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0:18-33 읽기

18-19 그 러 나 (백성 입장에서는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으니 잠잠하고 신뢰해야 한다.) 주하나님편에서는 기다리신다. 은혜를 베풀려고 일어나시려고 엉덩이를 들썩이신다. 긍휼을 베풀려고 하신다. 복있는 사람은 정의의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라고 하신다. 시온에 (하나님 법이 선포되는 곳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하나님 말씀이 실천되는 곳에) 거주하는 백성이 복이 있다. 통곡이 기도가 되고 주하나님은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응답하신다.

20 -24 주께서 백성에거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신다. 선지자들이 더 이상 숨지 않고 드러내고 평안이 아니라 환난과 고생을 가르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들이 스승이 되어 가르치는 길이 우로나 좌로 치우치지 않은 바른 길이라고 하신다. 스승된 선지자들이 백성에게 사람이 조각한 우상은 부정한 것이니 던져버리라고 가르칠 것이라고 하신다. 농사도 목축도  (우상에게 빌어서가  아니라) 비를 주시는 하나님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신다고 가르친다.

25-26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지는 때는 아마도 하나님께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무너뜨리시는 날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고산과 준령마다 (높아진 모든 것에도)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하수같이 (개울과 시냇물이 되어) 흐를 것이라고 하시는 듯.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은 무너뜨리시지만 그날에 주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는 싸매시고 고쳐주신다. 달빛이 햇빛처럼 빛나고 햇빛은 일곱배나 밝게 빛날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함을 뜻할 것이다.

27-33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열방에게는) 주하나님께서 진노로 분노로 맹렬한 불로 오신다. 열방은(31절까지 읽으면 구체적으로 앗수르를 지칭한다.) 핑계치 못할 것이다. 한편으로 너희가 (유다백성은)  거룩한 절기, 아마도 유월절을 지키듯이 (구원의 하나님으로) 노래하며 피리불며 즐거워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주하나님의 심판의 목소리에 앗수르는 낙담할 수밖에 없고, 주하나님의 회초리를 맞을 수밖에 없다. 주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로 (바벨론으로) 앗수르를 치시고, 도벳 (무덤?)에서 불태우실 것이라고 하신다. 유다가 할 수 있는 일은 소고치며 수금을 타며 하나님의 경영을 찬송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 주께서 주시는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는 것은 성도들에게 기본이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하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주께서 주시는 환난과 고생은 피할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이니 따라야 한다.

이사야 30:1-17 읽기

1-7주하나님께서 패역한 자식들, 곧 불순종의 백성에게 화가 있다고 선포하신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계교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지 않고 죄에 죄를 더한다고 지적하신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대신 바로 왕에게, 곧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했다고 책망하신다. (그러나) 계획은 사람이 할지라도 일을 경영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유다가) 의지하는 바로가 이스라엘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한 이스라엘이 수욕을 당할 것이라고 하신다. 사신을 서로 보내 동맹을 맺으나 그결과는 도움이 되거나 유익함이 아니라 수치와 수욕이라고 하신다. 네겝 짐승에 관한 경고라고 하신다. 사신들이 조공물을 실은 나귀와 낙타에 대한 경고하고 해야하나… 하여간 사신들이 조공물 나귀와 낙타에 싣고 사자떼와 독사와 불뱀이 나오는 광야를 지나 무익한 민족 (애굽)으로 갔지만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다고 하신다. 애굽도 여리고성에서 가만히 앉아 구원을 바랐던 라합과 같은 처지라고 하신다.

8-14 주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백성앞에서 하나님 말씀을 써서 (명문화해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고 명하신다. 패역한 백성들이 언제 말을 뒤집을지 모른다고 하신다. 주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자식들이라고 하신다. 하나님 말씀대신 백성이 듣기 좋은 부드러운 말, 곧 거짓된 말을 해달라고 선지장에게 요구하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바른 길을 버리고 첩경에서 돌이키고 아예 하나님을 떠나시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손해되는 일과 불순종의 일을 의지한다고 책망하신다. 이 불순종의 죄악이 곧 무너질 담벼락 같다고 하신다. 결국 유다의 운명은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다고 하신다. 산산조각이 나서 불씨나 물을 담을 수 있는 허드렛 조각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15-17 주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그럼에도 백성은 이것을 원치 않는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도망하겠다고  빠른 짐승을 타고 피난 길을 떠나겠지만 더  빠른 대적에게 따라 잡힐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이스라엘은 일당 천으로 대적을 물리쳤었는데, 불순종한 지금은 대적 한사람에 이스라엘 백성 천명이 도망갈 정도요, 대적이 다섯이면 이스라엘 전체가 다 도망할 정도로 역전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남은 자라곤 버려진 패전기와 같을 것이라고 하신다.

