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5

1 시인은 주님께 묻는다. 주님! 주님의 집에서 살수 있는, 곧 주님의 거룩한 집에 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2-5a시인은 주님의 답을 듣는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 공의를 실천하는 자, 진실된 말을 하는 자, 남을 헐뜯지 않는 자,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자,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자,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는 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신실하게 행하는 자,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않는 자,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지 않는 자.

5b 시인은 하나님의 집에 입주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고 노래한다.

>> 시인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자격을 부와 명예와 권력이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시인이 노래한 하나님나라에 거하는 자격을 정리하면, 처음 셋은 해야 할 것으로 이웃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직과 공의와 진실이다. 두번째 셋은 하지말아야 할 것으로 이웃에 대한 비방과 악행과 모욕이다. 이어지는 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신의을 지키는) 것이요 마지막 둘은 이웃을 사랑하는 (선을 베풀고 악을 멈추는) 것이다.

>> 시인의 노래처럼 누구나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집에서 살고 싶을 것이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나라에 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의 신의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밖에 달리 증명할 수 없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요한1서의 가르침을 새겨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시편 14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니 어리석은 것이다. 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전도자의 외침을 다시 떠올린다.>

1-6  시인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고 선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니, 곧 주하나님이 되어 세상을 살펴봐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노래한다. 선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노래한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어리석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먹잇감 삼으면서 주하나님을 찾지 않는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이라도 하나님의 부재를 깨닫고 두려워한다. 하나님께서 의인들과 의인들의 자손들과 함께  계심을 깨닫고 두려워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먹잇감 삼고 가난한 자들의 계획을  좌절시켜보지만  주하나님께서 친히 가난한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심을 본다.

7 눈을 들어 어디를 봐도 어리석음 밖에 보이는 것이 없는 제국(세상)의 한 복판에서 시인은 노래를 한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나오기를 바란다. 시인은 주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제국의 포로에서 회복시키시길 바란다. 시인은 주하나님의 백성이 번성하여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길 노래한다.

>> 표제는 다윗의 노래다. 1-6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과 하나님의 아신바된 가난한 자들을 대조시킨다. 하나님을 몰라 두려워 떠는 어리석은 자들과 하나님이 품어주시는 가난한 자들을 본다. 시인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노래하지만, 한편으로 시인은 어리석은 자들의 먹잇감이 된 가난한 자들을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주시는 은혜를 본다. 이것이 구원이다. 이것이 복이다.

>> 7절은 다윗의 노래(1-6절)로 위로 받은 독자의 에필로그를 추가한 것이 아닐까? 시인은  제국(세상)의 포로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구원은 하나님의 다스림 (시온)에서 나온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포로에서 회복됨을 소망한다. 하나님나라 백성들이 번성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길 노래한다.

>> 우리에게도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빠져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세상나라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나라를 꿈꾸라고 하신다.

시편 13

[터가 무너진 세상에서 시인은 주님께 도움을 청했지만 여전히 주님의 응답은 너무 더디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나를 영영 잊으시렵니까? 주님 언제까지 나를 안만나주시렵니까? 나의 영혼은 번민하고 나의 마음은 종일토록 근심합니다. 원수가 나를 괴롭히며 거만떨도록 그냥 내버려두실 겁니까?

주님! 제발 나를 생각하시고 응답해 주십시오. 주님을 기다리다가 피곤에 빠져 사망의 잠을 잘까 두렵습니다. 원수가 승전가를 부를까 두렵습니다. 내가 흔들릴 때 대적들이 좋아하는 꼴을 보시렵니까?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합니다.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합니다. 나는 주님을 찬송합니다. 주님이 내게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 시인에게 주님의 응답이 더뎌도 너무 더디다. 그럴리가! 시인은 깨닫는다. 주님은 성소에서 시인을 만나주시고 하늘에서 시인의 간구를 들으신다(시 11:4). 원수와 더불어 세상 복을 향해 경주하면서 하나님과 데이트를 신청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경주도 이기고 믿음의 경주도 완주하고자 하는) 두 마음을 품고서는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야고보는 교훈한다(약1). 시편 11편 7절에서 시인은  주하나님은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라고 노래했다. 세상과 밀당?을 하던 시인은 진정한 사랑은 주님 한분이심을 깨닫는다. 시인은 마침내 세상 경주를 포기하고 주님의 사랑에 의지해 믿음의 경주를 이어가기로 한다. (언제까지가 아니라) 지금까지 주님께서 함께 달려주시지 않았던가. 주님과의 데이트를 기억하고 기뻐하고 찬양한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노래한다. 은혜란 좋은 것만 가리키지 않는다. 주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가리킨다.

