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0:15-26 읽기

요셉의 형제들은 야곱이 죽자, 요셉이 자신들을 미워하여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한 악에 보복할까 염려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에게 야곱이 죽기전에 요셉에게 형제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고 유언했으니 야곱의 유언에 따라 자신들을 용서해달라고 말을 전했다. 요셉은 형들의 이런 전언에 슬퍼 울었다. (요셉은 45장에서 이미 형들에게 자신을 판 일로 근심하지 말라고 했었다. 한탄하지 말라고 말했었다. 자신을 애굽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말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형들은 친히 요셉을 찾아와서 자신들은 요셉의 종들이라고 말했다. 요셉은  다시한번 두려워하지 말라고 형들에게 대답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요셉은 원수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해하려한 것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선(뜻)으로 바꾸셔서 많은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으니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반복해 말했다. 오히려 요셉이 형들과 형들의 자녀들을 기르겠다고 위로했다. 요셉은 (영적) 장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요셉은 형제들과 함께 애굽에서 백십세까지 살았다. 에브라임 증손자까지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보았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유언했다. 자신은 애굽에서 죽겠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돌보시고 이땅에서 인도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해골을 메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겠다고 맹세시켰다. 요셉은 죽어 미이라 처리가 된 후 입관되었다. (매장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 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들은 두려웠다. 그래서 야곱의 유언을 들먹였다. 야곱의 임종을 누구보다도 오래지킨 요셉은 야곱의 유언을 팔아먹는 형들의 태도에 슬플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울며 입맞추지 않았던가. 지난 일로 근심하지 한탄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요셉은 원수갚은 것은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하며, 거듭 형들의 악행조차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한 뜻으로 바꾸셨다고 형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영적) 장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성도들도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의 무궁하심을 팔아먹어서는 안된다. 바울은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다고 해서, 마음 놓고 죄를 짓자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선언한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주인이라고 불렀고 자신들은 종이라고 말했지만 입발림 소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요셉의 용서에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은혜아래 있다면 죄를 멀리해야 한다. 착하고 충성되게 살아야 한다.

>>   요셉은 영적 장자로서 살다가 죽었다. 요셉의 마지막 유언도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이었다. 나의 유언도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 밖에 달리 없다.

창세기 49:29-50:14 읽기

야곱이 마지막 유언을 한다. 내가 죽거든 나를 헷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다.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매장지로 산 땅이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고 야곱이 레아도 장사한 곳이라고 한다. 야곱은 다시한번 그곳을 헷사람에게 돈을 주고 산 땅이라고 강조한다. 야곱은 막벨라 굴에 장사해 달라고 명하고 숨을 거뒀다. 창세기 기자는 야곱이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다고 표현한다.

요셉은 야곱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울었다. 요셉은 애굽식으로 향처리로 사십일간 야곱을 염했다. 애굽사람들은 칠십일 동안 야곱을 위하여 곡을 했다. 곡하는 기간이 지난 후 요셉은 바로에게 가나안 땅에 가서 아버지 야곱을 장사하게 해 달라고 탄원했고 바로는 요셉이 맹세한 대로 야곱을 장사하라고 명했다. 야곱의 장례식에는 야곱의 아들들 뿐만 아니라 바로의 모든 신하들도 참여했다. 심히 많은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야곱의 장례행렬을 이끌었다. 요셉은 요단강을 건너자 칠일동안 애곡하였다. 가나안 백성들은 애굽사람들 가운데 높은 사람의 장례식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야곱의 아들들은 야곱의 유언대로 야곱의 시신을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다. 창세기 저자는 이곳을 아브라함이 돈을 주고 산 매장지라고 다시한번 강조한다. 장례를 마친 요셉과 형제들과 호상꾼들은 애굽으로 돌아왔다. 

>> 야곱은 유언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마지막 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의 백성에게 (조상에게) 돌아갔다. 영어 KJV, NIV, NASV 모두 [유언을 하고, 침대에 눕고( 발을 모으고), 마지막 숨을 쉬고 (숨을 거두고)]의 주어를 야곱으로 사용하지만 그의 백성에게 돌아갔다는 피동태로 기록한다. 야곱이 죽은 후의 일이기에 피동태일 수 밖에 없다고 할 수 있으나, 백성에게 돌아가느냐 아니냐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적용해 본다.

>> 야곱의 죽음을 애굽의 국장으로 치를 만큼 대단해 보이는 애굽 총리 요셉은 어쩔 수 없는 바로의 종이었다. 애굽을 7년 흉년에서 건져내었다 하더라도 요셉의 주인은 바로였다. 굳이 말을 지어낸다면 노예총리였다. 바로의 입장에서는 애굽에게 형통을 가져오는 바로 소유의  무당 같은 존재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축귀한 여종과 다를 바 없다.) 흉년이 끝나고도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갈 수 없었던 이유였다. 요셉이 탈애굽할 수 있으려면 주인인 바로가 요셉을 놓아주거나 요셉이 죽어야만 했다. 아니면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 야곱은 자신이 묻혀야 할 곳을 알았다. 내가 묻혀야 할 곳은 교회다. 교회의 온전한 지체로 죽는 것이다. 예수께서 값주고 사셨기 때문이다. 이땅에서도 교회의 지체로 살아가라고 하신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가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철두철미 순종하며 살라고 하신다.   

