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9:1-8 읽기

[히스기야가 종창에 걸려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15년 더 살게 되었고 하나님은 해시계가 뒤로 십도 물러서는 징조까지 보여주셨다. 이런 은혜가 또 있을까?]

1 – 2 그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 치유 소식을 듣고 편지와 함께 예물을 보내왔다.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했다. 기쁜 나머지 사신들에게 보물창고와 무기고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히스기야는 나라에 관계된 모든 정보를 바벨론 사자들에게 넘겨주었다.

3 – 4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나아와 바벨론 사자들에 관해 물었다. 히스기야는 사자들이 바벨론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신흥 강국 바벨론도 앗수르가 버거워 유다와 동맹을 맺기위해 사신을 보내왔었나보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에서 바벨론 사신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물었다. 히스기야는 (동맹을 맺기 위해) 모든 정보를 다 주었다고 대답했다. 무조건적 지소미야를 체결했다고 해야 하나…

5 – 7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만군의 주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날이 이르면 유다의 모든 소유가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을 것이라는 주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심지어 유다 자손 중에서 몇이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좋다고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성취된다고) 대답한다. 적어도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평안과 견고할 것이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  큰 은혜를 입은 히스기야지만 앗수르를 물리친 것도 애굽의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주하나님의 영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잊었나보다. 그래서 신흥 강국 바벨론이 사자를 보내와 동맹을 맺고 앗수르에 대항하자는 편지에 얼씨구나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바벨론과의 무조건적 지소미야에 응하고 말았다. 하나님이 아니라 신흥강국 바벨론과 동맹을 맺으면 된다는 생각이 히스기야에게 들어온 순간 유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지적을 받고서야 히스기야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될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기껏한다는 말이 그래도 당대에는 평안과 견고함을 누릴 수 있다나. ㅠㅠ

>> 지난 은혜에 겨운 당대의 안일함이 한국교회에도 비극이다. 하나님대신 돈과 권력과 섹스를 탐하는 세상과 동행하는 한국교회의 운명은 정해졌다고 본다. 이미 무너지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세대까지는 한국교회가 평안하고 견고하니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ㅠㅠ 지금이 돌이킬 적기다. 그러나 은혜 잊은 교만한 한국교회의 몰락은 좋다고 (하나님의 선한 뜻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시급한 것은 돌이킴보다 나의(우리) 자녀들이 종교소수자여도 살아 남도록 어떻게 신앙의 유산을 남기느냐라는 고민이다.

이사야 38:1-22 읽기

1 – 3 그때에 (앗수르 진영이 진멸되고 산헤립이 회군하여 니느웨로 돌아간 후?)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죽고 살지 못할 것이라는 주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을 향하고 주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께 자신의 진실과 충성을, 무엇보다고 선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통곡하며 기도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듣지만 히스기야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갔음을 주목하자)

4 – 8 주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신다. 히스기야에게 가서 주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셔서 히스기야로 십오년을 더 살게 해주시며, 앗수르로부터 건져주시고 예루살렘 성을 보호해 주신다고 전하라고 하신다. 이사야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로 해시계의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갈 것이라고 말했고 정말 해의 그림자가 십도 물러났다.

9 – 22유다왕 히스기야는 다음과 같은 글로 병들었다가 병이 나은 사건을 기록한다. [나는 나의 중년에 죽게 되었다. 나는 다시는 주하나님을 뵙지 못할 것이다. 주하나님만 아니라 세상 사람도 보지 못하는 곳으로 갈 것이다. 이땅에서 장막을 걷게 되었으니 직공이 베를 걷어 둘둘 말아버리것 처럼 주께서 나를 베틀에서 끊으실 것이다. 생명이 하루가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새들처럼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주님을 앙망했다. 주하나님 내가 죽음의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어주십시오 라고 간구한다. (그러나) 말씀하신 것을 친히 이루시는 주께서 나로 죽고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으니 내가 무슨 말을 더 할까? 내 영혼이 고통스럽고 내 몸은 죽어갑니다. 주님께 생명이 있고 내 생명도 주님께 달렸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원하시면 나를 고쳐주시고 나를 살려주옵소서 라고 간구했다. 내가 (큰 고통가운데 ) 죽어도 주께서 평안을 주신다는 것을 압니다. 주께서는 이미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음을 압니다. 내 모든 죄를 용서하셔서 주의 등 뒤로 던지신 것을 압니다. 사망은 주께 감사하지 못하고 찬양하지 못하고 죽음은 주의 신실함을 바라지 못하지만, 생명이 있는 자는 저와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하심을 후손에게 전하게 하옵소서. 주하나님께서 나의 구원이십니다. 목숨이 있는 한 주하나님의 성전에서 기타를 치며 나의 구원이신 주님을 노래하겠습니다. 이사야는 나에게 한 뭉치 무화과를 가져다가 종기가 난 상처에 붙이면 내가 나을 것이라고 처방하였고 나는 주하나님의 전에 올라갈 징조가 무엇인지 이사야에게 물었다.]

