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찬양대의 지휘에 따라 현악기에 맞춰 낮은 음으로 부른 노래라고 한다. 낮은 음은 베이스 소리다. 둥둥둥 박자를 타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흐느낌이 느껴진다. 떡벌어진 어깨의 건장한 남자가 양 어깨를 동시에 들썩이며 우는 모습이 떠오른다.
시인이 주하나님의 노여움을 샀나보다. 주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벌을 받아야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주하나님의 용서를 바란다. 얼마나 오랫동안 용서를 구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용서를 구한다. 꿇은 무릎의 뼈마디가 쑤셔오도록 용서를 구한다. 의로우신 주하나님을 알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용서를 구한다.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합니까? 아마도 주하나님께서 시인으로부터 얼굴을 돌리셨나보다.
시인은 주하나님께 얼굴을 시인에게로 다시 돌려 (돌아와) 자신을 봐달라고 탄원한다. 제발 자신의 마음을 알아보시고 주하나님의 자비로 살려달라고 탄원한다. 죽으면 더 이상 주하나님을 생각할 수 없으니, 죽으면 주께 나와 감사할 수 없으니 죽기전에 살려달라고 매달린다. 시인은 울다가 지쳤다. 밤마다 눈물의 기도를 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으면 눈물바다에 침대가 둥둥 뜨고 침구가 다 젖어벼렸다고 비유할까? 얼마나 울었으면 울다 울다 이제는 주님은 간곳없고 대적들에게 둘러 쌓여 눈앞이 캄캄하게 되었다고 탄식한다.
(그러나) 시인은 주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 시인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나를 떠나라고 명한다. 울며 울며 기도한 시인에게 주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이다. 시인은 아마도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았었나보다. 다윗의 시이니, 악인의 꾀를 따라 간음하고 죄인의 길에 서서 살인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인구조사를 했다고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도 있다. 그러니 시인은 눈물의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악을 행하는 너희는 나를 떠나라라는 명령은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았던 다윗 자신에 대한 처절한 명령일 것이다. 모든 악에서 떠나겠다는 다윗 스스로의 다짐일 것이다.
주하나님께서는 용서를 구하는 시인의 애원을 지금까지 들어주셨다. 그래서 이번 기도도 들어주실 줄 시인은 확신한다. 원수들은 시인이 용서받자 당황한다. 주하나님의 무궁한 인자하심에 두려움을 느끼며 물러간다. 사탄은 아마도 시인에게 간음과 살인과 오만의 잘못은 용서 받을 수 없어라고 속삭였을 것이다. 어차피 용서 받을 수 없으니 계속 악에 머물라고 시인을 꼬셨을 것이다. 그러나 주하나님께서는 악에서 떠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의 죄는 동이 서에서 먼것 같이 기억하지 않으신다. 시인의 원수들은 떨며 시인을 떠나간다.
>> 나는 간음하고 살인하고 오만한 자리에 앉았던 다윗보다 그래도 낫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음욕을 품은 자가 간음한 자요, 형제에게 화를 내면 살인한 자라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가르치는 자는 하나님보다 높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인과 같이 울면서 애원해야 한다. 악인의 꾀를 따르라고, 죄인의 길에 서라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으라고 속삭이는 사탄의 소리에 미혹되는 마음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라고 하신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바울은 적용한다. 사탄의 소리에 미혹되어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근심하는, 또는 많은 부를 지키기 위해 창고를 지어야 한다는 근심은 세상근심이요 사망을 이룬다고 바울은 적용한다.
>> 아침에 하나님 뜻대로 행하겠다고 기도하고 나갔던 시인이 저녁에는 돌아와 그날을 반성하며 운다. 그만큼 세상은 시인에게도 우리에게도 녹록하지 않다. 그리스도와 하나님나라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음행과 더러운 행실과 탐욕을 버려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살펴야 한다. 바울은 “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라고 경고하면서 어리석은 자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라고 (순종하라고) 권면한다. 울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 나를 떨게 했던 모든 것을 부끄럽게 하실 것이다. 쉬지말고 기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