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3

화가 있도다. 화가 있도다. 화가 있도다. 2장 하반부에서 화가 있다는 주하나님의 뜻을 들은 하박국은 시기오놋에 (슬픈가락에)  맞춰 기도한다.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기를 바란다.하박국은 주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이 속히 이뤄지기를 간구한다. 그리고 주하나님의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3-16절은 속히 이루어지길 바라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심판을 노래하고 17-18절은 진노중에라도 임할 긍휼을 노래한다. 하박국은 주하나님께 피해 편히 쉬고 새힘을 얻은 ‘아침의 사슴’ 곡조로 노래를 (묵시를) 마친다.

>>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나의 힘이 되신 주하나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무엇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소유됨으로 인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하루하루를 살게 하옵소서.

하박국 2:12-20

화가 있을 것이다.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들아. 주하나님께서 민족들이 고생해서 세운 탑을 불태워 버릴것이요, 나라들이 한 일을 헛수고요 피곤만 부르는 일이 되게 하실 것이다. 대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주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 하신다.

화가 있을 것이다. 이웃에게 술을 주고 이웃이 술에 취해 수치를 모르는 행동을 하게 하는 자들아. 주하나님은 이들 자신도 술에 취해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도 수치를 모르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이런 사람들을,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는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그런 짓을 행하는 게 아니라 그런 짓을 행하는 남들을 옳다고 부추기는 자들이라고 한다.) 이런 자들에게 돌아올 것은 하나님의 진노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면 그들의 영광은 가려지고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는 주님의 ‘욕’만 돌아올 것이다. 그들의 레바논에 강포를 행해서 영광을 얻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주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짐승과 사람의 피를 흘리며 모든 주민에게 강포를 행한 그대로 갚으시겠다고 하신다.

화가 있을 것이다. 목석의 우상을 섬기는 자들아. 그들이 섬기는 신은 그들이 손으로 새기고 금과 은을 부어 만든  우상으로 거짓되고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신다. 목석의 우상에게 깨어나라고 한들 우상은 말하지 못한다고 하신다. 생기가 없어 죽은 우상이 무슨 말을 하겠으며 무슨 교훈을 베풀겠느냐고 반문하신다. “오직 주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 지니라.”라고 선언하신다. 곧 경배의 대상은 오직 살아계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집을 세우고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경성한 파숫꾼이 복이있다. 이웃에게 진실과 행함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 오늘도 살아계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경청하는 자가 복이있다.

하박국 2:2-11

(하박국의 항변에 주하나님께서 대답하신다.) 이 묵시를 기록하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시인성이 좋게 판에 새기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이 말씀하신 묵시는 정한  때가 있다. 정한 때는 심판의 때요 거짓되지 않고 속히 이를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생각에는 비록 더딜지 몰라도 기다리면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한다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다고 하신다. 마음이 교만한 ‘그’는 누구인가? 아마도 당시 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왕이 없는 것처럼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을 지칭할 수도 있겠다. 혹은 지금 심판의 도구로사용되지만 강포가 지나쳐 범죄한 갈대아 사람들을 대표할 수도 있다. 의인은 이와 반대되는 사람이다. 주하나님께서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신다.

의인이 아닌 사람의 특징을 열거하신다. 술을 즐긴다. 거짓된다. 교만하여 무저갱의 지옥처럼 끝없이 자기 욕심을 부린다. 죽은 자와 다름 없다.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탐욕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끼리끼리 논다. 그러나 자기들끼리 다음과 같이 서로 평론하며 조롱하고 저주를 퍼붓는 사이가 된다. [자기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탐욕에 사로잡혀 우울증에 빠진 자여, 더 강한 자가 갑자기 일어나 너에 갑질하지 않겠느냐, 네가 여러나라를 노략한 것같이 노략당할 것이다. 탐욕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피를 흘린 자여, 모든 주민에게 강포를 행한 자여] 라며 자기들끼리 저주하고 조롱한다.

주하나님은 이들이 재앙을 피하기 위해 높은 데 깃들이려 하지만 (바벨탑을 쌓아보지만), 재앙을 피하기 위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만 다 저주를 부르는 행위라고 하신다. 자기만 살려고 남을 짓밟고 또 위로 올라가기 위해 많은 민족을 멸한 것은 화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영혼에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한다. 영혼에게 죄를 범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도자의 깨달음 처럼 (전 7:29)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사람의 꾀를 따른다는 뜻이리라.

** 담벼락의 돌들, 집의 들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길거리의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고 하셨다.

>>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알라고 하시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은 정한 때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오직 의인은 ‘그의’ 믿음을 말미암아 산다고 밑줄 쫙 그어야 한다. 의인은 하나님 보시기에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다. (의인은 자칭 신앙적인 사람을 지칭하지 않는다. 세상에서도 칭찬받는 성품과 행실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지켜 신뢰를 얻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신뢰를 얻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의 언약이 견고하고 확실하고 영원하다는 것을 붙잡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요구하신다. ‘나의 꾀’를 따라 나의 영혼에 범죄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잣대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살라고 하신다. 터가 무너진 세상에서 오늘도 하나님은 ‘나의’ 믿음을 요구하신다.

