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3:16-24:3 읽기

16-17 아달랴를 죽이고 여호야다는 자신과 백성과 왕이 주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세웠다. 그리고 모든 백성이 바알신전으로 가서 신전을 허물고 제단을 뒤엎고 신상들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그들은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였다.

18-19 여호야다는 주님의 성전을 돌보는 일을 정하여 레위사람 제사장들이 관리하도록 맡겼다. 모세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제사를 드리고 찬양을 하도록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게 하였다. 또 성전 문마다 문지기를 두어 부정한 사람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20-21 여호야다는 백부장들, 귀족들, 지도자들,  모든 백성들과 함께 왕을 성전에서 데리고 나와 왕궁으로 가서 보좌에 앉혔다. 모든 백성이 기뻐하였다. 아달랴가 살해된 후 도성은 평온을 되찾았다.

24:1-3 요아스은 일곱살에 왕이 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마흔해 동안 다스렸다. 요아스의 어머니 시비아는 브엘세바 사람이다. 여호야다 제사장이 살아있는 동안 요아스는 주님 보시기에 올바르게 다스렸다. 여호야다는 왕에게 두 아내를 추천했다. 요아스와 두 아내 사이에서 자녀들이 태어났다.

>>  하나님은 여호야다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지켜가시는 도구로 삼으셨다. 여호야다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은 단순히 다윗 가문의 왕위계승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임을 알고 온 백성이 주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세웠다. 주님의 백성이 되는 상징적인 사건이 바알 신전과 제단과 신상을 완전히 부수고 바알 제사장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책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했다. 그리고 나서야 요아스를 보좌에 앉혔다. 그결과가 기쁨과 평온이었다. 여호야다를 통한 하나님의 열심이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열심이 하나님의 열심을 지나치곤 한다. 여호야다는 요아스에게 두 아내를 추천했고 요아스와 두 아내 사이에서 자녀들이 태어났다. 두 아내를 추천한 것은 다윗 가문이 끊어지지 않도록 많은 자녀를 갖도록 독려하기 위한 사람의 열심이 아닐까 한다. 일부다처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 군사의 수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듯이, 다윗의 자손을 보존시키시는 것도 자녀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딴지를 걸어본다.

딴지 하나 더. 성전에 문지기를 두어 부정하 사람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이 말씀을 교회의 문턱을 높이는데 적용해서는 곤란하다. 부정한 자도 들어와서 깨끗함을 받아야 한다. 오히려 아무나 교회 교역자들이 되지 못하도록 적용해야 한다.  

역대하 23:1-15 읽기

1-2 여섯해를 기다린 여호야다 제사장은 일곱째 해가 되어 용기를 내어 백부장들, 곧 여로함의 아들 아사랴, 여호하난의 아들 이스마엘, 오벳의 아들 아사랴, 아다야의 아들 마아세야, 시그리의 아들 엘리사밧과 밀약을 맺어 유다 각지역의 레위사람들과 각 가문의 족장을 모아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왔다.

3-7 이들은 성전의 모여, 요아스와 언약을 세웠다. 여호야다가 성전에 모인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 왕세자가 있습니다. 이 분이 (요아스) 왕이 되셔야 합니다. 이것은 다윗의 자손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약속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번 안식일 당번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은, 성전에 도착하여 삼분의 일은 성전문을 지키고, 삼분의 일은 왕궁을 지키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기초문’을 지키십시오. 일반 백성은 성전 뜰로 모이게 하십시오. 그 날, 당번을 맡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 말고는 어느 누구도 성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만 성전 안으로 들어오고 일반 백성은 주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성전 밖에 서 있어야 합니다. 레위 사람들은 병기를 들고 왕을 호위하십시오. 왕께서 출입하실 때 반드시 경호하십시오. 어느 누구라도 성전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모두 죽이십시오.]

8-11 레위사람들과 모든 유다 사람들은 여호야가가 명령한대로 행하였다. 여호야다가 안식일에 당번을 끝낸 사람들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으므로 당번인 사람과 비번인 사람들이 모두다 성전에 있었다. 여호야다 제사장은 백부장들에게 다윗 왕이 성전에 보관했던 창과 크고 작은 방패를 나눠주었다. 일반 백성에게도 무기를 들려 성전 전 지역에 배치하고 성전에서 왕을 경호하게 하였다. 여호야다와 여호야다의 아들들이 요아스 왕세자를 데리고 와서 왕관을 씌우고 왕의 직무를 규정한 규례를 요아스에게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고 임금님 만세를 외쳤다.