창세기 49:13-28 읽기

어제에 이어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통해 스블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 요셉 베냐민 자손들이 후일에 당할 일을 말해준다. 스블론에 대해서는 차지할 땅의 지경을, 잇사갈은 종으로 섬길 것을, 단은 심판(지도)자가 될 것을, 갓은 용맹한 군사가 될 것을, 아셀은 먹거리로 섬길 것을, 납달리는 예능으로 섬길 것이라고 말했다. 요셉에게는 야곱의 축복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축복보다 낫다고 한다. 비교가 아니라 조상에게 주어진 축복을 변함없이 이어가는 장자의 축복이라고 말한다. 베냐민은 처음에는 욕심을 부리겠지만 나중에는 나누는 자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렇게 열두지파에 대해 야곱이 축복했다. 각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했다.

>>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을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했다. 어찌보면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각 사람의 분량을 아신다. 이렇듯 성도들은 바울의 권면에 따라야 한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은 불공평이나 불공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시는 일이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에게 지체가 되어야 한다. 아니 이미 지체라고 한다. 이것이 축복 중의 축복이다. 왜냐하면 성도야 말로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롬8:17 새번역)

창세기 49:1-12 읽기

요셉을 축복한 야곱은 아들들을 불러모은다. 그리고 후일에 당할 일을 알려준다. (누가 감히 후일에 당할 일을 말할 수 있을까?) 창세기 저자는 화자를 갑자기 제3자로 바꾼다.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후일에 당할 일을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야곱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르우벤은 장자다. 장자로서의 능력과 권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끓는 물 같던 르우벤의 탁월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힘으로 식어버리고 말았다. 르우벤 자손들은 정욕의 냄비근성을 절제해야 함을 교훈한다.

시므온과 레위는 칼을 폭력에 잘못사용했다. 칼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했는데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하는데 사용하고 말았다. 시므온과 레위 자손들이 자신들의 분노를 폭력으로 분출한다면  더 혹독한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저주중의 저주는 야곱 중에서 떨어지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지는 것이다.

유다는 형제들의 찬송이 될 것이다. 원수를 물리친 유다에게 형제들이 절하게 될 것이다. 유다를 사자 새끼라고,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힘을 가졌다고 말한다. 왕권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을 것이며, 모든 백성이 유다자손에게 복종할 것이라고 축복한다. 포도주에 빤 붉은 자주색 옷을 (왕족이 입는 옷을) 입을 것이라고 한다.  포도주와 우유를 마시는 것도 왕족이 누리는 호사를 뜻할 것이다.

>> 후일의 당할 일은 하나님만이 말씀하실 수 있다. 르우벤은 정욕을 시므온과 레위는 폭력을 잘못사용했다. 그래서 큰 자의 자리는 넘버4 유다에게 돌아갔다. 요셉이 꾸었던 꿈을 이제는 유다의 후손들이 꾸게 되었다. 장자권은 요셉과 에브라임으로 이어지지만 하나님은 장자나 장자권을 통해 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 앞에 낮은 자, 작은 자, 겸손한 자를 사용하신다. 후일에 당할 일을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꾸려면 우선 하나님나라에서 떨어지거나 흩어져서는 안된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에서 떨어지지 않는 길은 음행을 버리고 폭력을 버리고 자기 생명까지도 버리신 예수를 따르는 것이다.

>> 성경은 성도들의 후일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48:8-22 읽기

이스라엘이 요셉이 데리고 온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보았다. 방금 요셉에게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기 소유라고 말을 했건만 눈이 어두운 야곱이 미쳐 알아보지 못했나보다.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하나님이 주신) 두 아들이라고 하자 야곱은 그 둘을 불러 축복하겠다고 했다. 야곱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입을 맞추고 그들은 안아주며, 요셉에게 다시는 못볼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너와 네 자손까지 보게하셨다고 말했다.

요셉은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이끌고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인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손을 교차해서 오른손을 에브라임 머리 위에 얹고 왼손을 므낫세의 머리에 얹었다. 이스라엘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안수하며 축복했지만 결국은 요셉지을 향한 축복을 했다.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과 그리고 야곱 자신과 함께 하셔서 길러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곧 하나님이 언약을 야곱의 아들들에게 상속했다.

요셉은 이스라엘의 교차된 손을 기뻐하지 않았다. 요셉은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얹은 손을 옮기고자  아버지에게 므낫세가 장자라고 알려주었으나 야곱은 알고 있다고 거듭 말을 하며 므낫세도 큰 자가 되어 한 족속이 되겠지만, 에브라임이 더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은 여러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대답했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대로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더 앞세웠다.

이스라엘은 요셉에게 자신은 죽겠으나 하나님은 함께 계셔서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에게 약속한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야곱이 아모리 족속에게서 빼앗은 세겜 땅을 (시므온과 레위가 칼로 빼앗은?) 요셉족속에게 (미리) 상속하겠다고 말했다.

>> 성실하게 살아온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알 수 없었다. 아무런 이유없이 장자와 차자를 바꾸는 일은 사회통념를 깨는 일이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정직한 요셉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기뻐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러나 평생 속이며 속고 살아온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을 가까이서 보고있는 것 같다. 요셉에게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라헬 옆에 묻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는데 조상의 묘지에 묻히기를 소원했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요셉, 그것도 총리가 된 요셉의 뜻을 존종할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교차한 손을 바꾸지 않았다.

>> 내가 기뻐하지 않는 일이라고 바꾸려해서는 안된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한 사람들은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세월을 아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춰야 한다. 언약백성의 삶을 살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