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아마샤에 이서 웃시야가 왕이 되었다. 사관은 특이하게 유다의 온 백성이 웃시야를 왕으로 삼았다고 기록한다. 웃시야는 열 여섯에 왕이 되었다. 웃시야는 엘랏을 재건하여 유다에 귀속시켰다.
3-5 웃시야는 예루살렘에서 52년 동안 다스렸다. 웃시야의 어머니는 예루살렘 태생의 여골리아다. 웃시야는 아버지 아마샤가 한 (모든?) 일을 본받아서,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다. 웃시야의 곁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쳐주는 스가랴가 있었는데, 스가랴가 살아있는 동안 웃시야는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 웃시야가 주님의 뜻을 찾는 동안은, 하나님께서 웃시야가 하는 일마다 잘 되게 해 주셨다.
6-8 웃시야는 블레셋과 싸워 블레셋 지역안에 유다 성읍들을 세웠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블레셋, 구르바알에 사는 아라비아 사람, 마온 사람을 쳤다. 암몬 사람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쳤다. 웃시야가 다스리는 남유다는 매우 강하게 되었고 그 명성이 멀리 이집트까지 퍼졌다.
9-15 웃시야는 예루살렘 성 세곳에 망대를 세워 요새화 하였다. 가축을 기르는 자, 농부, 포도원 농부도 두었고, 농사 짓는 곳곳에도 망대를 세우고 우물도 팠다. 웃시야는 언제든지 나가서 싸울 수 있는 큰 규모의 상비군도 운영했다. 여이엘이 병적기록관으로 마아세야가 병무담당 비서관으로 상비군을 관리했고 이들의 총지휘관은 웃시야의 직속신하인 하나냐였다. 상비군에는 이천육백명의 장교가 있었고 군인들은 삼십만 칠천 오백명이었다. 웃시야는 군인들을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무릿매로 무장시켰다. 예루살렘에 무기제조 기술자들을 두어 새로운 무기도 고안해서 만들었다. 웃시야의 명성이 사방으로 퍼졌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웃시야는 매우 강한 왕이 되었다.
16-18 웃시야 왕은 힘이 세어지면서 교만해졌다. 교만한 웃시야는 악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성전 안에 있는 분향단에 분향하러 들어갔다. 제사장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월권이었고 이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었다. 아사랴 제사장이 제사장 80명을 데리고 웃시야 뒤를 따라가서 웃시야 왕을 말렸다. 제사장들은 웃시야에게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일이 아니라, 분향을 수행하도록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거룩한 곳에서 빨리 물러나라고 웃시야에게 말했다. 왕이 범죄했으니 하나님께 높임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19-21분향을 하려던 웃시야는 제사장들의 말을 듣고 화를 냈다. 웃시야가 제사장들에게 화를 낼 때 웃시야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다. 제사장들은 나병이 생긴 웃시야를 성전에서 쫓아냈다. 웃시야는 재앙이 닥치자 (나병이 생긴 것을 깨닫고) 급히 성전에서 나왔다. 웃시야는 죽는 날까지 나병을 앓았다. 나병이 생긴 웃시야는 성전 출입도 하지 못하고 별궁에 격리되어 여생을 보냈다. 아들 요담이 웃시야 대신 백성을 다스렸다.
22-23 웃시야의 사적은 아모스의 아들 예언자 이사야가 기록했다. 웃시야가 죽었으나 나병환자였기 때문에 왕실묘지에 장사하지 않고 왕가에 속한 변두리 땅에 묻었다. 요담이 웃시야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었다.
>> 웃시야의 삶은 “웃시야는 아버지 아마샤가 한 모든 일을 본받아서,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다.” 라고 정리된다. 웃시야의 아버지 아마샤는 어땠나? 사관은 아마샤를 “주님보시기에 올바르게 행했지만, 마음을 다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런 아마샤는 마음을 다하지 않은 결과로 올바른 행위마져 무너뜨리고 주님을 따르다가 주님을 배신하는 것으로 삶을 마감했다. 웃시야는 사관의 한줄평가 그대로 ‘아마샤가 한 모든 일을 본받았다.’ 이어지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다’는 평가에 혹해서는 안된다. 주님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했느냐 안했느냐보다, 지속적으로 주님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았듯이, 웃시야도 스가랴의 가르침이 머물러 있지 못했다. 요아스부터 계속해서 독립적 신앙인격체로 바로 서야함의 중요성을 교훈한다.
사족: 사관의 평가를 하나님의 평가라고 이해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그 행위대로 평가하신다.