12-15 아달랴가 백성들이 요아스 왕을 찬양하는 소리를 듣고 성전에 모여있는 백성에게로 갔다. 왕이 성전 앞 기둥 곁에 서 있고 관리들과 나팔수들이 왕을 모시고 서 있으며, 모든 백성이 기뻐하며 나팔불며 찬양하고 있었다. 아달랴는 이것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하고 ‘반역이다! 반역이다!’ 라고 외쳤다. 그때 여호야다가 백부장들에게 아달랴를 끌어내고 아달랴를 따르는 모든 사람는 칼로 쳐죽이라고 명했다. 다만 성전 안에서는 아달랴를 죽이지 말라고 했다. 백부장들은 아달랴를 끌고가 왕궁 ‘말의문’ 입구로 들어가 거기서 처형하였다.

>> 여호야다가 제사장이 쿠데타를 모의한 다른 이유는 없었다. 오직 다윗의 자손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약속을 따랐다. 육년의 시간은 어쩌면 요아스가 어느정도 자라기를 기다린 시간이라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을 가르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여로야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 충분히 늘어났을 때 혁명을 일으켰을 것이다. 주님의 약속이 분명하다고 해도, 급하게 일을 추진하지 않고, 일반 백성까지 주님의 약속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치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복음도 마찬가지다. 밭이 희어져 이미 추수할 곳도 있지만 여전히 갈아야 할 밭이 많고 씨를 뿌려할 곳도 많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서두드라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주어진 일에 성실해야 한다.  

역대하 22:1-12 읽기

1 여호람의 막내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를 이었다. 아하시야의 형들은 아라비아의 침략때 모두 잡혀가 학살당했다.) 2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 스물 두 살이었다. (개역개정의 마흔 둘보다, 열왕기의 기록을 따른 듯. 마흔둘이라면 여호람이 마흔에 죽었으니 말이 안됨.) 아하시야는 한 해밖에 다스리지 못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오므리의 손녀였다. 3. 아하시야는 여호람과 같이 아합 가문으리 길을 따랐다. 아달랴가 아하시야를 꾀어 악을 행하게 했다. 4 아하시야는 아합 가문을 따라 주님 앞에서 악을 행했다. 아합 가문 사람들의 의견을따라 다스리다가 일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5 아하시야는 아합 가문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 북이스라엘 요람 왕과 함께 시리아의 하사엘 왕을 맞아 싸우려고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갔다. 그 싸움에서 시리아 군인이 요람을 쳐서 부상을 입혔다. 6 요람은부상으로 이스르엘로 돌아갔고 아하시야 역시 요람을 문병하려고 이스르엘로 갔다.

7-9 아하시야가 요람에게 문병을 갔다가 요람과 함께 님시의 아들 예후를 만나게 되었다. 예후는 하나님께서 아합 왕가의 멸망하려고 세운 사람이었다. 예후는 아합 왕가를 징벌하면서 아하시야와 함께 온 유다 군대 지휘관들과 아하시야를 섬기는 조카들까지 닥치는 대로 죽였다. 아하시야는 사마리아로 피신했으나 예후의 부하들에게 잡혀, 결국 예후가 아하시야를 죽였다. 사람들은 아하시야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만 찾은 여호사방의 아들이었다 하면서 그를 장사했다. 아하시야 가문에는 왕국을 지켜 갈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더 이상 없었다.

10-12 아달랴는 아들 아하시야가 죽자 유다 집의 왕족을 다 죽이기 시작했다. 왕자들이 살해될 때, 왕의 딸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유모와 함께 침실에 숨겨 화를 면하게 하였다. 여호세바는 여호람의 딸로 여호야다 제사장의 아내요 아하시야의 누이다. 요아스는 여호세바의 보살핌 가운데 육년 동안 하나님의 성전에 숨어지냈다. 그동안 아달랴가 남유다를 다스렸다.

