은 실질적인 마가복음의 마지막 절일 수 있다. 마가는 왜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끝을 맺을까?  부활절 아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렇게 끝을 맺는다는 것이 영 어색하다. 승리의 나팔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성도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만나주시기까지. 그러나 예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이 귀에 울린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성도들은 정녕 복있는 사람들이다. (마가는 예수부활의 빵빠레를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울려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9-20 // 9절부터는 마지막 절 까지는 [  ]로 묶여있다. 예수께서는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가장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 마리아가 슬픔에 잠겨 있던 예수와 함게 하던 사람들에게 예수의 부활을 알렸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도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부활하신 예수는 시골로 (아마도 엠마오로) 가는 두사람에게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셨고 두 사람은 예수의 남은 제자들에게 알렸다. 남은 제자들 역시 두 사람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을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예수를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않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다.  (부활의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 불신과 불신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신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믿는 자들에게게는 예수의 이름으로 축귀하고 새 방언을 말하며 뱀과 독의 해를 받지 않으며 오히려 치유의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신 후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제자들이 나가 곳곳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주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셔서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여러가지 표적들이 나타나게 하셨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복음을 전할 때 따라는 여러가지 표징을 통하여 예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에 대한 확증을 얻었다.

>> 마가복음의 에필로그에서도 예수의 부활을 듣고도 불신 불신 불신했던 제자들을 만난다. 부활의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지만 결국 제자들에게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나님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까지 하나님나라에 대한 복습을 통하여 믿음없음을 믿음으로 , 완악한 마음을 (마음의, 성령) 세례로 씻어주셨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우리에게는 말씀에 대한 순종을 임마누엘의 표징으로 주신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믿음 없고 마음이 완악한) 사람과는 함께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시작되었고 순종하는 제자들을 통해 진행중이다.

++++ 페북에는 아래 글도 포함

마가복음 읽기를 마쳤다. 깊은 묵상보다 그냥 읽으면서 내가 이해한 대로 본문을 다시 적어보고, 본문을 다시 적으면서 느낀점을 더하고 의문점을 생각해보았다. 개인적인 적용은 가급적 쓰지 않았다. 주석이 던지는 질문보다는 개역성경을 읽어내려갔고 이해가 안되면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 다른 한국어 번역과 영어성경도 참조했다. 단어검색은 폰에 있는 성경앱을 사용했다. 성경본문을 베끼다시피한 나의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눌러주신 정병오 최태룡 우홍기 온상원 이상권 김동주 전현철 석귀희 김기현 조경애 이기영 윤성남 김기형 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사실 지적(질)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분은 없으셨다.  긴글을 눈으로 보신 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사실 나 스스로도 긴글은 스압으로 잘 읽지 않는다. 그래서 다양한 친구들이 있는 개인 페북에는 묵상글을 올리지 않는다. 그런데 마가복음 묻고 답하기는 긴 글을 서로 올리니 잘됐다싶어 그냥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많지 않은 본문일 경우에는 다른 분들의 글을 매일 모두 꼼꼼히 읽지는 않았다. 스타일이 전혀 다른 정병오 님의 묵상을 나의 단면적인 이해를 보충하기 위해 꾸준히 읽었고, 이해안되는 부분을 참고하기 위해 먼저 나의 묵상을 마친후에 다른 분들의 묵상을 읽으며 부족한 부분을 해소했다. 김동주님의 주석형 해석이 많은 도움이 되었고 김기현님의 개인성찰적 동영상도 감사했다. 온상원님의 마가복음관련 책 부분요약글들도 다음날 성경읽기의 폭을 넓혀주었다. 전현철 님이 올려주신 자료도… 참 귀한 공동체라고 생각된다. 전통과 관습만 남아가는 시대에 여러분 모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기쁨이 매일매일 새롭게 솟기를 간절히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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