하박국 1:12-2:1

(선지자가 이로되) 하박국은 하나님을 거룩한 분, 만세 전부터 계신 분, 곧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않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독백한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반석이시지만 그들에는 책망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는 눈이 정결하셔서 악과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분이라고 추켜세우면서, 그런데 어떻게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는지, 악인이 상대적으로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 잠잠하시는지 따진다. 주께서 어떻게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질서 없이 헤엄치게?)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왕이 없어 각자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게) 하셨는지 항변한다. 갈대아 사람들의 낚싯감이 되도록, 바벨론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도록 그냥두시는지 묻는다. 갈대아 사람들이 침략하여 얻은 전리품으로 풍부하고 풍성하게 된다고 고발한다. 한 나라만이 아니라 여러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며 바벨론만 풍성하게 되는 것이 옳으냐고 항변한다. 하박국은 파수꾼처럼 경성하여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린다.

//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하박국의 질문이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사람들을  심판자로 일으키셨다 라고 답을 하시자, 하박국은 악으로 악을 갚는 것이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 것이) 마땅한지 항변하며 다시 묻는다. 하나님 말씀대로 갈대아 사람들은 삼판의 도구로써의 역할에 지나쳐 무자비하게 (자기의 힘을 자기의 신으로 삼는) 악을 행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하박국의 항변이 틀리게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박국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창조주 하나님을 안다면 갈대아 사람보다 덜 악한 것에서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비교우위에 있다고 만족해서는 안된다. 상대적으로 의로운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마찬가지로 성도는 세상사람보다 조금 더 착하게 사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그냥 착하게 사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온갖 꾀로 풍부해지고 있는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일상의 삶이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하박국 1:1-11

1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다. // 하박국이 누구인지 어느 왕 때인지 언급이 없다. 하박국서는 하박국이란 이름이 뜻하는대로 하나님께 매달리어 받아낸 하나님의 뜻을 풀어간다.

2-4 하박국은 주께 부르짖는다. ‘어느 때까지 듣지 않으실 겁니까?’ 라며 주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린다. 하박국은 강포함을 당하고 있다. 하박국이 둘러보니 죄악투성이다. 겁탈과 강포가 변론과 분쟁이 곳곳에 있다. 분명히 율법의 가르침이 있건만,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한다고 고발한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서 정의가 굽게 행하여 진다고 부르짖는다.

5-11 주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답하신다. 주하나님은 하박국에게 세상 나라들을 보고 놀라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사람 (바벨론)을 일으켜 온 땅을 점령하는 것을 보라고 하신다. 바벨론이 여러나라의 왕들을 멸시하며 방백들을 조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그땅을 모두 점령할 것이라고 하신다.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갈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갈대아 사람들을 자신들에게서 모든 힘이 나온다고 믿고 자신들의 힘을 자신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자기들의 힘을 자신들의 신으로 삼는 것 역시 범죄행위라고 지적하신다.

// 동문서답이 아닌가? 하박국은 이 땅에 정의가 없다고 한탄하는데 주님은 세상은 어차피  ‘약육강식’이라고 답하시는 것 같다. 하박국이 있는 땅에만 정의가 굽게 행하는 줄 아느냐, 온 세상이 약육강식이 아니더냐 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약육강식의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세상에서는 강한 것도 영원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서 여러 나라를 점령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영원할 것 같은 강대국들도 갈대아 사람들에게 점령당하는 것을 보면서 (강식하던 자들이 약육이 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정의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하나님을 모르는 갈대아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자신들의 신으로 삼는 범죄를 행하고 만다. 하나님께 따져 묻는 하박국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겁탈과 강포와 별론과 분쟁이 가득한 곳에 더 강폭한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불러오신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랴. 하나님은 어떻게 자신의 힘을 자신들의 신으로 삼는 갈대아 사람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며, 심지어 사람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단 말인가?

>> 동문서답이 아니라면 // 하박국은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악인이 (갈대아 사람들이) 의인을 (이스라엘 백성을, 예루살렘을) 에워쌌기 때문이라고 하나님께 고발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예루살렘을 치기위해 갈대아 사람을 보내셨다고 답하신 것이다. 갈대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대답하신 것이다. 다시말해 이스라엘이 정의를 굽게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것이다. 물론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갈대아 사람들도 결국은 지나쳐 범죄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강식하지만 언젠가는 약육이 될 것임을 암시하신다.

>>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말씀대로 바벨론에게 순순히 항복했으면 겁탈과 강포가 덜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서를 읽으면 이스라엘에는 (남 유다는) 이미 정의가 굽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기에 정의가 굽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결국 굽어진 정의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이키라고 하신다. 약육강식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강과 약이 함께 먹고 마시는 사회가 되도록 성도들이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성도들이 강식하게 해달라고 부르짖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