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8:16-29

터가 무너진 세상에서 주님은 시인에게 손을 내밀어 시인을 건져내셨다. 시인은 원수들이 강하고 시인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시인이 원수들에 의해 망해갈 때, 시인에게는 의지할 주님이 계셨다. 주님은 시인을 넓은 곳으로 (원수들로 에워싸임을 당하지 않는 곳으로) 인도하시고 시인이 기뻐할 수 있도록 시인을 구원해 주셨다.

시인은 자신이 주께 의지하여 주의 구원을 받은 이유를, 시인이 바른 마음으로 정직한 마음으로 산 것에 대한 주님의 상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이 주님의 도를 지키고 악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여전히 주님의 규례를 지키고 주님의 율례를 따른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주님 앞에서 완전하려고, 죄악에 빠지지 않으려 자신을 지켰다고 노래한다. (시인의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시인은 계속해서 주하나님께서 시인의 의를 따라, 곧 시인이 행한대로 갚으시는 분이라고 고백한다. 시인은 자비로운 자에게 주의 자비로움을, 완전한 자에게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는 주님을 노래한다. 깨끗한 자에게 주의 깨끗하심을, 그러나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는 주님이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사람을 두그룹으로 나눈다. 의인과 악인을 곤고한 백성과 교만한 눈으로 나눈다. ‘곤고한 백성’에서 강조되는 것은 ‘백성’이다. 주님의 양이다. 주님의 음성을 아는 양들이다. 의인의 회중에 포함된 자들이다. 교만한 눈은 반대로 사악한 자들이다.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 구원을 받지 못하는 망할 자들이다. 주께서는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갈림길에서 시인으로 하여금 어느길이 의인의 길인지 등불을 켜서 보여주신다. 시인은 주를 의지하여 의인의 길을 향해 달린다. 원수들이 적군들이 쌓아놓은 담을 뛰어넘어 의인의 경주를 한다.

>> 터가 무너진 세상에서 시인이 살아가는 방법은 주님을 의지하는 것 뿐이다. 행한대로 갚으시는 공평하신 주님께 의지하는 것 뿐이다. 주님의 도를 지키고 주님의 규례와 율례를 버리지 말고, 오른쪽에 주님을 좌우명으로 모시고 자비로운 자, 완전한 자, 깨끗한 자가 되라고 하신다. 주님은 행한대로 갚으시는 분이시다. 사악하고 교만한 눈을 가진 자로 살아가면 망한다.

>> 성도의 삶은 장애물경주다. 터가 무너진 세상에 생긴 각종 장애물을 통과해야 한다. 장애물을 통과하기 싫다고 (사악하고 교만한 눈을 가지고) 피하면 반칙이요 실격이다. 경기규칙을 지키면서 달려야 한다. 그물망도 통과해야 하고 쌀포대에 들어가 뛰어야 한다. 힘든 경주다. 그러나 주님이 등불이 되어주신다. 신호등이 되어주신다. 갈 때와 멈출 때를 알려주신다. 주와 함께 하는 이인삼각의 경주를 달리라고 하신다. (그렇다 시인의 자신감은 주님의 말씀에 한 쪽 다리를 묶고 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