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 내게 상을 베푸시고 / 기름으로 내머리에 바르셨으니 / 내잔이 넘치나이다. /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 인자하심이 / 정녕 나를 따르리니 / 내가 여호와에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 내 영혼을 소생 시키시고 /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 인도하시는 도다.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나와 함께하심이라 /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 나를 안위하시는도다.

대학 때 목이 터져라 불러 재꼈던  5절부터 시작하는 시편23편 찬양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곡조를 다시 듣기 어려웠는데, 오늘 본문을 앞두고 유튜브를 검색하니 하나 나온다. 권희철 작곡 심이레 편곡으로 홍콩엘림교회호산나 찬양대의 노래가 뜬다. 편곡으로 첨가된 부분이 있으나 대학때의 곡조가 반갑기 그지없다.

작곡자는 5절부터 노래를 시작한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 시인은 하나님께서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는다. 예수님은 깨어 있는 종이 복되다 하시며, 주인이 와서 종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주인이 종들에게) 수종들리라 라고 말씀하셨다.(눅12:37) 그리고 잡히시기 전,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주인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수종드는 것을 친히 실천해 보이셨다. 이것이 주님이 차려주시는 밥상이다. 그리고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는 기름부음을 받는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함께하셨듯이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님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소망을 노래한다.

시인은 주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한) 목자라고 노래한다. 선한 목자의 돌봄을 받는 어린양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부족함이 없다.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한다는 의미다. 부귀영화가 주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풍성하다는 뜻도 아니다. 시인은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에 만족한다. 초가삼간도 만족한다는 찬송그대로다. 시인은 창조주 하나님의 음성을 알게 된 것만으로 (영혼이 소생한 것만으로), 그래서 선한 목자가  인도하는 의의 길을 따라갈 수 있기에 만족하는 것이다. 시인은 심지어 선한 목자가 인도하는 길이 사망의 음친한 골짜기라도 닥쳐올 어려움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선한 목자가 함께하셔서 자신을 지켜주시고 위로해 주실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의의 길에 끝에 하나님나라가 있다. 아니 이미 의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시인의 노래를 바울은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라고 적용한다. 이어지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도 바울이 선한 목자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고백이지 수퍼맨이 된다는 적용이 아니다.

>>> 오늘도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하루를 살라고 하신다. 음~~ 모든 성도들이 구해야 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용서’가 아닐까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C5Mj7bQzQ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