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3:1-14:1 읽기

1-2 여로보암 왕 십팔년에 아비야가 유다의 왕이 되었다. 아비야는 3년동안 다스렸다. 아비야는 압살롬의 딸 다말이 기브아 사람 우리엘에게 시집가서 낳은 미가야(미아가)라고 한다.

2-3 아비야와 여로보암이 싸웠다. 아비야는 군사 사십만을 모아 싸움을 준비했다. 여로보암은 용사 팔십만명을 모아 대진했다. (르호보암이 18만을 모아 북진하려고 했던 것과 비교하면 유다군사가 두배 이상으로 늘었다. 더군다나 이집트의 시삭에게 패한후 10년만에… 숫자는 크게 늘었지만 오합지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4-12아비야는 에브라임 산 중 스마라임 산위에서 이스라엘 진영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과 다윗의 언약을 알면서도 솔로몬의 신하였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솔로몬을 배반하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대적하였다. 르호보암은 어리고 연약해서 여로보암을 쳐서는 안된다는 말을 따라야만 했다. 이제 북이스라엘이 다윗의 자손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한다. 너희 숫자가 많고,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가 너희와 함께 있다. 하나님의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의 풍속을 따라 제사장직도 돈받고 팔았다.  우리(남유다)는 주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주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다. 이들은 아론의 자손이요, 레위사람들의 수종을 받아 매일 아침저녁으로 주하나님께 제사드린다. 우리는 주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했다. 독똑히 보아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대장이시다.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비상나팔을 들고 서있다. 그러니 이스라엘 자손아, 너희 조상의 하나님과 싸울 생각은 하지 말아라. 너희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려는 것이다.]

13-18 그러나 여로보암은 치밀한 전략으로 유다 군대와 대적했다. 유다 군대가 둘러보니 앞뒤로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유다 군인들은 주님께 부르짖고, 제사장들은 (비상)나팔을 불었다. 전세는 역전되어 유다 군이 함성을 질렀고, 하나님께서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군 앞에서 치셨다. 이스라엘은 도망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아비야와 유다 군대가 이스라엘 군대를 크게 무찌르게 하셨다. 팔십만 이스라엘 군인 중 죽어 쓰러진 병사가 오십만이나 되었다고 사관은 기록한다. 사관은 북이스라엘이 항복하고 남유다가 이긴 것은 유다가 조상의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라고 토를 단다.

19-20 아비야는 여로보암을 뒤쫓아 북이스라엘의 여러 성읍을 빼앗았고, 여로보암은 아비야가 살아있는 동안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주께 벌을 받아서 죽고 말았다.

21-14:1 그러나 아비야는 더 강해졌다. 아내 열넷을 두었으며, 아들 스물과 딸 열여섯을 낳았다. 아비야 통치 때 다른 사건들은 잇도 예언자의 역사책에 기록되었다. 아비야가 죽고 다윗성에 장사되었고, 아비야의 아들 아사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아사가 다스리던 십년 동안은 나라가 조용하였다.

>> 삼년! 르호보암이 주님의 율법을 따랐을 때 왕위가 튼튼해 지고 세력이 커졌었다. 딱 삼년, 그때까지였다. 그후로 주님의 율법을 저버리자 오년째 이집트 시삭의 공격을 받아 시삭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세상나라들을 섬기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깨달아야 했다. 다행히 잘못을 뉘우치자 하나님께서는 르호보암이 다스리는 유다 형편이 나아지게 하셨다. 아비야는 아버지  르호보암을 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세상 나라들을 섬기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깨달았던 왕이라고 할까?  이런 아비야의 통치기간이 삼년이라고 한다. 아내 열넷, 아들 스물둘과 딸 열여섯을 두었다고 한다. 물론 왕이되기 이전부터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겠지만. 하여간 삼년이상 주님을 따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교훈하는 것 같다. 아비야의 짧지만 언약에 충실한 삶의 교훈은 아들 아사로 하여금 십년의 태평성대를 이끌게 한다.

>> 하나님을 저버린 여로보암. 치밀한 전략이 있었지만, 군사가 두배나 되었지만, 싸움에서 이길 수 없었다. 여로보암의 패전은 주하나님의 법도를 버린 벌을 받은 것이다. 주하나님께서 아무런 이유없이 유다편을 드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의지했느냐, 하나님을 저버렸는냐가 승패를 결정했다. 단순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편이 이기고 우상에게 기도하는 편이 진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편이 이긴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편이 이긴다. 우상에게 기도하는 편이 지는 것은 무능력한 우상이어서가 아니라, 우상에게 기도하는 것, 곧 하나님의 법을 저버린 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다면, 하나님께 기도한들 소용이 없다. 뉘우쳐야 하고,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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