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3:1-18 읽기

1-3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나님 앞에서, 또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이 자신들을 치켜 올리는 말을 늘어 놓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바울 일행은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에게 추천장을 가지고 간 것도 아니고, 또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로부터 추천장을 받아서 떠난 것도 아니라고 밝힌다. 손으로 써준 추천장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 자체가 바울 일행이 자랑할 추천장이라고 말한다. 종이에 써 준 추천장이 아니라 바울 일행의 마음에 적혀 있고, 바울 일행을 만나는 사람들은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이 곧 바울 일행의 추천장인 줄 알고 읽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리스도께서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을 바울 일행의 사역에 필요한 추천장, 소개장으로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바울 일행은 그리스도께서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이 자신들의 추천장이 되도록 봉사했다고 말한다. 거듭 이 추천장은 만년필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썼으며,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가슴판에 쓴 것이라고 말한다.

 4-6 바울 일행은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이야 말로 자신들의 추천장/소개장이요, 자신들이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이 추천장이 되도록 봉사했다는 것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봉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들이 봉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자격을 주셨다고 겸손히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바울 일행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다고 말한다. 이 언약도 문자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이라고 말한다. 문자로 쓰여진 율법은 죽음을 가져오지만 성령은 생명을 준다고 가르친다.

7-11  바울은 모세가 돌판에 문자로 새긴 율법을 선포할 때도 비록 곧 사라질 것이었지만 모세 얼굴에 광채가 났음을 상기시킨다. 이 죽음을 이르게 하는 율법을 선포한 모세에게도 이런 영광이 나타났는데, 영의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느냐고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에게 반문한다. 율법을 선포하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으면, 의를 베푸는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친다고 선언한다. 바울은 지금까지 빛나던 것(율법)의 영광은 이제 훨씬 더 빛나는 영광에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광으로) 그 빛을 잃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라져 버릴 율법이 주어질 때도 영광이 있었다면 길이 남을 (영생을) 약속하는 성령의 법의 영광은 무궁할 것이라고 말한다.

12-18 바울 일행은 이런 소망, 곧 의를 베푸는 직분,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있기에 대담하게 처신한다고 말한다. 모세는 얼굴의 광채가 사라져 가는 것을 보지 못하도록 얼굴을 가렸지만, 바울 일행은 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은 완고해져서 구약성경을 읽을 때, 모세가 광채를 가렸듯이 구약성경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구약성경의 참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성경의 참 뜻을 가리는 것을 제거해야 한다.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서야 구약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주님의 영이시다. 주님의 영이 (성령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다.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말씀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럴 때 성도들은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  성도들은 서로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데 추천장이 되어야 한다. 또한 성도들은 다른 지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도록 봉사해야 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서로간에 추천장이 되고 서로간에 하나님의 일꾼이 되도록 세워주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완고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내 맘대로 말씀을 해석하고 내 뜻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뜻에 순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완고한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 완고한 마음이야 말로 벗어버려야 할 너울이다. 바울은 자화자찬하지 않는다. 바울의 권면처럼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는 것은, 나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가능한 일이다. 성도는 결국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해야 할 존재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존재다. 영이신 주님께서, 곧 보혜사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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