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우리가 (바울 일행이, 혹은 사역자들이) 주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주를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앞에서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아 사람의 지혜와 말이 아닌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말한다고 썼다. 바울은 이제 고린도 성도들을 진단한다.
바울은 고린도 형제들이 마땅히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말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고린도 형제들이 여전히 육신에 속한 자요, 그리스도 품에 있는 갓난아기 같다고 말한다. 바울이 처음 복음을 전할 때와 마찬가지로 신령한 젖은 빨고 있으나 신령한 밥은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 증거가 고린도 교회에 있는 시기와 분쟁이 그 증거라고 말한다. 시기와 분쟁이 여전히 육신에 속해 사람을 따라 행한다는 증거라고 한다.
십자가의 도는 같은 말/마음/뜻으로 온전히 합하는 것인데 바울파 아볼로파로 나뉘었으니 고리도교회가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바울은 심고 물을 준 자신이나 아볼로는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믿음이)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각기 자기의 행한대로 상을 받겠지만 하나님의 동역자에 불과하고 자신들이 심고 물을 준 성도들은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에 속한 것이라고 분명히 한다. 자신들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임을 분명히 한다.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심었고, 당연히 아볼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물을 주었다고 가르친다. 앞으로 사역할 사람도 바울과 아볼로의 사역 위에 어떻게 세울까 조심하라고 명령한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의 터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힌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위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건축자라고 한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집을 세우는 사람들인데 사람들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세워도 결국에는 다 태워질 것이라고 하신다. 태워지고 남는 것이 성도들의 공적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는다고 한다. 공적이 불타도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운 공적이 있었다면 불 가운데서라도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어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기 같다면 여전히 육신에 속한 자라고 한다. 고린도 교회에 있는 분쟁이 여전히 육신에 속한 증거라고 한다.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에게 무엇이든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바울은 개인이 아니라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고린도교회(공동체)에도 같은 적용을 한다.
>> 성도는, 사역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세우는 자들이다. 금/은/보석/나무/풀/짚 등 무엇으로 세우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우는 자들이다. 그 무엇으로 세워도 심판의 불을 견딜 수 없다. 오직 남는 것은 ‘터’인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따라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남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는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은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골 2:6,7 현대인의 성경) 라고 가르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야 한다. 사역자라면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도록 세워야 한다. 금/은/보석도 자랑할 것이 못되고 나무/풀/짚이라도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된다. ‘터’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