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복이 있도다, 주하나님께 피하는 모든 사람, 주하나님의 진노가 급할 때, 주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악인과 같이) 망하게 되었을 때, 주하나님의 아들에게 인사하고 (입맞추고) 도움을 요청하라고 노래한다(12). 주하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고 즐거워하라고 명령하며 노래한다(11). 높은 지위에 있는 자, 많이 배운자, 재판관들에게 복 있는 사람에 대한 교훈을 배우라고 명한다 (10). 높은 지위와 많은 지식과 재판하는 권력도 쇠 몽둥이를 가진 사람에 의해 질 그릇 같이 부숴질 것이기 때문이다(9). 주하나님께서 쇠막대기를 가진 자에게 이방나라도 유업으로 주시고 땅 끝까지 소유하게 하실 것이니, 도움은 주하나님께 구하라고 명하신다(8). 시인은 쇠막대기를 가진자가 주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하나님께서 낳은 자라고 선포한다. 시인은 이 선포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노래한다(7). 주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을 거룩한 산 시온을 다스리는 왕으로 세웠다(6). 주하나님께서 (이렇게) 분노하심으로 주하나님의 아들을 왕으로 시온에 세우시자 세상 왕들은 놀랐다(5). 주하나님께서는 세상 왕들을 조롱하며 조소하셨다(4). 왜냐하면, 세상 왕들이 모여 주하나님의 징계와 벌을 달게 받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3). 징계의 이유는 세상 왕들이, 지도자들이 주하나님과 주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기 위해 꾀를 부렸기 (모반했기) 때문이다(2). 시인은 이방나라들과 이방 민족들의 꾀, 곧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 모든 것과 모든 이론은 (그리스도에 의해) 무너뜨려질 헛된 일을 꾸미는 것이라고 노래한다(1).
>> 가끔 시편의 시를 마지막절로부터 읽는다.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이 헛되다고 (복이 없다고) 시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마친다. (오늘 처럼 마지막부터 읽으면 1편과 마찬가지로 복되다로 이작하여 헛되다(망한다)로 마친다.) 헛되다는 것은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라는 시편 1편의 마지막 구절을 그대로 이어 받는다. 사람들의 꾀는 사람들을 정직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행위다. 당연히 복이 없다. 아니 복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전도자의 노래처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사람들의 꾀는 하나님의 정직에 비하면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이요 주께서 쇠몽둥이로 무너뜨리실 이론이다. 그래서 바울은 육신으로 행하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고린도에 편지한다.
>> 시인은 그리스도께서 쇠막대기를 가지고 계심을 알라고 노래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는, 곧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자, 곧 성도에게는, 예수님의 쇠막대기가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을 이루게 하는 회개로 이끄는) 솜방망이에 불과하겠지만,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과 사람들의 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과 사귐이 없는 자들에게는) 세상근심으로 사망을 이루는 쇠몽둥이가 될 것이다.
>> (시인은 쇠막대기를 노래하지만)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하셨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말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말고, 하나님께 피할 수 있도록 중보하시는 예수께 나아와 입맞추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