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이야기로 잠시 방향을 튼다. 유다는 동생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 때 주역이었다. 아마도 이때문에 유다는 아비 야곱도 멀리하고 형제들도 멀리하고 아둘람으로 내려가서 히라와 가까이 지냈을 것이다. 유다는 아둘람에서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아내로 삼았다. (야곱이 유다의 결혼에 관한 반응은 기록에 없다.) 유다는 가나안 여자에게서 엘이라는 첫아들을 낳고 둘째 오난 세째 셀라를 낳았다. 세째를 낳을 때 유다는 거십에 있었다고 창세기 저자는 기록하고 있는데 거십이 어딘지는확실치 않다.
유다는 장자 엘을 위해 다말이라는 며느리를 얻었다. 주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엘을 주하나님이 죽이셨다. (엘의 악이 무엇인지 기록에 없다.) 유다는 오난에게 형수를 취해서 동생의 본분을 다하라고 했다. 오난은 다말을 취했으나 형의 대를 잇게해 주지 않으려고 땅에 설정하고 말았다. 주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오난의 일도 악했다. 주하나님은 오난도 죽이셨다. 유다는 세째 셀라도 죽을까하여 셀라에게는 다말을 취하라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말에게 수절을 명한 후에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라며 친정을 쫓아보냈다.
얼마 후에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 곧 유다의 아내가 죽었다. 유다는 상처의 아픔을 딛고자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 양털을 깎기로 했다.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유다가 딤나에 왔다고 알려 주었다. 다말은 셀라가 장성했음에도 셀라에게 자신을 아내로 주지 않은 유다를 과부 옷을 벗고 창녀의 행색으로 꼬시기로 했다. 유다는 다말을 며느린 줄 몰라보고 염소 새끼 한마리에 몸을 사기로 했다. 다말은 염소 새끼를 받을 때까지 유다의 끈 달린 도장과 지팡이를 담보로 맡기라고 하였고 유다는 그렇게 했다. 다말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 하였다. 다말은 다시 창녀행색을 벗어버리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었다. 유다가 친구 아둘람 사람에게 염소 새끼 한마리를 주고 끈달린 인장과 지팡이를 찾아오라고 부탁하였지만 그는 창녀를 찾지 못하고 돌아오고 만다. 오히려 그지역에는 창녀가 없다는 소식만 가지고 왔다. 유다는염소 새끼를 주려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부끄러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석달쯤 지나 (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다말의 임신 소식을 알렸다. 다말이 행음하였으니 다말을 끌어내어 화형을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다말은 끈달린 도장과 지팡이의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했다고 유다에게 알렸다. 유다는 자신의 도장과 지팡이를 알아보고 다말이 자신보다 옳고 셀라에게 다말을 주지 않은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물론 유다는 다시는 다말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다말은 쌍둥이를 낳았다. 손이 먼저 나오던 아기가 도로 들어가고 뒤따르던 아기가 먼저 태어났다. 베레스라고 불렀다. 먼저 나오려던 아이의 이름은 세라라고 불렀다.
>> 모세의 율법을 소급적용하면서 본문을 읽어서는 안된다. 유다가 아비 야곱을 떠나 아둘람에서 독립한 것도, 가나안 여자와 결혼한 것도, 엘이 악하고, 오난이 형수취수를 하지 않은 것, 유다가 성매매 한 것, 유다가 며느리와 동침한 것, 이 모든 것이 율법에 반한 악한 행동이지만 율법이 주어지기 전이었다. 다시말해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도 옳고 그름은 있었다는 뜻이다. (율법은 애굽 노예 생활을 통하여 완전히 무너진 합리적인 상식을 다시 세우는 하나님의 열심이 아닐까 한다.) 유다 집안에서 벌어진 악행들은 율법에서 하지 말라고 해서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결국 유다는 다말이 자신보다 옳다라고 인정한다. 다말이 의롭다고, 곧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더 합당하게 행동했다고 인정한다. 세상을 향해 성경을 손에 들고 핏대를 세울 필요가 없다.
>> 예수께서는 합리적이고 마땅한 행동에 사랑을 더하셔서 하나님나라의 법을 완성하셨다. 이 사랑의 법을 적용하는 것이 항상 문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순종하는 힘을 주시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