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

1-4 시인은 ‘너’라는 청자에게 노래한다. ‘너’는 누구일까? 화자인 시인은 환난 날에 주하나님께서 청자인 너에게 응답하시길, 주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길 노래한다. 주하나님께서 (성소와 시온에서) 너를 도우시고 너를 붙드시길 노래한다. 주하나님께서 너의 제사를 받아주시길 원한다. 너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너의 모든 계획을 이뤄주시기를 원한다.

 5시인은 화자를 ‘우리’라고 부른다. 우리가 ‘너’의 승리로 개선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며, 우리가 주하나님께서 ‘너’의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원한다고 노래한다.

6 시인은 화자를 ‘내가’, 곧 ‘나’로 바꾼다. 나는 주하나님이 그리스도께 구원하는 힘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안다고 노래한다.

7 시인은 화자를 다시 ‘우리’로 바꾼다. 병거와 말을 의지하는 어떤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주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한다. 병거와 말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비틀거리며 쓰러지나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선다고 노래한다. 주하나님께 (우리) 왕을 구원해 달라고, 우리가 부를 때 응답해 달라고 노래한다.

// 다윗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있다. 다윗이 화자이면서 동시에 청자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너’를 ‘나’로 바꿔 불러도 된다. 마찬가지로 ‘너’ 대신 독자인 우리 자신의 이름을 넣고 읽어도 된다. 시인이 화자를 ‘우리’로 바꾸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나누는 자가 시인 한명이 아니라 무리라는 것을 반증한다. 믿음의 공동체, 곧 의인의 회중이라는 것이다. 물론 구원은 회중적 떼창이 아니라 ‘내가’ 불러야 할 (알아야 할) 노래다. 그러나 성도는 개인적 신앙고백으로 구원을 받으나 교회라는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는 것도 잊어버리면 안된다.

>> 오늘 시는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나가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러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삼상 17:45)]  다윗이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이 주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노래하듯, 독자인 ‘내’가 의지해야 할 분도 ‘우리’ 주 하나님이시다. ‘나’의 주 하나님만이 아니라 ‘우리’ 주 하나님이시다.

>> 기도할 때, 개인을 위해 기도할 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