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

시인은 자신을 쫓아오는 모든 자들로부터 주께로 피한다. 주께로 피하지 않으면 사자에게 찢기고 물어뜯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인의 노래를 곱씹어보면 시인은 자신을 쫓아오는 무리와 달리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시인 자신도 같은 일을 (악을) 행하는 성향이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에 악에서 탈출하려는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시인은 주하나님께 피해야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고 선을 악으로 갚지 않을 수 있고 원수에게서라도 약탈을 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께 피하지 않으면 원수들과 똑같아 질 것을 안다. 주께 피하지 않으면 시인의 생명은 땅에 짓밟힐 것이고 시인의 영광은 먼지처럼 흩어질 것이다.

시인은 주께 악인들의 무리(회중)에서 나올 수 있도록 법정선언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번 기회에 주께서 만민들을 친히 다스리셔서,  조직적 악이 없는 세상이 되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주께서 열방의 심판자가 되셔서 의로운자 성실한 자들을 악한자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달라고 탄원한다. 시인은 주께서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라고 고백한다.

시인은 주께서 공정한 재판관으로 악인에 대해서는 항상 (변함없이) 심판하시는분이시라고 고백한다. 주께서는 반성하지 않는 악인들에게 사형을 선언하실 것이요, 사형집행을 준비하시는 분이시다. 악인들에게 사형이 선고되는 이유는 악인이 악을 품고 악을 낳기 때문이라고 한다. 악한자들은 자기 무덤을 파는 자들이라고 한다. 악인들은 남을 해치다가 오히려 제발을 찍는 자들이라고 한다.

시인은 공의와 정의를 행하시는 주께 (피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지존하신 주하나님께 찬양한다.

>> 베냐민 사람 구시가 한 말에 대하여 다윗이 탄식하며 주하나님께 불러드린 노래라고 한다. 베냐민 사람 구시에 대하여 아는 바가 1도 없다.아마 구시는 악한 사회상을 다윗 왕에게 탄원을 하는 듯하다. (아니면 압살롬을 피해 도망치는 다윗에게 거짓뉴스를 바탕으로 저주한 시므이처럼, 구스도 다윗에게 나와 잘못된 사실을 근거로 다윗이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지 않는다고 비난했을 수도 있다.) 다윗은 구시가 자신에게 나아와  이스라엘에 만연한 악에 대하여 탄원하는 것을 듣고 (혹은 자신에 대한 저주와 비난을 듣고서), 그의 탄원을 열방에 만연한 악에 대하여 적용하여, 지존하신 주하나님께 노래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다윗 스스로 주님을 닮아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왕이 되고자 하는 다짐을 이 노래에 담았을 수도 있다. 나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곧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지 않고 선한 일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라고 하신다.

>> 주께 피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이다. 특별히 악의 수렁에서 피할 수 있으니 감사의 제목이다. 부나 명예나 건강이나 권력이나 자식이 잘되는 거나 뭐 이런것들만이  감사의 제목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세상기준의 복은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하는 저주의 길이 될 수도 있다. 시인의 고백처럼 주께서 나의 피난처가 되심이 복이다. 공의롭고 정의로우신 주와 함께하면 모든게 복이다. 모든 것이 감사제목이 된다. 범사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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