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1:1-16 읽기

만 이년 후에, 2 years later. 바로가 꿈을 꾸었다. 아름답고 살진 입곱 암소가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암소에게 잡혀 먹는 꿈이었다. 꿈에 (놀란) 바로는 바로 깨었다가 다시 잠이들어 연이어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가늘고 동품에 마른 일곱이삭에게 먹히는 꿈이었다. 바로는 꿈에서 깼다.

아침에 깨어난 바로는 꿈으로 마음이 번민했다. 점술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꿈을 말해주었으나 그 누구고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다. 그 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고 자신과 떡 굽던 관원장이  친위대장의 옥에 갇혔을 때의 일을 바로에게 말했다. 술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라고 말 한 것은 아마도 요셉에게 은혜입고도 지난 2년동안 그 은혜를 잊어버린 배은망덕이라기보다 바로에게 죄를 지어 감옥에 갔던 그 사실을 기억한다는 뜻일 것이다. 술맡은 관원장에게는 바로에게 자신의 죄를 다시 상기시키게 하는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복직될 정도로) 충실한 신하여서 자신의 꿈을 해석해준 요셉을 바로에게 소개했다.

바로는 사람을 보내 요셉을 불렀다. 요셉은 용모와 복장을 단정히 하고 바로 앞에 섰다. 바로는 요셉에게 자신의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었는데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고 해서 불렀다고 말했다. 요셉은 자신이 꿈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의 꿈을 해석하신다고 대답했다. 하나님께서 꿈을 해석하시면 바로의 번민은 사라지고 편안해 질 것이라고 확신에 찬 대답을 했다.

>>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은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해석도 바로의 번민을 날려주지 못했다. 점술가와 현인들이 뭐라한 들 신과 같은 바로보다 권위가 낮았기 때문이리라. 점술가와 현인들이 통일된 답을 내 놓았다면 몰라도, 그들은 바로의 환심을 사기위한 각각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달랐다. 그는 꿈의 해석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바로의 번민을 날릴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했다. 바로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이 계시다고 복음을 전했다. 요셉의 마음에는 꿈의 해석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꿈을 꿈대로 경영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요셉은 꿈꾸는 자였다. 그리고 지금은 꿈을 해석하는 자다. 그리고 앞으로는 꿈을 경영하는 자가 될 것이다. 꿈꾸게 하시는 분도,꿈을 해석해 주시는 분도, 꿈을 경영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결국 임마누엘이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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