>> 남유다는 여호람에게 시집온 아달랴와, 아달랴와 함께 온 아합 가문의 사람들, 곧 외척의해 좌우지 되는 나라가 됐다. 결국 아합 가문의 길을 따라 주님 앞에서 악을 행한 여호람, 아하시야는 망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여호세바는 부모의 길을 따르지 않고 남편 여호야다 제사장의 길을 따르게 된다. 하나님은 여호세바로 하여금 요아스를 빼돌려 성전에서 숨어지내게 함으로써 다윗과의 언약을 지켜가신다. 여호세바! 그는 제사장인 남편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것이 틀림없다. (여호세바가 남편에게 진? 것은 가부장적 문화도 아니고, 나이차이도 아니고, 여호야가가 말씀을 따르는 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여호야다가 여호세바에게 넘어가지 않은 이유라고 해야하나.) 하나님의 공동체에 속한다는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

역대하 21:2-20 읽기

2-4 여호사밧을 이어 여호람이 왕이 되었다. 여호람에게는 아사랴, 여히엘, 스가랴,아사랴, 미가엘, 스바댜라는 동생들이 있었다. 여호사밧은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여호람의 동생들에게는 은, 금 재물과 요새화된 유다의 성읍들을 후하게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여호람은 왕위를 굳히자, 자기 동생들을 모두 죽이고, 이스라엘 지도자들 일부도 함께 죽였다.

5-7 여호람은 서른 두 살에 왕이되어 예루살렘에서 8년동안 다스렸다. 여호람은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에, 아합 가문의 길을 따라, 북이스라엘 왕들이 간 길을 갔다. 곧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다윗 왕가를 멸망시키시지 않으셨다.

8-10 여호람이 다스리는 동안, 에돔이 유다에 반기를 들고 자기들의 왕을 따로 세웠다. 여호람은 지휘관들을 이끌고 병거를 모두 출동시켰으나 오히려 에돔 군대에게 포위를 당하고 말았다. 밤에 겨우 포위망을 뚫고 빠져 나왔다. 이렇게 에돔은 유다의 지배를 벗어났다. 이것을 보고 립나 성읍도 반란을 일으켜 여호람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하나님을 저버린 결과라고 사관은 평가한다.

11-15 여호람은 유다의 여러 산에 산당을 세우고, 예루살렘 주민들로 음행을 하게 하였다. 유다 백성을 그릇된 길로 가게 했다. 이런 여호람에게 하나님은 엘리야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왕(여호람)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왕이 아버지 여호사밧이 가던 길과, 할아버지 아사가 가던 길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 왕들이 걷던 길을 따라가고 있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아합 왕가처럼 음행을 했다. 왕은 여호사밧에게서 난 자식들, 곧 여호람보다 착한 동생들을 죽였다. 이제 나 주가 네 백성, 네 자식들, 네 아내들, 네 모든 재산에 큰 재앙을 내리겠다.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더 악화되어, 마침내 창자가 빠져나올 것이다.]

16-20 주님께서는 블레셋과 에티오피아에 인접하여 사는 아라비아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겨 여호람을 치게 하셨다. 그들은 유다를 침공해서 왕궁의 모든 재물을 탈취하고, 여호람의 아들들과 아내들까지 잡아갔다. 막내 아들 아하시야만 남겨두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주님께서 여호람에게 벌로 창자에 불치의 병이 들게 하셨다. 여호람은 꼬박 두해를 앓다가 창자가 몸밖으로 나와서 심한 통증에 시달리다 죽었다. 백성은, 왕들이 죽으면 향을 피우는 관례가 있었지만 여호람에게만은 향을 피우지 않았다. 다시말해 여호람의 죽음을 슬프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여호람을 다윗 성에 묻기는 하였으나 왕실 묘지에는 장사하지 않았다.

>> 여호람은 아버지 여호사밧의 길도, 할아버지 아사의 길도 따르지 않았다. 하물며 다윗의 모든 길을 따랐을리 만무다. 사관은 여호람이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아, 아합왕가와 같이, 북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따라 주님보시기에 악한 일과 음행을 하였다고 평가한다. 그의 대표적인 악행이 착한 동생들을 죽인 일이다.  사관이 여호람 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아사와 여호사밧이 그렇게도 없애려고 했던 산당을 세우고 백성으로 하여금 음행을 하게 하고, 그릇된 길로 가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과의 언약을 지켜내신다.

>> 첫단추.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을 때부터 악한 길은 예견되었어야 했다. 여호사밧의 잘못이라고 해야하나. 하여간 하나님을 저버린 여호람, 그 댓가는 혹독했다. 에돔이 남유다를 저버렸고, 립나도 여호람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침략해서 왕궁의 모든 재물을 탈취하고 아들들과 아내들까지 잡아갔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2년동안의 투병후 여호람이 죽자 아무도 그를 추모하지 않았다. 백성마져 여호람을 버렸다고 할 수 있겠다.