>> 히스기야는 병이 들자 하나님 앞에 선다. 주목할 점은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대답하신다. 9-22절은 1-8절의 사건 요약의 배경이 되는 히스기야 왕의 간구다. 히스기야의 간구는 단순히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히스기야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임을 알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알았다. 사람은 누구나 죽고 살지 못할 인생을 남겨두고 있다. 히스기야는 그러나 생명이 신실하신 주께 있음을 후대에 전하고 싶어했다. 목숨이 있는 한 주님이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노래하고 싶어했다. 하나님께서는 15년이라는 구체적인 년 수로 히스기야가 구원의 하나님을 더 찬양하도록 하셨다. (히스기야에게 그냥 더 살도록 하신 것이 아니다.) 성전에 올라가, 곧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셨다. 나에게 적용한다면 남은 삶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하신다.

이사야 37:21-38 읽기

21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응답하신다. 환상 중에 대답하실 수 있으시나 듣고 보고 말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응답하심으로 사사로운 답이 아닌 공적인 신탁이심을 분명히 밝히신다.
22 – 25 주하나님께서는 먼저 산헤립에 대해 말씀하신다. 시온과 예루살렘, 곧 주의 백성이 산헤립을 멸시하고 비웃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산헤립이 훼방하고 능욕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주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산헤립이 부하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전달한 편지를 언급하신다.
26 – 29 (그러나) 하나님은 산헤립이 행한 모든 일은 태초부터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고 선포하신다. 산헤립이 이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책망하시고, 산헤립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지나치게 분노했다고 꾸짖으신다. 이렇게 오만해진 산헤립의 코를 꿰고 재갈을 물리시겠다고 하신다.
30 – 32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증거를 일러준다. 첫 두해는 스스로 난 것을 먹겠지만 세째해부터는 농사한 것을 거둬 먹을 것이라고 하신다. 세째해부터는 일상이 회복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유다 족속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하신다. (시1편,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연상된다.) 이렇게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온다고 하신다. 주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실 것이라고 하신다.
33 – 35 주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 산헤립의 예루살렘 공격 계획을 무력화 시키신다고 하신다. 아니 산헤립이 예루살렘 출정자체를 돌이켜 물러가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조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다윗과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실 것이다.
36 – 38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다. 하나님의 사자가 밤중에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의 군사를 쳤다. 산헤립은 니느웨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산헤립이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패전의 이유를 묻지만 목석 우상이 무슨 대답을 하랴. 앗수르 왕은 늙은 수사자처럼 젊은 사자들(아들들)에게 자신만의 신전(세상)에서 죽임을 당하고 만다.

>> 하나님의 법이 시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불이 시온에, 하나님의 풀무가 예루살렘에 있다. 하나님께로 피한 자가 시온에서,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하나님의 법과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하나님의 불과 풀무의 연단에서 능히 살아 남는다. 하나님나라의 삶이다.

>> 창조주 하나님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면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남는다 하여도 하나님의 불과 풀무에서는 살아 남을 수 없다. 이빨 빠진 호랑이로 가죽을  남길지언정 생명책에 이름을 올릴 수는 없다. ㅠㅠ

이사야 37:1-20 읽기

1 – 5 엘리아김 셉나 요아의 보고를 받은 히스기야 왕은 자기도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성전으로 갔다. 히스기야는 굵은 베옷을 입은 엘리아김과 셉나와 제사장 대표를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냈다. 그들은 이사야에게 히스기야 왕의 말을 전한다. 그들은 지금 히스기야가 산고의 진통을 느끼고 있지만 해산할 힘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이사야에게 전한다.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하나님께서도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니, 랍사게가 앗수르 왕을 업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했으니, 하나님께서 랍사게를 심판하시겠지만, 살아 남을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이사야에게 전했다. 그들은 히스기야의 말을 전하기 위해 이사야에게 갔다.

6 – 7이사야는 히스기야가 보낸 지도자들에게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앗수르 왕의 종들이 하나님을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영이 앗수르 왕의 종들 가운데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역사해, 랍사게가 소문을 듣고 앗수르로 돌아가 그곳에서 죽을 것이라고 하신다.

8 – 13앗수르 왕이 라기스를 떠나 앗수르로 돌아갔다는 소문에 랍사게도 회군하여 앗수르로 돌아가다가 립나와 싸우고 있던 앗수르 왕을 만났다.  이때 앗수르 왕은 이디오피아의 디르하가 왕이 히스기야를 도와 자기를 치러온다는 소문에 히스기야에게 ‘네가 의지하는 너희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앗시리아 손에 넘어가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라고 하는 말에 속지 말라고 편지를 보냈다. 앗수르 왕이 열국에게 행한 일을 보고도 너희가 구원을 받겠느냐고 편지에 구구절절이 썼다.

