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7:1-12

1-5 측량자가 에스겔을 데리고 성문으로 갔다. 성전의 앞면은 동향이었다. 에스겔은 성전 동향문 문지방 밑에서 물이 스며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곧 남쪽으로 흘러 내리는 것을 본다. 에스겔을 북문쪽으로 데리고 가자 동향 바깥문쪽에서 북문쪽으로도 물이 스며나왔다. 측량자가 동쪽으로 천 척을 걸어가자 물의 깊이는 발목까지 찼다. 다시 천 척을 걸어가자 물이 무릎까지 찼다. 다시 천 척을 걸어가자 물이 허리까지, 다시 천 척을 측량하자 에스겔이 건널 수 없을 정도의 깊은 강이 되었다. 물이 가득하여 헤엄은 치되 걸어서는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다.

//성전에서 나오는 물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까? 43장 2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많은 물소리 같고 하지 않았던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적용하고 싶다. 성전으로부터 천 척씩 걸어가면서 물이 깊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르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비록 세상사람들이 알아 듣지 못하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하여도 세상에 충만하다. 시편 19편 기자는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준다. 낮는 낮에게 말씀을 전해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준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가지 번져간다…”(1-4a) 라고 노래한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은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 강은 샘에서 흘러나온 가는 물줄기에서 시작한다. 상류 계곡의 물은 깊지 않아도 맑다. 그러나 하류에 다다르면 물은 깊어지고 혼탁해 진다. 그래도 물은 생명줄이다. 말씀의 강줄기도 마찬가지다. 말씀의 강도 하나님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에 오염되어 바다로 흐른다. 혼탁해진 말씀의 바다에 사는 성도들은 보혜사 성령의 인도를 받아 모든 이론과 하나님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무너뜨려야 한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주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세상 가득하게 해야 한다. 예수가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6-12 측량자와 에스겔은 강가로 돌아왔다.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았다. 측량자는 물이 동쪽으로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 바다에 이른다고 말한다. 이 물로 인하여 바다의 물이 되살아 난다고 하신다.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 물이 흐르는 강 가에 어부가 그물을 쳐서 각종 고기,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은 고기를 잡을 것이라고 하시나 (강이 흐르지 않는)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 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강 좌우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않으며 열매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다. 성소를 통해 나온 이 강물을 빨아들이는 나무의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고 하신다.

// 말씀의 강가에는 나무가 심히 많다는 것은 시편 1편 2,3절을 연상시킨다.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의 시냇가에 심은 나무다.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 하며 묵상하는 사람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않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성소를 통해 나온 강가에 뿌리를 박고 말씀을 뿌리로 빨아들이는 나무무의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로 된다는 에스겔이 본 환상과 다르지 않다. 가락이 정말 잘 맞는다.

// 말씀의 강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할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바닷물이 증발되어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땅에 내리고 강으로 흘러 다시 바다로 흘러들어가게 하신다. 이런 순환을 통하여 혼탁의 바다에도 생명이 넘치게 하신다. 다만 이런 순환이 없는 진펄과 개펄은 소금 땅이 되고 만다. 사두개인들(진펄?) 처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을 죽은 자의 하나님으로 생각하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오해하고 만다. 바리새인들(개펄?) 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옛 조상에게 주어진 말씀으로만 받아들이고 자신들은 전통과 관습에 사로잡혀도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오해하고 만다. 마음에 말씀의 강이 흐르지 못하고 소금땅이 되고 만다. 소금은 좋은 것이지만 소금 땅은 옥토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강처럼 흘러야 하고 바다로 흘러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다시 증발하여 비가되어 내리는 순환을 해야 한다. 같은 말씀(물)이지만 다르게 적용되는 이유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성도들이 다양한 열매를 맺고 이웃에게 약재료가 될 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이유다.

>> 말씀의 홍수 속에 산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뿌리채 뽑을 기세다. 이럴 때일수록 오염되지 않은 말씀의 강 근원을 향해 올라가야 한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은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름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라고 편지한다.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살아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