>> 하나님은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여호람의 막내아들 아하시야(개역개정:여호아하스)은 지켜주셨다. 여호람이 막내아들 이름을 ‘하나님이 붙드심’으로 지었다는 것이 놀랍다. 여호사밧 아들들의 이름의 뜻도 찾아봤다: 여호람 (하나님이 세우심 혹은 하나님은 존귀하심), 아사랴 (하나님이 도우심), 여히엘 (하나님이 살아계심), 스가랴 (하나님이 기억하심), 미가엘 (누가 하나님 같으랴?), 스바댜 (하나님이 숨기심). 믿음의 부모가 자녀에게 붙여준 이름같이 자녀들이 살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름 값 하는 것도 하나님께 달렸다.

역대하 20:20-21:1 읽기

20-24 다음날 여호사밧과 백성은 하나님을 믿어, 군사를 앞장 세우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들을 군대 앞에서 행진하게 했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라는 찬양을 부르며 앞장서서 행진했다. 싸움은 주께서 하셨다. 복병?을 시켜서 암몬과 모압과 세일 산에서 논 사람들을 대파하셨다. 암몬과 모압이 세일 산에서 온 사람들을 쳐죽이고, 후에는 암몬과 모암이 서로 쳐 죽였다. 유다의 행진 앞에는 적군의 주검뿐이었다.  

25-30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이 한 일이라고는 전리품을 챙기는 것이었다. 전리품이 너무 많아 사흘이나 걸렸다. 나흘째 되던 날 그들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 주님을 찬양했다.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여호사밧을 앞세우고 기쁨에 넘쳐 예루살렘으로 개선했다. 주님께서 원수를 쳐서 유다 백성을 기쁘게 해 주셨다. 사람들은 악기를 연주하며 성전으로 나아갔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원수들를 치셨다는 소문에 이방 모든 나라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다. 여호사밧이 다스리는 동안 나라가 태평했다. 하나님께서 사방으로 평안함을 주셨기 때문이다.

31-34 여호사밧은 서른 다섯에 왕이되어 25년동안 다스렸다. 여호사밧의 어머니는 실히의 딸 아수바였다. (실히는 창(무기)라는 의미를 갖고 아수바는 파멸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사관이 굳이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호사밧은 아사의 길을 걸었다. 아사의 길을 걸었다는 것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지만 산당만은 헐어버리지 않아 백성이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게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 사관은 17장 6절에서 여호사밧이 유다에서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없애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나보다. 여호사밧의 나머지 역사는 예후의 역사책과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었다.

35-21:1 사관은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동맹을 맺은 일을 덧붙인다. 아하시야 왕은 악행을 많이 저지른 왕이었음에도 아하시야의 권유로 여호사밧은 다시스로 왕래할 상선을 만들었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에게 와서 아하시야와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이 만든 상선을 부술 것이라고 예언했고, 예언대로 되었다. 여호사밧이 세상을 떠나 다윗 성에 장사되었고 여호람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 여호사밧. 아합 때에 악한 자를 돕고 하나님을 싫어하는 자들 편에 서서 이미 책망을 받지 않았던가? 그래서 뉘우치고 온 유다를 돌며 하나님의 법을 가르쳤기에 암몬, 모압, 마온의 침략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다시 재물과 평안을 얻지 않았던가? 그런데 다시 많은 재물과 평안을 얻자 악행을 많이 저지른 아하시야 왕과 다시 동맹을 맺었다.  17장 6절에보면 재임초기부터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없애버렸다고 기록하는데 재위 말기에 산당만은 헐어버리지 않아, 백성이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게 하지 못했다고 한다. 궁궐의 편안함을 버리고? 온 유다를 다니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가르쳤고, 하나님의 공의가 이뤄지도록 지방과 예루살렘에 재판관을 세우고 종교와 행정의 최고 책임자를 세우고 행정관들을 세웠건만 많은 재물과 평안은 다시 악행을 많이 저지른 아하시야와 동맹을 맺게 했다. 많은 재물과 평안은 솔로몬도 아사도 여호사밧도 오점을 남기게 한  단초다. 아사의 길과 여호사밧의 길로는 부족하다. 다윗의 모든 길을 본받아야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곧 곁길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재물과 평안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찾는데 마음을 쏟아야 한다. 많은 재물과 평안보다 환난이 유익하다. 하나님을 찾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