>> 여리고의 라합같이  잠잠히 신뢰해야 한다. 바둥댄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다. 감히 말할 수 없었는데 한국교회는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다시 힘을 얻을 것이다. 좀 더 극단적을 말하면 폭삭 망해야 구원을 받고 힘을 얻을 것이다.

이사야 29:15-24 읽기

[주하나님께서 기이하고 기이하고 기이한 일로 세상을 경영하시는데 지도자들은 말씀을 봉해버리고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떠났다. 하나님 대신 사람의 계명만 가르치고 배운다.]

15-16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자들은 자기의 계획을 주하나님께 깊이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화가 있다고 한다. 이들은 어둠가운데 행하는 자들이다.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고 심히 패역하게 행한다. 피조물인 주제에 창조주의 자리를 탐하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17-21 하나님만이 레바논의 숲을 기름진 밭으로, 기름진 밭을 숲으로 바꾸실 수 있는 창조주로 드러날 때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은) 귀머거리로 듣게 하시고 맹인으로 보게 하실 것이다. 겸손한 (업압받고 비천하고 온순한) 자에게 주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주시고, 가난한 (궁핍한) 자로 하여금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하신다. 그러나 의인을 억울하게 하던 강포한 자, 오만한 자,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는 도망쳐 사라지거나 가지치기를 당해 끊어져 버린다.

22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주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부르며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다. 두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고 하신다. 원망하던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교훈을 받으라고 하신다.

>> 한국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났다. 하나님의 경영대신 자기 계획을 밀어부친다. 피조물인 주제에 창조주의 자리를 탐한다. 전광훈이 같은 자들의 행색이 이렇다. 예루살렘이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부르짖었던 거짓 선지자와 다를게 없다. (물론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바벨론은 폭삭망하고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자중에는 남은 자가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남은 자만 (자의로 ‘남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남은 자’만)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음~~, 업압받고 비천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이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 한다는 말씀을 새겨야 한다. 교회는 겸손해져야 한다. 업압받고 비천하고 가난하고 궁핍해져야 한다. 마음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초대교회가 겸손했다. 1세기 로마교회가 겸손했다. 업압받고 비천하고 가난하고 궁핍했다. 지하에 숨어들어 예배했다. 한국교회는 지하에 숨어들어야 할 때다. 모이는 지 모르게 예배할 때다. 화려한 교회당은 비워두고 삶의 현장에서 세상은 교회가 예배드리는 지도 모르게 예배할 때다. 교회도 자기 상을 이미 받은 바리새인처럼 살아가면 어쩌란 말이냐. ㅠㅠ

이사야 29:1-14 읽기

1-4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아리엘은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인 모양이다. 해마다 절기가 돌아온다는 것을 보아 아리엘은 제사와 관련된 이름이다. 주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괴롭게 하시고 슬퍼하고 신음하게 하시며 아리엘로 삼으신다고 하신다. 현대인의 성경은 아리엘을 피로 얼룩진 제단이라고 풀어서 길게 번역한다. 그렇다면 제단이 제물의 피로 얼룩지듯 예루살렘도 피로 얼룩질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주하나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을 치신다고 하신다. (영화를자랑하던) 예루살렘이 낮아져서 티끌 같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도 먼지 속에서 (비록 유령의 소리같을지라도) 예루살렘의 소리가 들려 온다고 하신다. 그러나

5-8 예루살렘을 피로 얼룩지게 한 대적은 먼지보다 작은 먼지 같을 것이라고 하신다. 순식간에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 만군의 주하나님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신다. 아리엘, 곧 시온을 치는 열방의 무리는 일장춘몽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

9-12 (예루살렘이 아리엘이 되는 것이 주님의 경영임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놀라고 놀라라 .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라고 비아냥 거리듯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이 안전한 곳이 아니라 아리엘 같이 되는 것은 놀랄 일이며, 차마 볼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지도자들이 횡설수설하는 것이 포도주나 독주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 잠들게 하는 영을 부으셨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 선지자와 선견자, 곧 (영적) 지도자들의 눈을 멀게 하셨다고 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다 못해 봉한 책처럼 되었다고 하신다. 지도자들은 봉한 책이니 읽을 수 없다고 할 것이요, 백성은 글을 모르니 읽을 수 없다고 할 것이다.