14 – 20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을 편지를 받고 이번에는 (이사야의 하나님께가 아니라) 직접 성전에 올라가 앗수르 왕이 보낸 편지를 주하나님 앞에 펴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유일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귀를 기울여 들어주십시오. 눈을 뜨고 봐 주십시오. 앗수르 왕 산헤립이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어보십시오. 주하나님, 앗수르가 열국을 황폐하게 했고 열국의 신들을 불을 던졌지만 그것들은 신이 아니라 우상이지 않습니까? 목석으로 만든 우상이니 당연히 멸망당했겠지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 주님은 우리를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셔서, 천하 만국이 주만이 주하나님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 히스기야는 열방의 신들은 목석 우상이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기도한다.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에 귀로 들으시고 눈으로 보시고, 구체적으로 앗수르 왕 산헤립의 편지을 읽으신다. 생명이 없는 목석 우상과 다르다. 히스기야의 소망은 바로 이 고백에 바탕을 둔다. 히스기야는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처음에는 ‘당신의’ (이사야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지만 (4절), 드디어 히스기야의 자신의 하나님으로 만난다 (14절, 이사야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의 전에 나간다). 살아계셔서 듣고 보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을 ‘너의’ 하나님이나 ‘목석 우상’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신다. 지금도 살아계시는 예수의 말씀에 순종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세상으로 하여금 ‘나의’ 하나님, ‘우리’ 하나님을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알게하는 첩경이라고 하신다.

이사야 36:1-22 읽기

1 – 4 히스기야 왕 십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쳐서 취했다. 산헤립 왕은 라기스에서 대장 랍사게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히스기야 왕에게 최후통첩을 하라고 명했다. 예루살렘에서는 힐기야의 아들 왕궁을 맡고 있던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랍사게를 맞으로 나갔다. 랍사게는 엘리아김 셉나 요아에게 앗수르 왕 산헤립의 최후통첩을 전한다.

4 – 10 (랍스게는) 히스기야야 네가 뭘 믿고 까부느냐? 앗수르를 대항해 싸울 계략과 용맹이 있다고 말만하지 말고 믿는 구석이 무엇인지 말해봐라. 애굽을 믿느냐?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다. 애굽을 의지하다간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을 것이다. 애굽왕 바로가 그 꼴이 아니더냐? 혹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한다고 말할 셈이냐? 주하나님이라 해봤자 유다와 예루살렘의 지역 신이 아니냐? 병마 이천필을 너희에게 주고 싸워도, 차포 다 떼고 싸워도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을 이기지 못한다. (라고 엘리아김 셉나 요아에게 도발한다. 랍스게는 도발을 이어간다.) 유다는 앗수르의 작은 지역 총독 하나도 물리칠 여력이 없다. 애굽을 믿고 애굽에게 도움을 청해도 소용없다.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멸하는 것이 주하나님의 뜻이다. 주하나님께서 내게 예루살렘에 올라가 그 당을 쳐서 멸하라고 하셨다.

11 – 13 엘리아김 셉나 요아가 랍사게에게 아람어로 얘기해 달라고 청한다. 성위에 있는 백성들이 랍사게가 떠드는 소리를 모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랍사게는 한술 더 뜬다. 최후통첩은 히스기야 왕에게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 성 모두에게 하는 말이라고 답하여 더 큰 소리로 유다 방언으로 최후통첩을 전한다.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14 – 20앗수르 왕의 말씀에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미혹되지 말아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구원하지 못한다.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주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려는 것도 따르지 말아라.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아라. 앗수르 왕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게 항복하고 내게 나아오라. 그러면 너희가 먹고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있는 땅으로 이주시켜 주겠다. 다시 말하지만 히스기야가 주하나님이 너희를 건지시리라 하는 말에 속지 말아라. 열국 어는 신도 자기 나라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신이 없다. 하물며 주하나님이 능히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지겠느냐?

21 – 22엘리아김, 셉나, 요아, 그리고 성위에서 랍사게의 말을 듣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잠잠했다. 히스기야 왕이 랍사게의 도발에 대꾸하지 말라고 명하였기 때문이었다. 엘리아김과 셉나와 요아는 다만 자기 옷을찢고 히스기야에게 돌아와서 랍사게의 말을 전했을 뿐이었다.

>> 골리앗의 도발에 다윗은 의분을 가지고 맞섰다.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끽소리도 못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랍사게의 도발에 엘리아김, 셉나, 요아는 끽소리도 못했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백성들이 알아 듣지 못하도록 아람 방언으로 얘기해 달라는 게 다였다. 세명은 랍사개에게 대꾸하지 말라는 히스기야의 명에 순종했지만 의분에 옷을 찢어야 했다. 세상이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라고 조롱하는 지금, 교회는 옷을 찢어야 할 때다.  교회 지도자들은 잠잠해야 한다. 목회자를 포함한 모든 성도들은 더 겸손하고 더 겸비해야 한다. 주님이 세상을 이기신 방법을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