>> 주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은덕을, 은혜를 기억하라고 하신다. 주께서 내게 행하신 모든 일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항상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할 이유다.)

 

 

시편 12

주님! 도와주십시오. 제 주위에는 믿음이 신실한 자는 고사하고 믿을 만한 사람도 하나 없습니다. 대신 거짓말이나하고 간사한 말을 하는  표리부동한 사람들만 있습니다. 주님! 저들의 간계를 막아주시고 저들의 교만한 혀에 재갈을 물려 주십시오. 저들은 혀를 함부로 놀립니다. 자기 맘대로 혀를 놀립니다. 주님도 자신들을 막지 못한다고 떠벌이는 놈들입니다.

주님은 무식유죄, 무전유죄로 (유식무죄 유전무죄로) 신음하는 우리  탄식을 들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나라에 두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 편에 서신다는 주님의 말씀은 흙도가니에서 일곱번 단련한 순은보다도 더 진실되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 우리를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십시오. 주위에 우글거리는 비열한 사람들과  설쳐대는 악인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 시인은 터가 무너진 세상에서 탄식하며 주님께 도움을 청한다. 공의와 정의가 법과 질서가 무너진 세상에서 탄식하며 주님의 약속/말씀을 기억한다. (오늘 시도 다윗이 낮은음으로 부른 노래라는표제가 붙어있다.) 다윗을 둘러싸고 있는 불경건하고 불충실한 자들은 이방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일 것이다. 한마디로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오늘날 교회가 처한 상황이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들어보라. 거짓말하고, 표리부동하고,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갑질 하는 사람들 가운데 소위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뉴스가 사방에서 (방송마다) 들려온다. 심지어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복이라고 혀를 놀리는 자들의 노래가 교회 안에서도 들려온다. 사면초가에 자중지란이다.

>> 시인은 주님께 도움을 청한다. 하나님께서 다스려 달라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겠다고.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겠다고. 경건한 자들, 충실한 자들이 살곳은 하나님나라다.

시편 11

난 주하나님께 피한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새가 되어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산처럼 높아진 세상 이론을 따르라는 악인의 속삭임이 들린다. 그러나 악인의 속내는 사냥꾼이 숨어서 새에게 활을 겨누고 화살을 날리듯 마음이 바른 자를 사냥하려는 것이다. 아! 법과 질서가 (공의와 정의가) 무너지면 마음이 바른 사람은 어떻게 살까?

난 성전에 계시고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세상을 지켜보시는 주하나님께 피한다. (시인이 도움을 구하기 위해 눈을 들어야 곳은 산들이 아니라 주하나님이다.) 주하나님께서는 의인을 돌보시고, 악인과 포악을 일삼는 자들을 미워하신다. 마음이 바른 자를 사냥하려는 악인에게 주님이 올무를 던지신다. 주님은 올무에 걸린 악인을  불과 유황과 (겨를) 태우는 바람이 있는 나락으로 던지신다. 그러나 의로우신 주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주신다.

>> 그냥 다윗의 노래라는 표제가 달려있다. 시인이 잘하는 것은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대로 정직하게, 곧 의롭고 선하게 살 수 있는 곳은 하나님나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 밖에는 없다고 노래한다. 세상에서 악인은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무시하고 의로운자에게 화살을 날리지만,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은 창조질서에 따라 의인들을 돌보시고, 악인을 올무로 가두신다. 시인은 떳떳한 자가 의로우신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고  노래한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보는 (만나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사람의 꾀를 따르지 않음을 뜻한다.

>> 마음이 정직하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지은신 제품설명서대로 살아가는 순종을 뜻한다. 정직의 반대 사악함은 창조질서를 벗어나 우로나 좌로 치우침을 뜻한다. 결국 마음이 정직한 자는 바르게 행하는 자, 옳게 행하는 자, 다시말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다. 의인이다. 내가 주께 피하는 방법도 주앞에 떳떳한 삶을 사는 것 밖에 없다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