13-14하나님의 말씀이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백성이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고 공경한다고 말은 하나 실상 백성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났다고 지적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사람의 계명에 따른 관습/전통으로만 굳어졌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에게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시겠다고 하신다. 세상의 지혜, 세상의 명철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겠다고 하신다.

>> 사람의 계명을 따라 (말로)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나 다 부질 없는 짓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지도자들이 교회전통만 주창하고 성경책은 봉해버렸다는 느낌을 받는다. 성도들도 말씀을 읽지 않고 소경이 된 목회자들의 횡설수설에 우왕좌왕한다. 목회자도 성도들도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은 한다. 그러나 목회자가 봉한 책을 열어 읽지 않고, 성도들이 성경책이 어렵다고 덮어두어서는 하나님을 바르게 공경할수 없다. ㅠㅠ 성서(성경)은 누구나 읽어야 하고 사람의 계명으로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달아야 한다. 전통에 따른 해석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에 하시는 말씀으로 깨달아야 한다. 영적 비몽사몽에서 깨어야 한다. 보혜사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이사야 28:14-29 읽기

14 주하나님께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오만한 자들에게 (교만한 지도자들, 술취해 횡설수설하는 지도자들, 백성들 발이 꼬여 넘어지게 하는 지도자들) 말씀하신다.

15-16 오만한 지도자들이 ‘죽어 지옥가면 어때’라고 큰소리 쳤다고 지적하신다. 이들은 죽음이 자신들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거짓’을 피난처로 삼은 자들이라고 하신다. 오히려 피난처되시는 주하나님을 숨겨버렸다고 책망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이런 오만한 지도자들 대신 ‘한 돌’을 시온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새로운 지도자(기초)로 삼을 것이라고 하신다. 시험을(검사를) 통해 견고함을 인증받은 견고한 (올곧은) 기초돌(지도자)라고 하신다. 이 지도자를 믿는 자는 다급할 이유가 없다고 하신다.

17-20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신다고 하신다. 거짓을 피난처로 삼은 자들을 소탕하신다고 하신다. ‘지옥가면 어때’라고 큰소리 치던 자들이 죽음을 맛보게  하신다. 재앙이 밀려올 때에 피하지 못하고 밟힐 것이라고 하신다. 여기저기서 죽음의 소식을 받을 것을 것이라고 하신다. 죽음의 소식을 듣는 것이 두려움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침대에 편히 눕지 못하고 평안히 이불덥고 자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21-23 주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시만 한편으로는 저주의 하나님이시다. 정의와 공의가 무너진 곳에 진노하신다. 정의와 공의로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비상하고 기이하게 여겨질 것이라고 하신다. 따라서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신다. 오만이 지나치면 용서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염려하신다. 이사야는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성하신 만군의 주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니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사야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한다. 그것도 자세히 들으라고 명령한다.

24-29 파종하려는 자는 기경만 반복하지 않는다. 기경이 끝났으면 씨를 줄줄이 정한곳에 심는다. 농부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적당한 방법을 배운자들이다. (이사야는 이것을 하나님이 농부에게 자연섭리를 통해 보여주시고 가르시셨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고 수확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농부는 수확한다. 탈곡은 하되 곡식(알곡)은 부수지 않는다. 이 모든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다. 하나님의 경영은 기묘하며 하나님의 지혜는 광대하시다.

>>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하나님나라의 기초돌이다. 오만한 자들이 설곳은 없다. 정의와 공의를  믿어야 한다. 곧 정의와 공의를 충실하게 (성실하게)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이 농부되셔서 성도들을 세상에 심으시고 자라게 하시고 열매맺어 알곡이 되게 하신다. 그날에 (이땅을 살아가면서, 성도들이 사는 날동안), 곧 탈곡하시는 날에 도리깨, 작대기, 막대기로 떨리며, 수렛바퀴와 말굽에 밟힌다고 해도 알곡은 부서지지 않는다. 세상에서는 성도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해야 할 이유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미 이기셨기 때문이다. 오만한 자의 거짓 평안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평안을 누리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