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에스겔이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이라고 타임스탬프가 찍혀있다. 에스겔은 사로잡힌 지 오년 넷째 달 초닷새에 첫 환상을 보았으니 오늘 본문은 첫 환상으로부터 20년가까이 지났다. 주하나님께서는 권능으로 에스겔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셔서 하나님의 이상을 보여주신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높은 산에서 남향의 성읍같은 것을 보았다. 주하나님은 환상중에 에스겔을 데리시고 그 성읍에 이르렀다. 문앞에는 놋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측량에 사용되는 줄과 자를 가지고 서 있었다. 줄자를 가진 사람이 에스겔에게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하라고 말했다.
에스겔이 본즉 집 바깥 사방으로 담이 있는데 담의 두께가 한 장대요(6척), 높이도 한 장대(6척)였다. 동향의 문으로 올라가 그 문의 통로의 길이도 한 장대, 문 안쪽 통로의 길이도 한 장대였다. 문간에 있는 문지기들 방도 각기 길이, 너비가 한 장대요, 각 방 사이의 벽이 다섯척 (5/6장대)요, 안쪽 문 통로의 길이가 한 장대, 안 문의 현관도 한 장대 였다. 안 문의 현관을 또 측량하니 8척( 8/6장대)이요 문은 두척으로 현관이 안으로 향하였다. …
척척척 에스겔은 줄자를 가진자가 동서남북 사방으로 향한 문과 방과 벽과 현관과 통로 등등을 모두 측량하는 것을 자세히 보았다. 치수만이 아니라 방들의 기능과 역할도 보았다. 내전과 성소와 길이와 너비가 스무척인 지성소도 보았다. (엥~ 본문이 길구나. 40장 20절까지인줄…) …
마지막으로 사방 담을 측량했는데 담둘레가 (담 안쪽 길이가) 동북남서쪽으로 각각 오백척의 정방형이라고 한다. 에스겔은 이 담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한다고 보았다.
>> (본문이 길어 집중이 안된다. 성전의 크기도 가늠이 안된다.) 인상적인 구절은 42장 13,14절이다. 좌우 골방 뜰 앞에 있는, 곧 북쪽과 남쪽에 있는 거룩한 방들을 측량하면서 길이와 너비를 말하지 않고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서 먹으며, 지설물을 거기에 두는 거룩한 곳이라고 방들의 용도를 설명한다. 또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기 때문에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나 나올 때 거룩한 옷을 입고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거룩한 옷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성전 측량하기를 마쳤다. 성전을 측량하면서 길이와 너비와 양식과 용도만 설명하다가 이절에 와서는 수치는 간곳없고 설명만 들려준다. 제사장들의 거룩한 옷은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입는옷이지, 백성의 뜰에서 백성들을 만날 때 입는 옷이 아니라고 한다. 다시말해 제사장 의복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입어야 하는 것이지 백성들에게 군림하기 위해 입는 옷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에서는 누구나 똑같다. (국회의원들도 금뺏지를 국회에 들어갈 때만 다는게 맞지 않나 싶다.) 물론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만 거룩하고 바깥 뜰에 나와서는 거룩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은 아니다. 바깥 뜰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뜻이다. 바깥 뜰 백성도 거룩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게서 성령을 마음에 쏟아부어주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요한은 계시록 21장에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측량하는 환상을 적었다. 성과 성곽의 치수를 단 두절로 요약한다. 이 성의 성문은 열려있다고 한다. 그러나 거룩한 자는 들어가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간다고 적었다. 오늘 본문 마지막도 성의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한다고 마무리된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은 하나님나라. 그러나 그곳에는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그리스도로 옷입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 나의 거룩은 바깥 뜰에서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바깥에서는 낮아지고 또 낮아지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